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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진짜?
로럴 스나이더 지음, 댄 샌탯 그림, 홍연미 옮김 / 오늘책 / 2022년 9월
평점 :
한마디로, 재미있다.
두마디로, 매우 재미있다.
고민이다. 이 책의 찐 재미를 말해버릴까, 말까.
표지 그림과 두께를 보더니 안 읽겠다고 도리질하던 아이에게 일단 첫 장만 읽어보랬는데, “어느새 완결을 보았다”. 눈쌀 찌푸리는 남편에게도 들이밀었다. “일단 읽어봐.” 아이보단 오래 읽었지만 남편 역시 금새 집중하더니 결말을 보았다. 당연하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게 아니니까!
나를 비롯해 수많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는 것은 완벽하게 타의에 의해 일어나지만, 그 후로는 선택, 선택, 온통 선택이다. 갓난쟁이는 엄마의 젖을 빨지, 젖병의 꼭지를 빨지 선택해야 하고, 울어버릴지 말지도 선택해야한다. 당장 뒤집기를 할지, 유모차를 마다하고 스스로 걸을지, 찝찝하지만 편한 기저귀를 계속 찰 것인지, 엄마의 말대로 간식을 나중에 먹을 것인지, 친구와 내 장난감을 공유할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는 일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생겨난다.
빨간 망토의 로지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더이상 작가의 연필에 자신의 이야기를 맡겨둘 수만은 없게 되었다. 우리 독자들도 속 편하게 페이지만 넘길 일이 아니다. 로지를 위해 올바른(혹은 고의로 이상한) 길을 선택해 주어야 한다!
희한하게 성실한 내 아이는 한눈 한번 팔지 않고 로지를 할머니 댁으로 인도하고, 늑대 뱃속에 들어갔다가 구조된다. 남편은 마법의 사탕으로 된 덫에 영원히 갇혀 버렸고, 난 막내 돼지 집을 구경 갔다가 늑대로 오인받아 날아온 욕조에 깔려버렸다. 어른들은.. 왜 이 모양이지? ㅋㅋ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죽어버린게 억울해 앞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선택을 시작했다. 돼지의 집이 풍기는 유혹을 이겨냈더니 이번엔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남자 아이에게 걸렸다. 때로 일곱 난쟁이에게 내 케이크를 빼앗기기도 하고, 남편을 가둬버린 마녀도 만난다.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결말이 다섯 가지, 열 가지로 늘어난다! 다른 페이지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싫다면, 눈 딱 감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다. 이미 아는 이야기인데 내 선택에 따라 내용이 자꾸 바뀌니 어른인데도 속절없이 빠져 든다. 뭐야.. 이 작가 천재인데?!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또 읽은 아이라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뭔가를 선택해야할 때가 올 때 더이상 선택을 어렵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내가 선택한 길 앞에 장애물이 잔뜩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인생이 거기에서 끝나는 일은 별로 없을 테니,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때 좀더 나은 길을 고르면 된다. 이야기가 바로 끝나버릴 법한 최악의 선택만 하지 않는다면 되지 않을까?
모처럼 즐겁게 책을 읽는 아이에게 딱딱한 얘길 하고 싶진 않아 꾹 참았다. 아직은 SNS를 막아두었지만, 좀더 자라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그때 언젠가 이렇게 담아둔 내 이야기들을 읽게 될 날이 올 수 있겠지. 죽어라 안 읽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 재미있는 책을 여러분 모두에게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