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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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를 읽었다. 제목이 암시하는 반어적인 의미를 알고 싶으면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면 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마치 수호지에 등장하는 반금련의 이야기만을 따로 뽑아낸 본격 성애 문학 -_- <육포단>처럼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의 절세 미녀인 레메디오스의 이야기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레메디오스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기 위해 낡은 지붕위로 올라갔다가 그녀와 이야기까지 하던 도중 지붕이 무너져 추락해 죽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는 결국 레메디오스가 목욕이 끝나자마자 죽었다. 소설의 작가 마크 빌라는 이 레메디오스를 바라보는 수많은 남자들 중의 한 명이 되어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마르케스의 소설이 주는 정치적 메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바라보는 시점의 거리에 따라 한 여인이 얼마나 다양하게 조명될 수 있는지의 문제와 그 소설적 형상화에만 그의 시선을 집중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성애문학은 아니다. 오히려 심리소설에 가깝다고 할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 또한 마르케스의 그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으로 설정되어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력의 침입이 마콘도에 미치는 파장을 묘사했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출발한 소설이 마찬가지로 짊어져야 하는 문제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마크 빌라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정과 그 흐름에 대해서만 천착하는 작가인 것이다.

이러한 시점이 '문학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낡은 믿음을 철두철미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 최근까지도 기존의 평론가들에게 이 소설이 그렇게 폄하되었고 악평을 받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심리소설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도 이처럼 독특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이제야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행간에서 묻어나오는 작가의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동경과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성찰들은 단순히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의 애타는 심적상태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성별을 초월하여 독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건 전환의 국면마다 효과적인 복선을 도입해 작은 노력으로도 커다란 반전을 곳곳에 숨겨놓은 재주는 이 작가의 역량이 명백히 과소평가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지금껏 남미 문학의 거장이라 불려왔던 마르케스에서 출발했지만 마크 빌라는 청출어람으로 그를 능가하고 있다.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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