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쿨에이드중독자 > 몇 가지 의문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이몬드 카버 원서가 도착했다. 이번에 나온 문학동네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카버의 초기 단편집이다. 내가 처음 접한 카버의 책은 지난 95년도 출간된 집사재 판이었는데,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단편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당연히 문학동네 판을 소장 욕심으로 사들인 뒤 당장 찾아보았던 것은 그 단편인데, 목차에 따르면 실망스럽게도 실려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읽다보니 '목욕'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같은 캐릭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의아스럽게도 결말이 뚝 잘린 것처럼 되어 있었지만.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 집사재 판을 사들여서 비교해본 결과 군데군데 문장이 바뀌고 줄어들고 결말 부분은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끊겨 있었다. 이 자식들.. 이 자식들이! 설마 마음대로 작품을 줄이고 재단했단 말인가. 나는 열이 올라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아마존에서 난생 처음 원서를 주문해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으나 책은 한참이나 오지 않고 등록된 내 카드만 긁어댔다. (배송료, 책값등이 한 권 한 권 발송될 때마다 긁히면서 문자메시지로 전송되어 왔다. 속 쓰리게스리) 오늘 아침 도착한 무지막지한 종이 박스안에는 단단히 포장된 카버의 처녀 단편집, '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와 문제의 단편집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그리고 단편 선집 'where I'm calling from' 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득달같이 읽어본 결과.. '목욕'이라는 그 제목은 오역이 전혀 아니었다. 원서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에도 'The Bath'로 수록되어 있었고, 내용 역시 문학동네 판처럼 결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집사재 판은 뭐지? 그럼 그 자식들이 작품을 마저 썼나..? 내 머리는 알쏭달쏭한 질문들로 가득했는데, 후기에 출간된 선집 'where I'm calling from'을 보니, 'A Small, Good Thing' 이라는 단편이 또한 같은 구조, 같은 내용, 같은 캐릭터로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내가 집사재 판에서 읽은 그 단편 임에 틀림없었다. 그럼 범인은 카버! 자신이었단 말인가. 결국 나의 의문은 내가 무시하고 읽지 않은 집사재 판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설에 친절하게도 설명되어 있었다. (아마존에서 주문하기 전에 내가 이것을 읽었더라면!)

인용 :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중

초기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하는 이야기'와 후기 단편선집 '대성당'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자에 수록된 '목욕'과 후자에 수록된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비교해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양적으로 전자는 짧고 후자는 길다. 중간까지 내용은 거의 같다. 생일날 아침에 스코티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차에 치여 입원한다. 양친은 병원으로 달려가서 아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주문해둔 케이크를 찾으러 제과점에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며칠 뒤 아이는 죽어버리고 부부가 슬픔을 참고 있을 때, 케Ÿ?찾으러 오지 않은 것에 화가 난 제과점 주인의 전화를 받는다. 아이가 죽은 것을 모르는 그는 심술궂게 자신을 밝히지 않고, 스코티에 관한 일이요, 라는 말을 반복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나를 미치고 팔짝 뛰게 했던 전자는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후자의 단편에서 부부는 제과점을 떠올리고 분노에 차 쳐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 따끈따끈한 결말이 펼쳐진다. 더 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자제하자.

(그런데 왜 집사재 판은 다른 단편은 초기 단편 그대로 실어놓고, 이 단편은 후기 개작본을 실었을까. 역자가 비교해보고 같은 소설이니까 완성도 있는 것을 싣자고 한 것일까. 헷갈리게 스리)

이 무지몽매한 의문 때문에 내가 사들인 원서 세 권과 문학동네판 두 권, 집사재 판 1권에는 상당수의 작품들이 이처럼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개작하여 중복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억울하냐고? 아니. 레이몬드 카버는 내가 생각한 대로 천재였다. 원서를 펼쳐보면 무슨 말인지 안다. 원래 위대한 문학작품은 쉬운 언어로 되어 있는 법이거던.

(원서가 쉬운 단어, 짧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데 흥분한 상태)

첨언. 특히 난 저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가 좋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처음으로 '이런 소설은 절대 쓸 수 없어'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어, 이렇게 쓰면 잘난 척 같잖아.. 키킥. 그게 아니오.. 감탄일 뿐이오) 군더더기 없고, 인간미 넘치는.. 원서에서도 그 느낌이 그대로라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