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0년 6~7월, 2015년 1~2월, 2016년 8월 오마이뉴스·오마이스쿨 주최로 열린 ‘조국의 법고전 읽기’ 강의를 바탕으로 2022년 새로 집필했다. - <조국의 법고전 산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4899 - P4

무엇보다 법고전의 내용과 21세기 대한민국을 연결하려고 했습니다. 열다섯 권의 고전들이 출간된 당시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 책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정리했습니다. 법학 개념이나 이론의 구사는 최대한 줄이고, 중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1장부터 순서대로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관심 있고 흥미 있는 고전부터 골라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 <조국의 법고전 산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4899 - P9

대학 입학 후 평생 법을 공부하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는 심정은 무참無慘합니다. 저 자신과 가족 일에 철두철미하지 못했던 점, 면구하고 송구합니다. 자성하고 자책합니다. 법정에서 저의 소명과 해명이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읽고 씁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법고전 저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비운悲運이 계속되고 있지만,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믿으며 견디고 또 견딥니다. 한계와 흠결이 많은 사람의 글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목에 칼을 찬 채로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습니다.

2022년 10월
조국 - <조국의 법고전 산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4899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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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은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소통의 장소로 인식되는 광장은, 바로 권력이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 건설한 장소라는 것이 바로 이 역사의 진짜 모습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74

유럽의 도시 환경에서 길은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일 뿐 아니라 건물보다 절대 우위를 점한 공공재였다. 서구에는 길이 존재하지 않으면 건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권력은 통행이 쉬운 포장도로를 만들고 그 아래에 상하수도·전기·통신 시설을 매설한 후에야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허용했으므로 건물들은 위생 걱정 없이 서로 밀집해 들어서면서 집합적으로 조직된 길, 즉 ‘가로街路’를 이루었다. 그런 점에서 도시의 탄생은 길road이 아닌 가로street가 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길을 단지 다른 지점 간의 연결로가 아닌, 도시라는 생태계를 구성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뼈대와 신경계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건물이 가로의 종속 변수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78

서울(▵)과 파리(▿)의 평범한 이면도로를 비교해 보면 우리가 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나타난다. 서울의 많은 길에 공과 사, 차와 사람의 구분이 희박하다. 통행을 위한 도로인지, 건물을 위한 주차장인지, 가게를 위한 야외 공간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이 눈치껏 사용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모호하니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 붉혀야 하는 일도 흔하다. ‘가게 앞 주차 금지’라는 신경질적인 경고는 사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85

보차步車분리를 철저히 하고 도로 시스템을 발전시켜 통행과 도시 서비스를 최적화한 서구의 도로에 비해, 한국의 도로는 통행은 물론이고 상업, 휴식, 오락 등의 여러 기능이 공존하는 일종의 ‘도시적 공터’가 된 것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87

72개 중 지금은 14개만 남은 낡은 타워가 수백 년 전 인간의 경쟁심이 건축으로 폭발한 광기의 시간을 나지막이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극적인 쇠락 때문에 14세기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게 된 이 도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행자의 눈에는 더없이 고풍스럽고 신비롭기만 하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17

근대 산업화가 낳은 거대 도시 메갈로폴리스는 그 속성상 인구의 도시 집중을 전제로 했고, 도시는 오랫동안 거주했던 토박이가 아니라 생존과 성공을 목표로 몰려드는 이방인에 맞춰 기존의 구조를 수정하고 확장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41

죽기 살기로 자신을 알려야 한다는 생존과 성공을 향한 강박관념만이 도시를 지배한다. 마천루가 매일 기록을 경신해 봐야 승자는 계속 패자로 바뀌고, 경쟁에 끼지 못한 대부분의 시민은 어둠 속에 살게 된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48

방房은 벽으로 둘러싸여 주위에서 분리된 공간이고, 벽면과 (창)문으로 구성되며 구체적인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52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찜질방처럼 ‘방’으로 끝나는 공간은 방으로 구획됐거나 최소한 옆자리와 칸막이로 구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좀 더 사적 공간의 느낌을 준다. 실제로 외부와 단절된 밀폐된 곳에 굳이 함께 들어가려면 이미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문이 닫히고 같은 행위를 함께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문밖에 있는 타인과 구분되는 공동체가 된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55

가족적 규모의 소집단에 강하게 결속되어 역설적으로 큰 규모의 연대로 발전하기 힘든 문화권과 개개인은 모래알처럼 각각인데 어떤 문제에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고 연대해서 사회적인 규모로 발전시키는 것은 수월한 다른 문화권을 상호 비교해 보면, 사람들의 관계가 사회적인 제도는 물론이고 물리적인 건축 공간이나 도시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놀라운 예를 발견할 수 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61

개인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집단을 신뢰하는 셈이다. 이렇게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려는 강박이 높은 사회이기 때문에 소속감을 증명하고 확인하고자 모임에 참석하려는 욕구가 높고, 그래서 한국인에겐 참가해야 하는 이런저런 모임이 유난히 많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64

자신의 우주(땅) 안에서 자신만의 수단(건축)으로 최선의 건축적 해답을 찾으려는 이른바 ‘자기 내향형’ 건축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73

건물의 형태와 사는 사람들의 신분만 바뀌었을 뿐, 담장 내부에 자신이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춰 놓고 외부와의 극단적인 단절을 선택한 바로 이 아파트 단지와 그 건축적, 도시적 논리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경복궁과 이 단지의 면적을 비교했는데, 기묘하게도 크기마저 비슷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85

국가는 도로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하고 택지 개발하느라 드는 비싼 비용과 골치 아픈 관리 책임 없이도 낙후된 지역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편리함에 만족했고, 기업들은 건물을 짓기도 전에 도면과 모델 하우스만 보고 선금을 지불하는 맘씨 좋은 소비자 덕에 똑같은 아파트를 양산하기만 하면 돈을 버는 편안한 장사에 행복해 했다. 그리고 비싸도 일단 청약에만 성공하면 몇 년 후 몇 배는 오를 집값에 소비자 또한 환호하는, 모두가 즐거운 ‘마법의 잔치’를 즐겼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91

(좌측) 단지에 사는 사람은 (우측) 동네에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반대로는 안 된다. 도시 이용에서 극단적인 비대칭성이 발생한 것이다. 신체 내 어떤 세포가 혼자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여 다른 부위의 기능을 적대적으로 잠식하고 결과적으로 인체의 전체 기능을 떨어트릴 때, 의학 용어로 그것을 ‘암’이라고 부른다. 다른 쪽의 희생을 제물로 증식하는 암세포가 무서운 이유는 최초 발병 위치에서 얌전히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세력을 불려 나가기 때문이다. 이를 ‘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암세포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상황이 불리할 게 없다. 자신은 비대칭적으로 (자기 쪽으로만) 혜택만 입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 현상이 발전하면 신체인 도시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신체의 종말은 암세포의 종말도 포함한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96

가족적 내內집단의 결속감에 기초한, 유난히도 내·외를 구분하는 우리의 부족적 공동체 문화는 ‘집’ 내부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외부와는 단절을 택한 ‘울타리’ 건축 문화로 형상화돼 왔다. 그리고 그 자기중심적 건축은 다시 우리의 소小집단식 공동체 문화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서로 단절된 그 소집단들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관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른바 공공의 문제, 즉 ‘도시’의 문제였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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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umb self might be a shuck, but this is true: he only does bad people. It’s how he sleeps at night. It goes without saying that he has made a living working for bad people, yes, but Billy doesn’t see this as a moral conundrum. He has no problem with bad people paying to have other bad people killed. He basically sees himself as a garbageman with a gun.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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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헬레니즘으로 정리된 서구문화가 역사의 격변을 따라 ‘놀랍게도’ 아랍으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유럽으로 재번역되고, 그것이 다시 라틴어에서 각 나라말로 번역되는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데, 이 과정을 음미하다보면 번역이 과연 저자의 표현대로 "보편적 행위"인 동시에 역자의 표현대로 "보편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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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한국처럼 시외의 먼 야산에 주로 조성됐던 묘지가 근대에 들어 도시 안으로 들어오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집 근처다 보니 기일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뿐 아니라 매일 들르는 사람이 많아지고, 올 때마다 꽃이나 화분, 인형 같은 것을 놓아두고 자발적으로 묘소 주변 관리까지 하는 시민이 늘어났다. 그러자 묘지 특유의 우울하고 칙칙한 분위기는커녕 화원에 온 마냥 밝고 기분 좋은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 또한 다수의 관리인과 자원봉사자를 두어 가족들이 두고 간 오래된 꽃을 치우고 정원수를 가꾸는 등 이런 변화를 촉진시켰다. 그 덕에 지금도 페르라세즈에는 팔짱 끼고 데이트 즐기는 연인들이나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95

이런 묘지 환경의 변화는 당연히 장례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다. 숙연하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따뜻한 분위기의 장례식에선 먼저 떠나는 가족에게 밝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눈물과 웃음이 함께 터지는 이들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해 보면 이들은 죽음을 한국인과는 분명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과 고립된 외딴곳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들르기만 한다면 집 가까이서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도시 속에 뿌리내린 공원묘지는 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마저 다르게 만들었다. 매일 마주하는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두려움은 보이지 않을 때 지속된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97

장례 건축 미학architecture funéraire이라 불리는 이 특별한 개념은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건물로 가득한 도심지처럼 묘지도 다양하고 활력 넘치는 ‘살아 있는 도시의 축소판’처럼 보이게 한다. 묘지에 설치될 예술품이나 미니어처 건축물은 가족이 가장 신뢰하는 조각가와 건축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가 무언지 모르고 받았던 그 설계 의뢰는 앞으로 자신의 가족이 영원히 머물게 될 그 고객의 마지막 집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떠나면 살아 있는 가족과 자손은 죽은 자의 무덤이 아닌, 가족의 집에 들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묘지는 죽은 자들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도시의 일부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98

쐐기돌 혹은 키스톤keystone이라 불리는 아치 상부 정중앙에 박혀 있는 돌이다. 이 돌이 중요한 이유는 양쪽에서 가운데로 쏟아지듯 기울어지는 부재들의 모든 무게를 혼자서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벽돌이나 석회석 같은 상대적으로 연성soft의 돌을 쓰더라도 이 쐐기돌만은 가장 단단한 돌을 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좌우와 상부에서 쏟아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할 거고, 만약에라도 이 쐐기돌에 금이라도 간다면 그간 만든 벽을 모두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으니 그 중요성은 보이는 것 이상이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03

‘풍수’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인 장풍득수藏風得水를 줄인 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땅의 기운을 살피는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미사여구가 있으나 한국인이 이렇게 바람과 물에 유난한 주의를 기울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전통적으로 지어 왔던 건물이 물에 약한 목조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0

배산임수가 일리가 있는 것은 높은 지형을 뒤로하고 강 같은 물이 앞에 있으면 대류 현상●으로 인해 잔잔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시간에 따라 방향이 바뀌면서 항상 바람이 부는 이유와 유사하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1

근대에 들어 배산임수를 찾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자 전통적 풍수지리설에는 강조되지 않던 보완적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향’이다. 혹독한 겨울에 북풍을 정면으로 맞을 수는 없으니 북쪽을 등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붕 처마가 길게 나오는 한옥 건물에서는 바람에 비해 향은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서향이 여름 오후에 덥긴 해도 지붕 처마가 가려 주니 실내 공간에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한옥의 모든 방은 직사광선이 아니라 마당에서 반사되는 간접광에 의지하는 구조였으므로 한옥은 향에 강하게 구속되는 집이 아니었다. 따라서 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2

쐐기돌은 조적조●가 사라진 후에도 장식으로 남았다. 배산임수가 사라져도 남향은 남았을 뿐 아니라 주택 시장을 독점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7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의 구조는 거실과 안방은 남쪽, 두 개의 애들 방과 주방은 반대쪽인 북쪽에 배치된, 4인 가족 기준 32평 표준 평면이다. 일전에 인테리어 설계 의뢰를 해 온 한 가족에게 각각의 방에서 자신이 보내는 시간을 타임워치로 측정해 보게 한 적이 있다. 측정 결과는 그곳에 사는 사람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해가 드는 남쪽의 안방과 거실은 해가 진 후에나 비로소 사람이 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가장 좋은 자리의 안방은 저녁 10시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북쪽에 있는 주방과 아이들 방은 오후 내내 형광등을 켜 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향집이 아니라 북향집에 살고 있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7

예전의 한옥은 가운데 마당에 비치는 자연광이 반사되어 모든 방에 빛이 골고루 퍼지는 구조였다. 동향이나 서향이라도 모든 방에 간접광이 비치니 별 상관없었다. 집을 굳이 ‘ㄱ’자나 ‘ㄷ’자로 만들었던 이유이자, 우리가 지금도 한옥의 툇마루에 앉았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진짜 이유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8

빛이 들지 않는 침침한 북쪽 공간으로 밀려난 사람은 하필이면 약자인 주부와 아이들이었고, 항시 밝은 남향 빛의 혜택을 입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티브이와 소파 그리고 킹사이즈 더블 침대였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9

특히 21세기 한국인의 절반이 살게 된 아파트는 오늘의 편리성, 환금성, 학군, 경제성 같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욕망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집합적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그 선호의 기원은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과 시골 할머니 집에서의 옛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고, 전통적인 가족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22

한국인에게 안방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은 단순히 잠을 자는 침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원래 전통 가옥에서 안방은 내방內房 또는 안채라 해서 가족 중 안주인을 위한 공간을 의미했다. 그래서 안방은 집의 가장 폐쇄적이고 신성한 방으로 간주되며, 대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배치됐고, 남편과 가족 외의 사람들은 허가 없이 안방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또 모든 집안일을 관리하기 위한 중심이었고, 모든 열쇠와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안주인의 공간이라 부엌과 가까이 위치했으며 밥상을 나르거나 빠른 출입을 위해 쪽문으로 직접 연결되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24

형식과 내용이 어긋나는 문화적 지체 현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남쪽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부엌은 안방에서 먼 집 반대쪽으로 보내졌고, 식탁은 주방 옆에 따로 자리 잡았다.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게 되니 안방은 예전 가족실의 기능은 상실한 채 그야말로 밤에 잠만 자는 침실로 바뀌었다. 넓은 면적은 유지한 채 큰 침대와 장롱만 하루 종일 방을 지키는 기묘한 공간이 되고 만 것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25

한옥의 마루는 마당과 바로 이어지는 공간이었으니 궂은 날에는 마당을 대신했고, 집을 외부와 연결시켜 주는 한옥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27

온돌溫突은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 난방 방법이다. 한옥의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아궁이에서 생성된 열기를 머금은 뜨거운 연기가 방바닥에 깔린 구들장 밑을 지나면서 난방이 되고, 그 연기는 구들장 끝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서구에는 로마 시대에 뜨거운 공기로 바닥 밑을 데우는 히포카우스트hypocaust라는 유사한 난방 방식이 있었으나, 겨울이 상대적으로 혹독했던 한국의 기후에서 오랜 기간 발전해 지금까지 계승돼 왔다. 온돌은 음식을 하기 위해 지핀 불의 열기를 방의 난방에 재사용했기 때문에 땔감을 구할 수 없었던 긴 겨울 동안 최소한의 자원으로 요리와 난방을 병행할 수 있었고(난방이 필요 없는 여름에는 구들과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아궁이를 사용했다), 이런 방식은 집의 구조가 바뀐 근대에도 계승됐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32

방석과 이부자리와 밥상은 이 온돌이 만들어 놓은 필연적인 ‘쐐기돌’이었다. 그런데 실내에서도 신을 벗지 않는 서양식 입식 문화의 산물인 소파, 침대, 식탁이 수입되어 집을 점령하자, 익숙한 바닥 난방의 포근함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힘든 양반다리 하지 않고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는 입식 생활을 거부할 수도 없는 정신 분열적 상황을 맞이한다. 엉덩이에 전해지는 온기가 필요했으니 소파를 등받이로 쓰고 바닥에 앉았고, 따뜻한 공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으슬으슬한 몸을 ‘지지기’ 위해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잠을 청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36

구들을 2층에까지 설치할 건축 방식이 없었으니 집은 단층으로만 지어졌고, 단층 건물로 도시를 만들 수는 없었으니 한국인은 19세기까지 1층만 있는 평면적인 ‘마을’에서만 살았다. 벽난로를 사용했던 서구나 실내 화덕을 사용했던 일본이 쉽게 다층식 건물을 지었던 이유는 난방 방식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공기 난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건물을 여러 층으로 지을 수 있게 되자 상·하수 시스템과 엘리베이터 같은 기계 시스템도 덩달아 발전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37

물론 건물을 고쳐 쓰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더 직접적인 원인은 실내를 바꿀 수 없는 벽식 구조 방식 때문이지만, 바닥 온돌도 톡톡히 한몫을 한다. 재건축으로 더 큰 집을 얻게 될 몇몇의 조합원과 일거리를 보장받을 건설 업체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몰라도 건물을 30년마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비경제적일 뿐 아니라 무책임한 짓이다. 건축은 자연 자원을 오직 고갈시키기만 하는 소모적인 행위다. 우리 나라 건축 산업의 재활용 비율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39

한국의 모든 방이 표면에 화학적 방수 처리가 된 강화마루나 석유화학 계열 장판류로 깔려 있는 이유다. 자연 원목이나 카펫, 패브릭, 바닥 벽돌, 다다미 같은 다양한 재료가 실내에 쓰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물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40

공간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쐐기돌 장식’은 우리 집 곳곳에 있다. 형식과 사용은 많은 부분 어긋나 있다. 인간은 딱 그만큼만 똑똑하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41

그런데 한국의 전통 건축이 다른 아시아 건축과 다른 점은 건물을 최대한 크게 지어 그 속에 여러 개의 방을 설치하는 것이 아닌, 건물 크기를 줄여 여러 채로 나누어 짓는 방법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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