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날
칼리 월리스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문득 떠오르는 영화들이 몇 편 있었다. 

폴 W.S. 앤더슨 감독의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1997)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2012)와 <에일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2017)이다. 버려진 우주선 탐사, 외계 생명체, 우주 식민지 개척과 같은 소재로 흥미롭게 만들어진 SF호러 영화들로 내 최애 영화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이 '구원의 날', 이 작품속에 3 in 1 믹스커피마냥 모두 들어 있는게 아닌가?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다. 남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스와 자흐라의 시점에서 각 장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홀수장은 자흐라가 짝수장은 자스가. 

이 두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부모 두 분 모두 과학자이고,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에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자흐라의 의사 어머니 제외).

물론 자흐라의 경우 아버지(그레고리 라고 박사)가 우주선에서 어떤 불미스런 일로 강제 하선된 후, 어머니와 두 쌍둥이 동생과 함께 '가족'으로 서로를 부르며 지내는 분리주의자 마을에서 성장한다. 이들의 리더는 '애덤'이란 자 인데,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무조건적으로 그를 추종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자스(바타차르야)도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의 끔직한 상황에서 우주선 추진체를 만든 어머니에 의해 간신히 홀로 탈출하게 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하늘을 보며 어째서 지구 밖의 세상을 개척할 기회가 의회의 통치 아래에 있는 시민들에게만 주어지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바람은 이해할 만한 했다. 고통스럽게 망가진 삶을 마주하는 것보다 미지의 어둠을 바라보는 쪽이 더 쉬워서 별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떤지 나는 안다. 희망과 상처와 두려움의 매듭을 가슴속에서 끌어 올려 은하계를 가로질러 빛과 먼지 사이 무의 공간으로 쏘아올리는 느낌을 잘 안다. 화성의 주거 돔이나 소행성대에 있는 광산 식민지를 차지할 음모를 꾸미는 분리주의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 P115 

자흐라의 쌍둥이 동생 둘 포함 300명을 태운 '홈스테드'호는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로 향하고, 그 시간 자흐라를 포함한 일단의 무리들이 다수의 '학생' 인질을 확보하여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를 확보하려는데, 뜻하지 않게 의문의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이 소설은 그 종착역을 향해 속도감 있게 이야기는 전개 된다.  

고고학자로서 인류 역사에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던 분열이전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하시면서 붕괴 전우주 탐사 역사를 연구했다. 붕괴에서 살아남은 의회의 설립자들을 우상처럼 생각하셨던 아빠에게 있어, UC33-X는 지구를 떠나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다는 증거이자, 그들이 자신들의 발견을 메시지로 보내올 만큼 여전히 고향 행성을 아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빠가 하우스오브위즈덤호에 왔던 이유는 수백 년 동안 거친 우주환경에서 손상된 메시지를 복구하고 해독해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 P205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에 탑승한 후, 자스는 과거의 혼란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때 같이 인질이 된 한 학생(아리아나)이 무언가에 감염되어 자흐라 일당을 공격한다. 이 틈을 타서 자스와 몇 몇 학생들은 우주선 내로 숨게 되고, 그들을 쫓는 자흐라 일당의 시선을 통해 수많은 10년전 탑승자의 시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 그 감염원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는데,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닌 의도를 갖고 만든 '기생 물체'는 인간의 모든 것을 무력화 시켜 마치 조종 받는 좀비 같게 한다.   

우리는 일찌감치 아리아나의 피부밑에서 요동치던 그것의 목적을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지각없는 병원체라ㅈ 여겼던 것을 결핍과 욕구가 있는 지각이 있는 생명체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설계를 통해 만들어진 물체였다.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물체.
인간 여자의 몸에 스며들어 신체와 언어와 의지를 통제하는 힘을 빼앗을 수 있는 물체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니. 혼란을 빚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그토록 폭력적인 행동, 피와 두려움으로 대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246 

나하리 선장이 말했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는 알 수 없는 인물 또는 인물들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공격 수단은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신경 공학적으로 설계된 병원체 또는 장치이며, 타깃으로 삼은 인물의 신경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출처도, 목적도 알 수 없다. 감염된 사람들은 대부분 즉시 사망하며 감염 초기 단계에서 자해로 부상을 입었다. 고의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매개체에 완전히 장악된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하기도 한다." - P281

이 모든 것의 발단은 예전 우주로 보냈던 '애절한저녁노래호'가 보낸 작은 우주선에서 부터다. 이 부분은 특히 영화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나오는 공기중 호흡으로 감염되는 '에일리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애절한저녁노래호는 한때 외계 문명이 둥지를 틀었던 행성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무언가에 의해 말살되었고, 지구에 안부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고를 하기 위해 UC33-X를 보냈다. - P289 

혼자 남았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궤도에서 열흘이 넘도록 응답이없다 [데이터 손상] 너무 빨랐다. 여기에서보다 더 빨랐던 것 같다. 죽은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원격으로 우주선 발사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누군가 언젠가 이 경고를 받길 바란다. 사람들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인류를 멸종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어둠을 가르며 날아왔다고 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져야 할 짐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누구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든, 이것은 애절한저녁노래호에서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우리의 임무는 끝났다.
- 기록 7, 애절한저녁노래호 UC33-X로 전송됨 - P390 

결국 둘만 남은 자흐라와 자스는 폭주하는 리더 애덤을 저지하기 위해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자흐라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병원체'의 말살을 위해 지구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생환한 자스를 통해 우주의 탄생, 생명의 시작을 묘사하며 우주 롤러코스터의 운행을 잠시 멈춘다.  

나는 어둠 속,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에 깨어났다.
우리를 만든 모든 것들은 존재의 첫 순간 동안 생겨났다. 우주가 시작되고 100만 분의 1초만큼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났을 때 전자와 쿼크라는 물질이 생겼다. 잠시 뒤 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되었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몇 분이었다. 한 번 숨을 참을 수 있는 만큼이 모든 시간이었을 때, 몇 분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입자들은 쌍으로 뭉쳤다.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고 늘어나서 몇 날이 몇 년이 되고, 몇 년은 몇백 년, 몇천 년이 되어 아무것도 없는 무로 뻗어 나갔다. 핵 주변으로 불안정한 확률 구름이 된 전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수소와 헬륨의 첫 번째 원자가 탄생했다. 100만 년, 200만 년, 재는 사람도 평가할 기억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중력은 외로운 원자들을 함께 뭉쳐 사납게 타오르는 빛을 만들고 어둠 속에 얼룩을 남겼다. - P391 

자흐라와 말라치의 죽음에서 영웅적인 모습과 안타까움이 오버랩 되어 아직도 가슴 한켠 여운으로 남는다. 이 작품이 영화화가 된다고 들었다. 과연 원작을 잘 살릴 수 있을지, 그리고 먼저 만들어졌던 SF호러물의 또 다른 걸작으로 남을 지 기대가 된다.  

이 글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도서 제공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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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애덤이 가는 길에는 애덤이 진실이라고 결정한 것들 말고는 어떤 진실도 찾을 수 없었고, 그 진실은 화창한 볕이 내리쬐다 눈 깜짝할 새 폭우가 내리는,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게 바뀌었다. 말라치가 무엇을 보았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아침이슬을 아름답게 반짝이며 먹잇감을 유인하는 거미줄이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원하는 것 많은 신 노릇을 하는 헌신을요구하고 칭찬을 집어삼키며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면서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애덤이 있었다. - P384

혼자 남았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궤도에서 열흘이 넘도록 응답이없다 [데이터 손상] 너무 빨랐다. 여기에서보다 더 빨랐던 것 같다. 죽은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원격으로 우주선 발사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누군가 언젠가 이 경고를 받길 바란다. 사람들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인류를 멸종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어둠을 가르며 날아왔다고 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져야 할 짐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누구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든, 이것은 애절한저녁노래호에서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우리의 임무는 끝났다.
- 기록 7, 애절한저녁노래호 UC33-X로 전송됨 - P390

나는 어둠 속,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에 깨어났다.
우리를 만든 모든 것들은 존재의 첫 순간 동안 생겨났다. 우주가 시작되고 100만 분의 1초만큼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났을 때 전자와 쿼크라는 물질이 생겼다. 잠시 뒤 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되었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몇 분이었다. 한 번 숨을 참을 수 있는 만큼이 모든 시간이었을 때, 몇 분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입자들은 쌍으로 뭉쳤다.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고 늘어나서 몇 날이 몇 년이 되고, 몇 년은 몇백 년, 몇천 년이 되어 아무것도 없는 무로 뻗어 나갔다. 핵 주변으로 불안정한 확률 구름이 된 전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수소와 헬륨의 첫 번째 원자가 탄생했다. 100만 년, 200만 년, 재는 사람도 평가할 기억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중력은 외로운 원자들을 함께 뭉쳐 사납게 타오르는 빛을 만들고 어둠 속에 얼룩을 남겼다. - P391

나는 망설이면서 거대한 돔과 떠오르는 태양 아래 연약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변화하고 있는 도시를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우주가 더 크고 두렵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바로잡히지 않은 실수와 알려야 할진실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모두 파괴될 수 있었다. 인간이 꿈꾼 모든 것들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도시의 옥상 정원에서 나무들이 녹색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방 안에 들어서자 의원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손의 떨림이 멈췄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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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리아나가 말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변했다는 거야.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여전히 두려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깨어있었지만 내 손을 움직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마치 내 머릿속에 갇혀서는………"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말끝을 흐렸다. 시오마라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멈출 수 없었어. 그게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멈출 방법이 없었어." - P244

아리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안 했어. 그게 말한 거야. 마치………… 입력값과 출력값이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어. 어떻게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입이 움직이고 소리도 밖으로 나오지만그냥 소음이나 마찬가지지. 젠장, 젠장.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내가 모를 수 있지? 정해진 순서가 그래서 그렇게 소리를 내고 움직이는것 같았어. 그리고 갑자기 뭔가가 생겼어. 뭔가 다른 것. 입력값이 더 많아졌달까. 방향을 바꿀 이유 같은 게 생긴 것 같았어." - P245

아리아나는 재빨리 창문 쪽을 바라보았고, 저 먼 곳에 있는 약하디약한 지구를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모르겠어. 그게 왜 여기로 왔는지. 그게 무슨 행동을 왜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어. 이유는 없어. 충동만 있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충동." - P245

우리는 일찌감치 아리아나의 피부밑에서 요동치던 그것의 목적을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지각없는 병원체라 여겼던 것을 결핍과 욕구가 있는 지각이 있는 생명체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설계를 통해 만들어진 물체였다.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물체.
인간 여자의 몸에 스며들어 신체와 언어와 의지를 통제하는 힘을 빼앗을 수 있는 물체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니. 혼란을 빚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그토록 폭력적인 행동, 피와 두려움으로 대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246

아리아나의 표정은 조심스러웠다. "마치………… 피할 수 없는 걱정거리가 있을 때, 머릿속에 계속 생각이 떠오르잖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든 단계를 떠올리잖아. 그런 느낌이었어. 그게 내게 시킨 모든 행동은 마지막을 향해 가며 거치는 단계 같았어." - P246

"나도 모르겠어." 아리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지구 쪽을 슬쩍 쳐다봤다. "내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어. 뭔가………… 프랙탈 같은 게 보였어. 내 주변을 둘러싸고 프랙탈 같은 이미지가 사방에 펼쳐져 있었고 가운데는 원이 보였는데, 그게 뭐였는지는………나도 잘 모르겠어. 우주선 안을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단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어. 나는 원으로 다가가야 했어. 나는 그것이 원하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를 통제할 수 있지?" - P247

그것은 아리아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두 배 큰 남자를 공격하고 무기를 훔치고 죽이도록 만들 수 있었다. 타본 적 없는 우주선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문을 열고, 해치를 열고, 도망을 치도록 할 수도 있었다. 10년 전 기억을 저장하고 전달해 몸을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다. 처음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우주선을 격리시키고 데이터 전송을 방해하도록 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것이 숙주로부터 필요한 기술을 학습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우주선을 조종할 수도 있었다. - P251

"회의실이야." 내가 말했지만 아직 시선은 제사민과 다른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기생충은 크기가 작았다. 바늘로 찔린 구멍을 통해 피부 속에 침입하고 뉴런과 전기 신호 수준에서 작동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리고 숙주가 세상과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 P251

하지만 우리가 꿈꾸던 새로운 인생과 별들 사이에서 누릴 아름다운 자유는 우리가 지상을 떠나기 전 이미 가망이 없었다. 셔틀에 오르던 바타차르야의 얼굴에 비쳤던 두려움과 아리아나가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그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공포를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오만했던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는 성지가 아니라 심연이었다. 이 심연에서 거의 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을 여기로 데려오면 또 다른 300명의 목숨이 심연으로 사라질 것이다. - P265

나하리 선장이 말했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는 알 수 없는 인물 또는 인물들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공격 수단은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신경 공학적으로 설계된 병원체 또는 장치이며, 타깃으로 삼은 인물의 신경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출처도, 목적도 알 수 없다. 감염된 사람들은 대부분 즉시 사망하며 감염 초기 단계에서 자해로 부상을 입었다. 고의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매개체에 완전히 장악된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하기도 한다." - P281

"적대 세력은 우주선의 운항 제약 사항을 바꾸고 있다. 충돌 방지메커니즘을 비활성화했고 대기 보정률을 0으로 줄였다. 가속 댐퍼도 모두 제거했다.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는 알고 있다. 짧게 말하면 우주선 주행 시스템에서 행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자동 및 수동 컴포넌트를 모두 비활성화시켰다. 적대 세력은 이 우주선을 지구에 충돌시키려 하고 있다." - P283

"이 우주선은 길이가 1킬로미터야." 시오마라가 말했다. "대기권에서 산산조각이 나든 어디에 충돌하든 그 영향은 재앙이 되었을거야. 수십만 명이 죽었겠지. 생물이 대량으로 멸종이 될 수도 있었어. 아마……… 아마 두 번째 ‘붕괴‘가 되었을 거야." - P285

애절한저녁노래호는 한때 외계 문명이 둥지를 틀었던 행성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무언가에 의해 말살되었고, 지구에 안부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고를 하기 위해 UC33-X를 보냈다. - P289

[데이터 손상] 초대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낙원으로, 인류애가 남아있- 세계로 오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발견한 아름다운 행성을 보러 오라는 초대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 정도로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 살았던 사람들은 그게 누구였든, 무엇이었든 아름다움에 미쳐있었다. 그들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다. 한때는 아름다운 행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행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아니다.
-기록6 애절한저녁노래호, UC33-X로 전송 - P293

그는 파냐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피부밑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살갗을 뚫을 듯 불룩 튀어나온 작고 둥근 돌이 그녀의 팔목에서 팔꿈치를 향해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 P308

"다시 약속해 줘."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지만, 나는 꾸역꾸역 말을 뱉었다.
"약속할게." 내가 말했다.
인생의 반을 거짓말을 하며 살았다. 거짓말은 내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는 밖에서 브라민의 문을 닫고 통제실로 돌아갔다. 자흐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딱히 도망칠 곳도 없었을 것이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 P335

지구의 도시들은 하나둘씩 잠잠해지겠지. 잊힌 자들의 거대한 무덤이 되어 셀 사람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다 못 셀 만큼 많은 시체에서 먼지가 날리게 될 것이다. 높은 빌딩 협곡 사이를 바람이 메아리치며 불고, 텅 빈 사막에는 맨발의 소년들이 절뚝거리며 지평선처럼 보이는 빛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텐트의 캔버스를 찢고 판자에서 페인트를 긁어내고 울타리에서 철사를 떼어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문명이 일어서고 쇠퇴했던,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다가 악착같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지구라는 세계의 밤하늘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대기로 추락하는 인공위성들의 묘지가 되어 수천, 수만 년 후 외계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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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는 찻주전자가 쉭쉭거리고, 포도덩굴은 벽 위에서 흔들거리고, 고양이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내 어머니는 배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마침내 평범한 임산부처럼 휴식을 취한다. 시위와 유인물, 처녀의 머리에 박힌 못들과 멀리 떨어져서.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4

나는 오랫동안 당신에게 없는 것들을 보았다. 인생과 모성과 욕망의 부재. 이제 당신은 이 모두를 받아들이며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삶 속으로 스민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7

나는 당신을 쓴다.

당신에 대해 쓰거나 당신에게 쓰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쓴다’라고 말해야 옳다.

꿈속의 당신 얼굴을, 거짓말과 날 위로하는 모든 것에 버무려 노트에 끄적인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8

어머니 눈이 멀리 날아가는 새를 좇는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다른 곳에서의 삶을 위해 옷과 신발을 산다. 어린 소녀는 동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부모는 마카렌코의 책에서 읽은 대로 소유는 천박하다고 가르친다. 아이는 ‘소유’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9

"너희와 헤어질 순 없어. 그러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있자. 내가 재밌는 얘기 많이 해줄게. 다들 잠들면 마당 나무 밑에 구멍을 파서 거기에 너희를 숨길 거야. 나중에 찾으러 올게. 아주 빨리! 그때 다시 놀자. 동네 아이들은 믿을 수 없어. 심술쟁이들이라서 너희를 다 망가뜨릴 거야. 난 너희를 잘 보살펴주잖아. 절대 버리지 않을게."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0

나는 옷과 책과 가구들도 다 내주어야 했다. 기증을 강요당할 때마다 매번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 집에 와서 인형이나 책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아이들 앞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내밀곤 했다.

나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손에 들린 장난감과 놀란 눈과 부끄럽게 미소 짓는 얼굴을 보았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4

마치 세상에 혼자 덩그마니 남은 것만 같았다. 나한테서 모든 걸 빼앗아가려는 두 괴물과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5

두 사람은 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즉 물질에 무관심하고 소유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거라고 확신했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5

기자가 머리를 들고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미소를 짓더군.

그리고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대답했어.

"이건 바보 같은 만화가 아니야. 난 정상이니 걱정 마. 만화에서 누샤베 봤지? 말을 하는 작은 병 말이야. 누샤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내 아내야."

"사모님 목소리라고요?"

"아내는 성우거든. 아내는 누샤베 대사를 말하고, 나는 아침마다 아내 목소리를 들어."

감방으로 돌아와서 수첩에 ‘누샤베’라고 써놨어. 안 까먹으려고 말이지.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1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멋진 이야기들을. 수집한 이야기들을 가방에 담아 다니다가 적당한 순간이 오면 주의 깊게 듣는 귀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드는 눈을 보고 싶었다. 모든 이의 귓가에 이야기의 씨를 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싹을 틔우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꽃이 사라진 자리를 가득 메우기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마리암 꽃들을 대신하기를 원했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1

그의 눈은 웃을 때도, 웃지 않을 때도 반짝였다. 환하게 빛나는 시선을 지닌 사람. 압바스는 별똥별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긴 생애를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걸 주고자 하는 사랑을, 심장이 감당 못 할 날이 올 테니까. 심장은 언젠가 터져버릴 것이다. 그 속에서 분출된 사랑이 세상을 온통 물들였으면 좋겠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3

압바스.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닌 젊은 혁명가. 플라스틱 슬리퍼. 수감자. 총살. 죽을 때까지 ‘플라스틱 슬리퍼’라는 말만 되뇐 불쌍한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고통의 단어, 생살을 벗겨낸 듯한 지독한 단어, 불의에 넋을 놓은 단어, 그들만의 단어를 되뇌는 모든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아직도 들린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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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장난이 아니다.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지지는 말라.

벼랑 끝에서 두 손이 결박되거나

커다란 안경을 끼고 흰 작업복 차림으로

실험실에서 일하다가 잡혀가지 않도록

너는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죽을 것이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깨달으리라.

삶보다 아름답고

진실한 건 없다는 사실을."

- 나짐 히크메트 -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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