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가끔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 말을 하며 태어난 것 같다. ‘말도 안 돼.’ 이 말은 ‘안녕 - 잘 잤니 - 잘 자 - 좋은 하루 보내 - 잘 지내’처럼 그냥 내 입에서 술술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동응답기처럼 나오는 고정 대사다. ‘말도 안 돼’ 소리가 뇌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상황이 어찌나 각양각색인지 나도 놀랄 지경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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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그의 저서 『배제와 포용』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섣부른 통합이나 단절이 아닌,
정체성을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신학자의 이 어려운 이야기를 저는, 나의 정체성 안에, ‘내가 지키는나‘를 확실히 함과 동시에 타인을 껴안을 여유 공간을 둔다는 그림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포용의 공간으로 햇살이 비치고, 신께서 주시는 신선한 공기가 잘 들어올 것 같습니다. - P205

저도 딸도, 좀 더 ‘쫄깃한 나‘로, ‘사적인 자아‘를 잘 다지면서 공적 연대로도 확장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많은 딸과 어머니들, 아니 관계로 인해 삶의 조건에 의해 도무지 나로 살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응원의 에너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 P205

너무 늦지 않게, 우리 사이의 가려진 꽃들이 계절의 향기를 누리며 가득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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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네티가 육아에 소질이라곤 전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사실 여자들은 대부분 육아에 소질이 없다. 이제 갓 엄마가 된 이들은 그저 어디선가 본, 배워야 한다고 주입받은 다른 여자들의 행동과 습관을 모방하면서 어떻게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4

네티는 침묵했다. 이 건물에 사는 여느 여자들과 다른 그만의 특징이었다. 이 건물의 다른 사람들은 뭔가를 모르거나 무엇이든 필요하면 일단 목청껏 소리부터 질러댔다. 네티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네티의 무지와 무능은 이 건물에 사는 다른 여자들과 친목을 다지고 유대를 형성할 다리가 되었을 것이며 잘만 활용했다면 그들의 세상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5

네티와 리처드는 엄마와 아들이라기보다는 난데없이 고아가 된 두 아이인 것처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7

하지만 나에게 그 아파트는 마치 네티라는 인물처럼 약속과 매혹이 숨 쉬는 공간이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7

우리 집 창문 아래로 보이는 누추한 다세대주택 앞 골목은 암흑과 침묵에 의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밤공기는 더 맑고, 온화하고, 밀도 높고, 설명할 길 없이 달콤하기도 했으며 그 공기는 내가 찾던 마법 같은 고립감을 더욱 증폭시켜주며 내 백일몽의 마침맞은 전달자가 되어주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84

나와 창녀와 네티, 우리 셋이 작은 레이스 조각을 어설프게 뺨에 대고 있는 이미지가 보였다. 우리 중 누구도 길고 풍성한 레이스를 갖지 못하고 그저 작은 자투리 조각 몇 개를 붙들고, 우리의 서글픈 얼굴을 그 자투리에 대고 있을 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87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매디.
한 차례의 질문과 대답이 오간 후 우리의 공통 화제는 바닥나고 말았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꼭 연락하자고 약속하고, 앞으로 서로 다시 만날 일은 없다는 것을 예감하며 헤어진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91

눈물은 바닥에 떨어지고 샘물처럼 솟아올라서 복도를 가득 메웠고 부엌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거실로 흘러들어 두 개의 침실 벽에 부딪혔고 우리 모두를 떠내려가게 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94

사력을 다한 엄마의 비탄은 다른 평범한 애도를 닦아세웠다. 우리 집의 비극은 며칠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99

그래도 부엌이 그나마 이 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소이긴 했다. 부엌에 늘 상주하던 여자들은 세라 이모와 지머먼 아줌마였다. 둘 다 남편에게 사랑과 애착을 느끼지 않는 편에 속하는 여자들로 결혼을 인생의 고난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두 여자는 우리 엄마의 경이로운 공연 옆에서 침묵을 지켰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1

네티의 눈은 고양이 눈처럼 홀연히 불투명한 색으로 변했고 목은 더 길어졌고 팔다리는 제자리로 거두어졌다. 나는 이제 식탁을 떠날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6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6

엄마는 말할 것이다.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니? 이 안에 내가 모르는 게 뭐가 있냐고? 나는 삶으로 다 살았어. 나는 다 안단 말이다. 작가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걸 말해줘야 할 거 아니니. 그런 게 하나도 없더라.너한테나 재밌었겠지. 난 어땠냐고? 그 책이 무슨 수로 재밌을 수가 있겠니?"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9

침묵, 길고 긴 침묵이 흐른다. 우리는 또 한 블록을 같이 걷는다. 침묵. 엄마는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허공을 바라본다. 나는 길을 인도하며 엄마의 걸음에 발을 맞춘다. 말을 하지도 엄마에게 말을 시키지도 않는다. 또 한 블록 침묵이 흐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1

마치 그날 저녁의 우울, 마지못해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엄마를 배신하지 않고 기다려준 이 절망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오는 사람처럼.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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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지난 4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에 부딪힌 나는 3미터를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부서진 치아 조각들을 손에 들고 무릎을 꿇고 땅에 앉아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구급차와 경찰차가 달려왔다. 꼭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한 구절처럼 사방이 고요했다. - <삶의 발명>, 정혜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8157 - P5

스페인 내전에서 총상을 당한 뒤 조지 오웰이 한 말이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은 세상이었다." 회복되려면 슬플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앞으로 또 슬픈 일을 겪게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기쁨을 위해 태어났다. 나는 이 상처투성이 지구를 엉뚱하게도 회복의 장소로 경험한 셈이다. - <삶의 발명>, 정혜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8157 - P6

돌이켜보면 교통사고가 난 날은 겸손을 배우기 딱 좋은 날이었다. 내가 무엇을 누리든 그것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많은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또 한 번 주어졌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가, 변화하는 것이 중요한가. 나를 통해 묻는 사건이 일어난 것만 같다. 경이롭게 재생할 수 있다면 나를 위해 슬퍼해준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 될 것이다. - <삶의 발명>, 정혜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8157 - P6

그러나 그 시간도 소중했다. 밀란 쿤데라의 말이 생각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인간적인 것이다." - <삶의 발명>, 정혜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8157 - P7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관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쓰던 책 『삶의 발명』은 창조의 에너지와 관계의 에너지가 균형 있게 만나 기쁘게 이 세계의 일부분이 되는 존재 방식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였다. - <삶의 발명>, 정혜윤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8157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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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그래도 1~2년은 아프실 줄 알았던 우리 가족오빠, 나, 동생,
며느리, 사위 모여서 막 회의를 했었다. 장기 계획도 세우고 단기-간호 당번 순서를 짜고, 지금 생각하면 생쇼를 했다. 아니 각오를 다지고 막 힘을 주는데 사람 무안하게 사흘 만에 싹 가시나 무정하기가, 쿨하기가 참 엄마답지 않은가. 아 뭔 시간이라도 좀 줘야지…) - P166

미워할 수 있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미쳤나?
누가 미쳤나?
미워하라고 하는 당신들의 알량함이 싫다.

내 엄마의 과부하를 알겠는가?
광증과 싸워가며
너무나 외롭게
자기 과업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을 모르겠는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다 자청한 거라고?
나도 안다!
말하긴 쉽다.
그러나 생이란, - P170

우리가
태어나겠다고
맘먹고 태어난 게 아니듯이,

그렇게 쉽게
판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엄마가 행복했다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면,
좀더 요령이 있었다면
편안했다면
다른 인생을 꿈꿔볼 기회가 있었다면

엄마를 미워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놓아라.
미워할 순 없어도 놓을 순 있지.

놓아버리리.
놓자. - P171

그런데 정말 저기 펄펄 눈보라 속에서 엄마가 왔다.

엄마……

난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정말 뭐든지.

죽일 수도, 밟을 수도, 날려보낼 수도.

......!

눈보라 속에서 날아오던 엄마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엄마 이리 와!‘

순식간이었다.
엄마는 아주 작은 아기가 되었고,
나는 나의 전부로
엄마를 껴안았다. - P172

나는 엄마를 삼켜버렸다.
정말이다.
(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발이 멈추고
지극한 평화가 찾아왔다.
…… - P173

어느 날, 난 엄마의 받을 빚 8000만 원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한 채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한 도원동을 야반도주하듯 떠났다. 연기처럼 말 한마디 없이. 빚쟁이(빚 받을 사람)가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나는 서대문구 연희동 산 밑, 연희초등학교 후문 쪽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연립주택 꼭대기 층으로 이사했고, 이후 단 한 번도 도원-용문동에 가지 않았다. 나는 딸아이와 밝고 평화로운 새세계를 건설하기를 바랐다. - P182

내가 성형수술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는 일은 없을 거예요. 누군가 내 얼굴을 보고 "정상과 계곡과 균열이 있는 ‘국립공원‘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정말로 좋습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1957~) - P193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다보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떠는 얼굴 말고, 좀 멍때리는 듯한, 아주 고요하고 가만한 표정도 있다. 그 멍청하고도 좀 걱정스러워하는 듯한 얼굴과 눈빛을 떠올리면 좀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이 안온해진다. - P195

지난해 3월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피해갈 줄 알았던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까지 받게 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투병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A.C, 즉 에이디 마이신과 사이클로포마이드라는 약을 투여하자 소문대로 머리카락, 속눈썹 등 온몸의 털이 싹 빠졌고, 탁셀을 맞자 심한 근육통과 손발의 감각 이상이 발생하며 손톱 발톱이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 P201

치료를 견디는 긴 과정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생활 환경과 태도, 패턴을 재정립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난감하기도 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어리석고 나약한 내가 내 힘으로 바꾸지 못하자, 하느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살 준비와 제대로 죽을 준비가 다르지 않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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