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그래도 1~2년은 아프실 줄 알았던 우리 가족오빠, 나, 동생,
며느리, 사위 모여서 막 회의를 했었다. 장기 계획도 세우고 단기-간호 당번 순서를 짜고, 지금 생각하면 생쇼를 했다. 아니 각오를 다지고 막 힘을 주는데 사람 무안하게 사흘 만에 싹 가시나 무정하기가, 쿨하기가 참 엄마답지 않은가. 아 뭔 시간이라도 좀 줘야지…) - P166

미워할 수 있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미쳤나?
누가 미쳤나?
미워하라고 하는 당신들의 알량함이 싫다.

내 엄마의 과부하를 알겠는가?
광증과 싸워가며
너무나 외롭게
자기 과업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을 모르겠는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다 자청한 거라고?
나도 안다!
말하긴 쉽다.
그러나 생이란, - P170

우리가
태어나겠다고
맘먹고 태어난 게 아니듯이,

그렇게 쉽게
판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엄마가 행복했다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면,
좀더 요령이 있었다면
편안했다면
다른 인생을 꿈꿔볼 기회가 있었다면

엄마를 미워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놓아라.
미워할 순 없어도 놓을 순 있지.

놓아버리리.
놓자. - P171

그런데 정말 저기 펄펄 눈보라 속에서 엄마가 왔다.

엄마……

난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정말 뭐든지.

죽일 수도, 밟을 수도, 날려보낼 수도.

......!

눈보라 속에서 날아오던 엄마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엄마 이리 와!‘

순식간이었다.
엄마는 아주 작은 아기가 되었고,
나는 나의 전부로
엄마를 껴안았다. - P172

나는 엄마를 삼켜버렸다.
정말이다.
(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발이 멈추고
지극한 평화가 찾아왔다.
…… - P173

어느 날, 난 엄마의 받을 빚 8000만 원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한 채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한 도원동을 야반도주하듯 떠났다. 연기처럼 말 한마디 없이. 빚쟁이(빚 받을 사람)가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나는 서대문구 연희동 산 밑, 연희초등학교 후문 쪽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연립주택 꼭대기 층으로 이사했고, 이후 단 한 번도 도원-용문동에 가지 않았다. 나는 딸아이와 밝고 평화로운 새세계를 건설하기를 바랐다. - P182

내가 성형수술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는 일은 없을 거예요. 누군가 내 얼굴을 보고 "정상과 계곡과 균열이 있는 ‘국립공원‘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정말로 좋습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1957~) - P193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다보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떠는 얼굴 말고, 좀 멍때리는 듯한, 아주 고요하고 가만한 표정도 있다. 그 멍청하고도 좀 걱정스러워하는 듯한 얼굴과 눈빛을 떠올리면 좀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이 안온해진다. - P195

지난해 3월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피해갈 줄 알았던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까지 받게 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투병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A.C, 즉 에이디 마이신과 사이클로포마이드라는 약을 투여하자 소문대로 머리카락, 속눈썹 등 온몸의 털이 싹 빠졌고, 탁셀을 맞자 심한 근육통과 손발의 감각 이상이 발생하며 손톱 발톱이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 P201

치료를 견디는 긴 과정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생활 환경과 태도, 패턴을 재정립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난감하기도 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어리석고 나약한 내가 내 힘으로 바꾸지 못하자, 하느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살 준비와 제대로 죽을 준비가 다르지 않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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