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묘한 동거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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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 변화를 일으킨 강한 원동력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출현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로 탈바꿈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설계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 내가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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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지향하는 사회

"물건이 아닌 인간을 지향하는 사회로 나아갈 때입니다.
기계와 컴퓨터, 이익과 재산권을 인간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면,
인종차별주의, 물질주의, 군국주의라는 세 거인을 물리치는일은 불가능해집니다."
마틴 루터 킹, <베트남을 넘어서 침묵을 깨야 할 때>,
1967년 4월 4일 뉴욕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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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져보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그 자체로 지나치게 큰 야망처럼 보인다. (2015.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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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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