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의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리로부터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공동체 지향적 유전자가 인간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공동체’보다는 ‘화폐’를 섬겨야 합니다. 인간은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시스템에 던져져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보다 통장의 잔고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216/369p)

자본가는 초기에 자본금M으로 생산수단MP과 노동력LP을 구입합니다. 생산과정P을 통해서 시장에 내다 팔 상품C′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에서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뽑아내죠.
생산된 상품C′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돈M′을 법니다.
벌어들인 돈M′은 초기 자본금M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생산과정P에서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통해 잉여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입니다.
(221-222/369p)

재투자하지 않고 동일한 생산 규모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단순재생산이라고 합니다.
(224/369p)

이윤을 재투자해 자본이 덩치를 불려나가는 이러한 과정을 확대재생산이라고 합니다.
(226/369p)

이윤을 지속적으로 재투자해서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자본의 축적이라고 합니다.
(227/369p)

불변자본C과 가변자본V의 비율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부릅니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투자비용에서 인건비 대비 설비투자비의 비중입니다.
(229/369p)

가변자본V에 대한 불변자본C의 비율이 상승하는 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고 합니다. 기술이 발달해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면서 투자액에서 인건비 비중이 줄고 설비투자비가 증가하는 것을 뜻하죠.
(230/369p)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면 산업예비군과 빈곤층의 수는 증가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현상을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이라고 불렀습니다.
(232/369p)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인간의 노동이지 이윤이 아닙니다.
(237/369p)

산업자본, 상업자본, 대부자본, 지주자본은 M—C(LP, MP)—P—C′—M′ 과정 속에서 각각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윤을 취득합니다.

산업자본은 물건을 만들어서 상업자본가에게 넘기면서 이윤을 얻고, 상업자본은 물건을 소비자에게 판매해 이윤을 얻고, 대부자본은 자금을 대출해주고 이윤을 얻고, 지주자본은 토지를 대여해주고 이윤을 얻습니다.

(250-251/369p)

산업자본의 이윤, 상업자본의 이윤, 대부자본의 이자, 지주자본의 지대는 모두 그 원천이 한곳입니다. 바로 노동자에게서 착취한 잉여가치죠. 자본 분파들은 M—C(LP, MP)—P—C′—M′에서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창출한 잉여가치를 적당히 나눠 가집니다. 하나의 파이를 조각내어 여러 명이 챙기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겠네요.
(252/369p)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자본가로서 살아가는 ‘존재’ 방식 때문에 자본가로서의 ‘의식’이 형성된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이윤 추구가 지상 목표인 자본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면, 그 구조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환경의 소중함을 간과하는 방향으로 의식이 형성됩니다.
(256-257/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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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연장해서 잉여가치의 절대량을 늘리는 행위를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고 합니다.
(139/369p)

생산력 발달과 상대적 잉여가치
(153/369p)

이렇게 기술을 독자적으로 보유한 시기에 얻을 수 있는 초과이윤을 특별잉여가치라고 부릅니다.
(157/369p)

이처럼 경쟁을 통해 도입된 새로운 기술은 상품을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을 가능하게 합니다.
(158/369p)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력의 증가가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로 귀결되는 것이죠.
(159/369p)

협동조합 기업 노동자들은 공동 소유주로서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며 일하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총회를 열어 투표로 결정하고 이윤도 공평하게 분배합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회사 대표자를 선출하기도 하고요.
(187/369p)

‘나’라고 하는 자아정체성은 이처럼 타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타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나 또한 존재할 수 없죠.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201/369p)

그래서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이기심보다는 ‘협동’이 생존에 중요한 덕목이 됩니다.
(204/369p)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노동 덕분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나의 노동 덕을 보겠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돈은 그저 사람들의 노동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매개물 역할을 할 뿐이죠.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노동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209-210p)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물신주의物神主義를 얘기했습니다. 물질이 신이 됐다는 말이죠. (211/369p)

사람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게임의 법칙 탓에 이기적이도록 길들여집니다.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니까요. (212/369p)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는 게 중요합니다. 인정받으면 무리에서 배제될 확률은 낮아지고 생존과 번식 확률은 높아집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있겠죠. 이런 삶의 방식이 진화 기간 내내 지속되면서 우리의 유전자에 인정욕구라는 흔적을 남긴 것은 아닐까요? (215/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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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far as Eichmann could see, no one protested, no one refused to cooperate. "Immerzu fahren hier die Leute zu ihrem eigenen Begräbnis" (Day in day out the people here leave for their own funeral), as a Jewish observer put it in Berlin in 1943.
(Eichmann in Jerusalem, 115p)

To a Jew this role of the Jewish leaders in the destruction their own people is undoubtedly the darkest chapter of the whole dark story.
(Eichmann in Jerusalem, 117p)

We need mention here only in passing the so-called "inner emigration" in Germany—those people who frequently had held positions, even high ones, in the Third Reichand who, after the end of the war, told themselves and the world at large that they had always been "inwardly opposed" to the regime.
(Eichmann in Jerusalem, 126p)

In Kant‘s philosophy, that source was practical reason; in Eichmann‘s household use of him, it was the will of the Führer. (Eichmann in Jerusalem,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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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민족을 파괴하는 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한 이러한 역할은 유대인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모든 어두운 이야기 가운데 가장 어두운 장을 이룬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앞서 언급한 적이 있는 라울 힐베르크의 권위 있는 저술 『유럽 유대인의 파멸』(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에서, 이전에도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그의 병적이고도 지저분한 세부사항까지 처음으로 노출된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88p)

아이히만이 아는 한에서는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아무도 협력을 거절하지 않았다. 1943년 베를린에서 한 유대인목격자가 쓴 것처럼 "매일매일 사람들은 자신의 장례식장을 향해 이곳을떠났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85p)

우리는 여기서 독일에서의 이른바 ‘내면적 이주‘ (inner emigration, 제3제국에서 종종 지위를 가졌던 사람들, 심지어 고위직을 가진 자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자기들은 정권에 대해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를 했다고 말한 사람들)에 대해 단지 스쳐 지나가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8p)

칸트의 철학에서 그 원천은 실천이성이었다.
아이히만이 말하는칸트의 가정적 사용에서 그 원천은 총통의 의지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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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자본, 가변자본은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생산물에 이전되는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개념입니다.
원료나 기계 같은 생산수단은 가치가 변하지 않고 상품에 고스란히 이전되니 불변자본이고, 노동력은 노동자의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시키니 가변자본이라고 했죠.
반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이라는 개념은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가운데 ‘임금에 해당하는 부분’과 ‘자본가의 이윤으로 전환되는 부분’을 구분하는 개념입니다.
(126-127/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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