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관계는 쌍방의 생식 세포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헤겔의 자적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성의 조직을 그 전체 속에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44
반음양(半陰陽)의 경우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서도 흔히 발견된다. 또 나비나 갑각류(甲殼類)에 있어서는 수컷과 암컷의 성격이 일종의 모자이크처럼 병치되어 있는 반음양(半陰陽)의 실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태아가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어도 양분을 섭취하는 환경에 따라서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개미·꿀벌·흰개미에 있어서 유충(幼蟲)을 암컷으로 완성시키느냐, 아니면 성적 성숙을 저지시켜 그것을 일벌의 대열로 돌리느냐 하는 것은 영양 여하에 좌우된다. 이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환경적인 영향은 유기체 전체에 미친다. 곤충에 있어서 몸체는 아주 이른 시기에 성적으로 결정되지만 생식선에는 좌우되지 않는다. - P46
척추 동물의 수컷이나 암컷에 있어서 몸체는 동일하며, 그래서 이것을 중성적 요소로 보고 있다. 이것에 성의 특질을 부여하는 것은 생식선에서 나오는 호르몬이다. 분배된 호르몬의 어떤 것은 자극제로서, 또다른 것은 진정제로서 작용한다. 생식기계(生殖器系) 자체도 체세포적 성질을 띠고 있으며, 양성적 원형(原型)에서 출발하여 호르몬의 영향에 따라 뚜렷한 모습을 갖춰 나간다는 것을 발생학은 증명하고 있다. 호르몬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두 성적 가능성의 어느 쪽도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반음양(陰陽)이 생긴다. - P46
그러나 포유 동물의 암놈과 수놈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같은 짧은 시간에 정자가 그와는 별물(別物)이 되어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가, 수놈의 생명은 정자를 통해 자기를 초월하여 타자가 된다는 점에 있다. 이와 같이 수놈은 자기의 개체성을 초월하는 순간에 다시 자기를 그 속에 가두어 둔다. 반대로 난자는 성숙하여 수란관(輸卵管)으로 떨어지기 위하여 여포(濾胞)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부터 암컷에서 분리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래(外來)의 생식 세포에 의하여 침입을 당하면 난자는 자궁 속에 자리를 잡고 만다. 암놈은 먼저 침범을 당하고 나중에 소외된다. - P53
이런 많은 특징은 종에 대한 여자의 종속(從屬)에서 유래하고 있음이분명하다. 이 검토의 가장 명백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여자는 모든포유 동물의 암놈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소외되고, 또 이 소외를 가장치열하게 거부하고 있다. 다른 어떠한 암놈에 있어서도 유기체의 생식기능에 대한 종속이 이 이상 절대적이고, 또 이 이상 솔직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없다. 사춘기와 폐경기의 위기, 달마다의 ‘저주’, 오랫동안 그리고 종종 곤란과 고통을 수반하는 임신, 위험한 출산, 질환, 재앙 등등이 인간의 여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여자가 개체로서자기를 주장함으로써 자기 운명에 반역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 여자의운명은 더욱더 무거워진다고 할 수 있다. 여자를 남자에다 비교하면 남자는 무한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의 생식 생활은 그가 영위하는 개인 생활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 생활은 위기도 없고, 또 일반적으로 재난도 없이 일관해서 전개되어 간다. 평균해서 여자들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오래 산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자주 병을 앓고 자기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간이 많다. 이 같은 생물학적 조건은 극히 중요하다. 이것은 여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며 또한 여자의 상황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 P65
인류에 있어서 남녀의 비교는 오로지 인간적인 전망에서만가능하다. 인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 존재하게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정의이다. 메를로퐁티가 매우 타당하게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연의 종(種)이 아닌 역사적인 관념이다. 여자는응고된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생성(生成)이다. 이런 생성의 면에서 여자를 남자에 비교시켜야 한다. 즉 여자의 ‘가능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논쟁에 있어서 그토록 많은 과오를 범한 이유는 여자의 능력을 문제시하면서 여자를 과거나 현재의 상태로 환원시키려고 하기때문이다. 사실 능력이란 현실화될 때만 명백히 증명될 수가 있다. 그러나 초월과 초아(超我)인 인간의 존재를 고려할 때 결코 계산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 P67
그의 생각으로는 이 인간 리비도는 우선 양성(兩性)에 있어서 동일하게 발전한다. 모든 어린이는 자기들을 어머니 젖가슴에고착시키는 구순기(口脣期)를 거친 다음에 항문기(肛門期)를 지나 끝으로 생식기(生殖期)에 이른다. 양성이 구분되는 것은 이 시기이다. 프로이트는 그 이전에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인정되지 않았던 한 가지 사실을 명백히 밝혀 놓았다. 남성의 색정(色情)은 결정적으로 음경(陰莖) 속에 국한된다. 이에 반하여 여자에게는 두 가지 판이한 색정 계통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유아기에 발달되는 음핵(陰核)의 계통이다. 사내아이는 생식기에 달했을 때 그 발달이 완성된다. 그는 쾌락을 자기의주체성 속에서 추구하는 자애적(自愛的) 태도에서 그 쾌락을 어떤 객체, 보통 여자에 결부시키는 타애적 태도로 옮겨 가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이행(移行)은 자애의 단계를 지나서 사춘기에 이루어진다. 그러나음경은 유아기에 있어서처럼 특권적인 색정(色情) 기관으로 그냥 머물러 있게 된다. 여자도 나르시시즘(自己愛)을 통해서 남자 위에 자신의리비도를 객체화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남자의 경우보다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는 음핵의 쾌감에서 질(膣)의 쾌감으로 옮겨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두 생식 단계가 있는 데 반하여 남자에게는 하나의 생식 단계 밖에는 없다. 그래서 여자는 성적 진화의 최후까지도 달하지 못하고 유아기에 머물러서 그 결과 신경증(神經症)을 일으킬 확률이 더 높다. - P73
나의 설명과 정신 분석학자들의 설명 사이에는 어떤 병행(竝行)관계가 있다는 것에 독자들은 주목하리라 믿는다. 그것은 남자의 관점- 정신 분석학자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이 관점을 취하고 있다. - 에서 본다면 소외 행위는 여성적으로 간주되고, 주체가 자기의 초월을 설정하는 행위는 남성적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여자의 역사>를 쓴 도널드슨은 ‘남자는 인간의 수컷이고 여자는 인간의 암컷이다‘라는 정의는 불균형적으로 비뚤어지고 말았다고 지적하였다. 남자만이 인간이고 여자는 암컷이라는 주장은 특히 정신 분석학자들 사이에서 흔히볼 수 있다. 여자가 인간으로서 행동할 때마다 남자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신 분석학자는 유아와 소녀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동화되고자 하는 것을 가리켜 ‘남성적’ 경향과 ‘여성적’ 경향 사이에 양분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설명한다. 반면에, 우리는 이것을 객체(客體)의 역할, 즉 소녀에게 제시된 ‘타자‘의 역할과 자기 자유의 요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일정한 몇 가지 사실에 있어서 일치할 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여자에게 제시된 비진정한 도피의 길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자에게 프로이트 학파나 아들러 학파와 같은 의미를 결코 부여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자는 가치의 세계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인간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이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를 아는 것이필요불가결하다. 우리는 실존의 견지에서 이 세계를 그 전체적인 상황을 통해서 연구해 갈 것이다. - P87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이유에서 프로이트의 성적 일원론과 엥겔스의경제적 일원론을 거부한다. 어떤 정신 분석학자는 여자의 모든 사회적권리 요구를 ‘남성적 반항‘의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는 여자의 성은 다소 복잡한 우여곡절을 통해서 경제적 조건을 표현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음핵’과 ‘질(陸)’의 범주는 ‘부르주아’나 ‘프롤레타리아‘의 범주처럼 살아 있는 여자를 가두어 놓기에는 똑같이 무력하다. 인간의 경제사(經濟史)처럼 개인의 드라마를 기초로 하여 인생이라는 특수한 형태를 그 통일성 속에 이해시켜 주는 실존적 하부 구조가 있다. 프로이트 학설의 가치는 실존자가 육체라는 사실에서 온다. 즉 실존자가 육체로써 다른 육체와 직면하여 자기를 느끼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실존적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에 있어 진실한 것은 실존자의 존재론적주장이 실존자에게 제공되는 물질적 가능성에 따라서, 특히 기술이 그에게 개방하는 가능성에 따라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을 인간적 현실의 전체에 통일시키지 않는다면 성과 기술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에 있어서는 초아(超我)에 의한 억제와 자아(自我)의 충동은 우연적인 사실처럼 보였다. 또 가족의 역사에 대한 엥겔스의 이론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사건들조차 신비적인 우연의 자의(恣意)에 의하여 뜻밖에 생겨난것처럼 되어 있다. 여자를 발견하기 위하여 생물학·정신 분석학 · 사적 유물론 등이 끼친 여러 가지 공헌을 우리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성적 생활·기술 등은 인간 존재의 총체적인 전망 속에 파악될 때에 한해서만 인간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완력·음경·도구의 가치는 단지 가치의 세계에서만 정의될 수가 있다. 가치는 실존자가 존재를 향해 자기를 초월하는 기본적인 투기(投企)에 의하여 지배된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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