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05년,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사명감을 갖고 갭마인더재단Gapminder Foundation을 설립했다.
(9/614p)

올라와 안나는 화를 내기보다는 그러한 분석을 이용해 ‘사실충실성factfulness’•이라는 소박하고 편안한 개념을 구체화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소개한 실용적인 생각 도구들도 함께 정의했다.
(10/614p)

사람들이 내 질문에 무척 극적이고 부정적인 답을 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 탓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추측하고, 학습할 때 끊임없이 그리고 직관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참고한다. 그래서 세계관이 잘못되면 체계적으로 잘못된 추측을 내놓는다. 한때 나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 낡은 지식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조차 세계를 오해하는 걸 보면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악마 같은 언론이나 선전 선동, 가짜 뉴스, 엉터리 사실 탓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38/614p)

‘사실충실성’은 건강한 식이요법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일상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일단 연습해보라. 그러면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을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암기하지 않고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진짜 위험성과 여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되 엉터리 정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
(42/614p)

한마디로, 세상은 더 이상 예전처럼 둘로 나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다수가 중간에 속한다. 서양과 그 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간극을 암시하는 이쪽 또는 저쪽이라는 단순한 분류는 쓰지 않는 게 옳다.
(62/614p)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나라를 두 집단으로 나누는 행위를 멈추는 것이다. 그런 구분은 이제 말이 안 된다. 세상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인이 사업 기회를 찾는 데도 도움이 안 되고,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 경제적 지원을 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72/614p)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4단계 삶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고소득층의 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세 단계 삶 사이의 큰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4단계 사람이 다른 60억 인구의 현실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약 1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산다.)
(81/614p)

간극 본능은 분할을 연상케 하지만 알고 보면 완만한 다양성에 불과하고, 차이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은 수렴하는 차이며, 갈등을 연상케 하지만 사실은 합의에 이르는 갈등이다. 여러 본능 중 간극 본능을 가장 먼저 거론하는 이유는 이 본능이 무척 흔하고, 데이터를 근본적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84/6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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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코스모스의 관계는 물질의 기원을 통한 관계이다. 그것은 생명을잉태할 수 있는 지구, 인류의 진화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걸린 지극히심오한 연줄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계속하겠다.
현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점성술도 따지고 보면 그 기원이 클라 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rolemaeus에까지 올라간다.
(117p)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은 중세의 암흑시대에 교회의 지지를 받았고 그로부터1,000년 동안 천문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마침내 1543년 폴란드의 가톨릭 성직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Micholats Coperticus가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설명하는 아주 색다른 가설을내놓았다. 그 가설의 가장 대담한 제안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었다. (121-123p)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로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케플러 이전까지 살던 기독교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모두 원이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므로, 행성들은 마땅히 원 궤도를 따라 돌아야 한다고 믿었다. 행성들은 하늘 높이 자리 잡고 있어, 이 땅의 ‘부패‘ 로부터 거리가 먼,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신비와 ‘완벽’을 겸비한 존재라고믿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 튀코 브라헤, 코페르니쿠스도 행성이 운동하는 길은 원이라고 못박아 두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원형이 아닌 궤도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라고까지 단언했는데, 왜냐하면 "최상의 모습으로 창조된 신의 피조물을 감히 불완전하다고 여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케플러도 지구와 화성이 태양 주위를 원 궤도를 따라 돈다고 간주하고 튀코 브라헤의 관측 결과를 이해하고자 고심했던 것이다. (137p)

케플러 제1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태양은 그 타원의 초점에있다. (140p)

케플러 제2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쓴다. (141p)

케플러 제3법칙, 행성의 주기 (행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를 제곱한 것은행성과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세제곱한 것에 비례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되, 그 관계가 수학 공식P제곱근=a세제곱근을 정확하게 따른다. (143-144p)

P는 행성의 공전 주기를 1년 단위로 표시한 것이고, a는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를 천문단위‘로 잰 값이다. 천문단위란 지구와 태양사이의 평균 거리를 1로 지정한 거리 측정의 단위로서 약 1억 4960만킬로미터이다. 예를 들어 목성은 태양에서 5천문단위 떨어져 있다. 따라서 평균 거리의 세제곱은 5세제곱근=5×5×5=125가 된다. 한편 제곱해서125가 되는 수는, 대략 11 정도면 그럭저럭 맞는다.(11의 제곱은 11×11 = 121이다.) 그런데 목성이 태양을 한 바퀴 공전하는 데 정말 11년쯤 걸린다. 이런 식으로 케플러의 제3법칙을 나타내는 위의 공식은 다른 행성뿐아니라 소행성과 혜성 들의 궤도 운동에 대해서도 모두 성립한다. (144p)

케플러의 행성 운동에 관한 세 번째 법칙인 조화의 법칙, 행성 궤도의 크기를 나타내는 궤도 긴반지름과, 그 행성이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인 공전주기 사이에 다음의 관계가 정확하게 성립한다. 즉 주기의 제곱이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케플러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에 발견된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까지도 조화의 법칙을 정확하게 따른다. (145p)

여기서 내가 의도하는 바는, 천체의 작동 기제를 논함에 있어 신이 생명을 부여한 신성한 유기 생물보다 태엽이나 추 같은 동인으로 작동하는 시계 장치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시계의 운동이 시계추 단 하나에서 비롯되듯 천체들의 온갖 움직임의 거개가 극히 단순한 이 자기력 하나로 인하여 구현되는 것이다.(케플러, 중력/만유인력?)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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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지평선이 장밋빛으로 변하다가 단번에 붉게 물들었다. 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벌써 하늘로 뚜렷이 솟아올랐다. 해가 들판 전체에 걸쳐 안개를 빨아올리면서 더욱 높이 떠오르는가 했는데 이내 기차의 칸막이 안이 후텁지근해지자 사내들은 스웨터를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벗었고 마찬가지로 동요하기 시작하는 개들에겐 가만 엎드려 있으라고 꾸짖었다.
(187/662p)

이렇게 한계도 없는 영토 위에서 경계도 없는 시간 동안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빛과 하늘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공간 속에서 정신이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자크는 자신이 세상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부자라고 느꼈다.
(192/662p)

사리를 따져서 그를 설득한다든가 그냥 순순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그가 그런 식으로 화를 내는 것을 모두들 하나의 자연 현상과도 같은 것으로 여겼다.
(196/662p)

그렇게 되니 식당이란 모두에게, 돈만 내면 만사가 쉬워지지만 거기서 맛볼 수 있는 그 비난받아 마땅한 초장의 쾌락은 머지않아 반드시 위장을 통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마련인 거짓된 매력의 수상쩍은 장소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200/662p)

유행의 실질적인 힘을 과소평가하고 논리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 할머니는 오직 〈방종한 생활을 하는〉 여자들이나 그런 우스꽝스런 짓을 할 엄두를 내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터라 그녀에게 새로운 유행이란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사악한 것으로만 보였다.
(210/662p)

그렇다, 그들은 살이 아니라 피를 나눈 남편과 아내로서, 둘 다 불구로 인하여 사는 것이 그토록 힘들어진 가운데 서로 도우면서, 비록 짧은 토막말이나 간간이 던지며 무언의 대화를 이어 가는 것이 고작이지만 정상적인 부부들보다도 서로의 마음속을 더 잘 읽으면서 한데 뭉쳐서 살아왔다.
(223/662p)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난에 쪼들리지 않았지만 습관이 들어서, 그리고 또 삶의 고통을 견디어 온 사람들 특유의 불신 때문에 여전히 궁핍을 먹고 살았다. 그들은 동물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삶이란 또한 그 뱃속에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불행을 규칙적으로 낳아 놓곤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231/662p)

즉, 하루 종일토록 순진무구함과 탐욕 속에서 거침없이 뛰어다녔던 그 동네, 그러나 날이 저물어 길거리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할 때면, 나직한 발소리와 어렴풋한 목소리를 내면서 어떤 이름 모를 그림자가 하나 피에 젖은 영광인 양 약방집 전등의 붉은 불빛에 젖은 채 불쑥 나타날 때면, 그리하여 갑자기 겁이 난 아이가 식구들이 있는 곳을 찾아 가난한 자기 집을 향하여 달려갈 때면, 돌연 신비하고도 불길해지던 동네의 감미롭고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 이미지를 말이다.
(235/662p)

그는 늙어서 머리숱이 적어졌으며 지금은 유리처럼 변한 뺨과 손의 세포 조직 뒤에서 검버섯이 핀 모습으로 거기에 앉아 있었다. 몸도 전보다 더 굼뜨게 움직이는 형편이라 카나리아가 한 마리 짹짹거리고 있는 시장통으로 면한 창문 곁 등나무 의자에 가서 앉아야 비로소 편안해 하는 눈치였다.
(237/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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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케게, 목양견, 젖소, 옥수수 등에서 볼 수 있는 인위 도태의 핵심은 식물과 동물의 외형적 특성과 행동 형질 들이 그대로 유전된다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특정 변종의 번식을 조장하고 다른 변종의 번식을 억제해 왔다.
(71-72p)

인간이 동식물의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 있을진대, 자연이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연적으로 유전 형질이 변하는 과정을 우리는 자연 도태 natural selection 혹은 자연 선택이라고 한다.(72p)

자연 도태가 진화의 기작이라는 사실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위대한 발견이다. 100년도 더 전에 그들은 대자연이 생존에 더 적합한 종들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산성多産性이야말로 자연 생물계의 특성이다. 자연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개체 수보다 훨씬 더 많은 후손을 낳게 만든다. 그 많은 후손들 중에서 우연히 자연에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만 살아남게 되므로, 결국 그러한 형질을 갖고 태어난 종이 선택적으로 번성하게 된다. 유전 형질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돌연변이는 순종을 낳는다. 그러므로 돌연변이가 진화의 동인이 된다. 수많은 돌연변이들 중에서 생존율을 증대시킬 수 있는 소수만이 선택되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생물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의 기원이요 진화의 실현이다. (73-74p)

우리가 자연스럽게받아들이고 있으며 마음에 들어 하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생물 세계에 대한 전적으로 인간적인 해석인 것이다. 그러나 다윈과 월리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만큼 우리 마음에 들고 또 그만큼 인간적이지만, 설계자의 존재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 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었다. 자연 선택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 생명의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 작품으로 조탁해 왔다. (76p)

이렇게 해서 앞으로 모든 지상 생명 현상의 주인공 구실을 하게 될디옥시리보핵산 deoxyribonucleic acid 분자, 다시 말해 DNA의 원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DNA는 나선형으로 꼬인 긴 사다리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사다리의 가로대는 각각 서로 다른 네 종류의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이 바로 유전자 코드를 기술하는 네 가지 부호이다. (80p)

사다리의 가로대를 뉴클레오티드 nucleotide라고 부르며 그 가로대들이 모여서 주어진 생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설계도, 즉 유전 설계도를 이룬다. 지구상 모든 형태의 생물들은 각각 그 형태에 맞는 설계도를 갖고있다. 그러나 설계도들은 모두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개의 문자만으로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같은 언어로 씌어 있다. 유기체의 종류마다 유전 형질이 다른 이유는, 유전 설계도가 비록 같은 언어로 씌어 있지만 그 내용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는 뉴클레오티드의 변화에서 초래되고 변화된 형질은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해진다. 즉 돌연변이는 순종을 생산한다. 뉴클레오티드에 일어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다. 그래서 태어난 돌연변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비기능성 효소들을 만들게 되므로, 돌연변이는 대부부의 경우 결과적으로 해롭거나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이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려면 오랜 세월을 기다려다. 뉴클레오티드는 폭이 겨우 1센티미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지극히 작은 물질이다. 이렇게 작은 물질에서 일어난 변화들 중 지극히 일부의 경우가 이로운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81p)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복제술의 완성도는 점점 나아졌다. 마침내 특정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분자들이 한데 모여서, 일종의 분자 집합체인 최초의 세포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식물 세포는 엽록체라고 불리는 분자들로 이뤄진 아주 작은 공장들을 갖고 있다. 엽록체 공장은 햇빛, 물, 이산화탄소를 탄수화물과 산소로 바꾸는 광합성 작용을 한다. 혈액 속에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라 불리는 또 다른 종류의 분자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는 주어진 생물이 섭취한 음식물에 산소를 첨가하여 에너지를 추출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는 이 공장이 식물과 동물의 세포 안에 존재하지만, 한때 독립된 세포로 독자 활동을 했 던 시기가 있었다고 믿어진다.

사람은 100조 개가량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람 한 명 한 명은 수많은 생활 공동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군집인 셈이다.
성性은 대략 20억 년 전부터 생긴 듯하다. 그 전에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무작위적 돌연변이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82p)

생명의 탄생 이후 40억 년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지구의 생명계는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청록색의 조류類들이 지배했다. 대략6억 년 전부터 조류의 독과점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Cambrian Great Explosion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지구가 만들어지자마자 생명이 탄생했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출현은 지구와 같은 행성의 환경에서 쉽게 일어날 수있는 화학 반응들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생물은 30억 년이나되는 긴긴 세월을 녹조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지구 생명이 특화된 기관들을 갖추고 체구가 큰 유기체로 진화하기가 생명의 출현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계 행성들을 탐사하다 보면 동물이나 식물이 서식하는 곳보다 미생물의 세상을 더 흔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84p)

DNA는 완벽한 자기 복제를 통해 유전 형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일을 한다. 이와 더불어 핵의 DNA는 전달자 messanger RNA라고 불리는 또 다른 핵산을 합성하여 세포의 신진대사 활동을 관장한다. 전달자 RNA는 핵 밖으로 이동한 후 정확한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 효소의 생성을 조절한다. 결과적으로 효소가 하나 생성되고, 이 효소는 세포 내화학 반응의 특정 단계를 관리한다.
인간의 DNA는 10억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연결된 두 개의 나선이 이루는 매우 긴 사다리처럼 생겼다. 다시 말해 DNA 분자는 가로대를 10억 개나 가진 긴 사다리이다. 뉴클레오티드들이 이룰 수 있는 조합의 대부분은 아무 쓸모도 없는 단백질을 합성하므로 생명의 관점에서 무의미하다. 우리같이 복잡한 생물의 경우에도 유용한 핵산 분자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와 양성자의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90-91p)

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DNA 중합체효소가 복제 과정에서 실수를 범하면 돌연변이가 생긴다. 그러나 중합체 효소가 실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태양에서부터 오는 방사능입자나 자외선 광자도 돌연변이의 요인이 된다. 또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높은 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나 주위 환경의 화학 물질 때문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뉴클레오티드를 변화시키거나 핵산의 끈을 꼬거나 묶는다. (9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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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발코니에서 아내는 그에게 손짓을 했고 그는 연신 뛰어가다가 뒤돌아보며 밀짚모자를 흔들어 응답하더니 먼지와 더위로 잿빛이 된 거리로 달려 나갔고 더 멀리 영화관 앞 아침나절의 눈부신 햇빛 속으로 사라져 버린 뒤 다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119/662p)

앙리 코르므리도 끼여 있는 아프리카 부대는 최대한 신속히 수송되어 와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그 알 수 없는 고장 마른에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배치되었는데 군모를 마련해 쓸 겨를도 없었고 알제리에서와 같이 색깔이 바랠 정도로 햇살이 거세지도 않았으므로 아랍인과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알제리 사람들의 무리들은 번쩍거리고 말쑥한 색깔의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 채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붉고 푸른색의 과녁들이 되어 무더기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무더기로 부서져 가지고 장차 4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사내들이 진흙탕의 굴속에 엎드린 채 조명탄, 소이탄이 빗발치는 하늘 아래 1미터 간격으로 매달려 있게 될 그 비좁은 영역을 기름지게 해주기 시작하는 가운데 부질없이 진격을 예고하는 탄막(彈幕) 사격 소리만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a] 그러나 당장은 아직 소굴도 없었고 다만 빗발치는 포탄들 밑에서 오색의 밀랍 인형들처럼 녹아내리는 아프리카 부대들뿐이었으며 매일같이 수백 명의 고아들이 알제리의 방방곡곡에서 만들어져 이 아랍인, 프랑스인의 아버지 없는 아들딸들은 그 후 가르침도 유산도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 있었다.
(123-124/662p)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벌써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떠나는 적이 거의 없으니 공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고 그게 그 턱인 단조로운 생활을 하니 시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었다.
(139/662p)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이 기억을 하면 못 쓴다.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
(140/662p)

물론 그는 친구들이 불러내는 소리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의 매혹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도덕의 실천보다는 잘못을 호도하는 쪽으로 온갖 주의를 다 기울였다.
(150/662p)

또 어떤 사람들은 기름과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아랍 튀김 과자들을 팔았다. 이렇게 늘어놓은 물건들 주위에는 설탕 맛에 이끌려 달려드는 파리와 아이들의 떼거리가 서로서로 뒤를 쫓으면서 윙윙거리고 와글거렸고 상품을 벌여 놓은 진열대가 기우뚱할까 봐 걱정이 된 장사꾼은 욕을 퍼부어 대며 파리와 아이들을 한꺼번에 쫓아 버리는 것이었다.
(163/662p)

영화가 계속되는 동안 줄곧 어떤 노처녀가 피아노로 반주를 하게 되는데 레이스로 장식된 칼라로 뚜껑을 해 덮은 광천수 병 모양으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그녀의 차분한 뒷모습은 〈벤치 좌석〉의 떠들썩한 야유와 대조를 이루었다.
(165/662p)

어느 의미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고 완전한 귀머거리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백 개 남짓한 어휘들 못지않게 의성어와 손짓으로 의사 표시를 하며 지내는 터인 자신의 동생 에르네스트[1]만큼도 그녀는 생활에 섞이지 못하고 지냈다.
(171/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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