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로 올수록 의붓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히폴리토스보다는의붓아들을 사랑한 파이드라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짐을 알 수 있다. 로마시대의 세네카는 파이드라에 대한 비극을 재생산했으며, 18세기 프랑스의라신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비극을 썼다. 20세기의 유진 오닐은 파이드라 이야기를 1850년대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느릅나무 밑의 욕망 Desire Under the Elms>이라는 극으로 각색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는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특히 현대 그리스를 배경으도, 그리스의 국민배우라 할 수 있는 멜리나 메르쿠리가 주연한 영화 <페드라>도 있다. 특이한 점은 의붓아들로부터 사랑을 거부당했던 고대 그리스 비극의 파이드라와 달리 새로운 파이드라는 의붓아들의 처절한 사랑을 받으면서 서로 파국으로 향한다는 점이다.(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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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가장 활발하게 공연된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초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그리스 최대의 해양 국가로 성장해가던 시기와 겹친다. 이제 제해권은 아테네 패권의 토대가 되었고,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국의 관계는 차츰 동맹 symmachia에서 지배arche-예속 관계로 변해갔다.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자체도, 케르키라와의 제해권 다툼에 아테네가 개입했던 것이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셈이니, 궁극적으로는 아테네의 제해권 쟁패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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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족 집단의 신화·전설은 자연스럽게 변화, 진화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누군가의 의도된 목적으로 재창작되어 전파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새롭게 각색된 신화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기간에, 되도록 다수인에게 전파될 필요가 있는데, 고대 아테네에서 그 대표적 매체는 역시 극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223-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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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들은 아마도 상고기에는 이오니아인이라 부렸으나, 고전기가 시작되면서는 토박이설을 선호하다가 다시 기원전 5세 기 말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이온>에서는 이오니아 혈족의 창건자로 선포되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에우리피데스가 이를 주제로 비극을 쓰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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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배경 비극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가 죽은 줄 잘못 알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이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이름을 따서 이때부터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게해라 불리게 된다), 왕위를 이은 테세우스가 아티카 전 지역을 결집시써 통합 아티카의 초대 왕이 되었다.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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