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소모성 열병에 대해서 말하는 바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 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는 쉬우나 진단하기가 어려운 데에 반해서,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면(이는 현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27p)

그렇다면 루이 왕은 다음의 다섯 가지 실수를 범한셈입니다.
곧 약소 국가들을 섬멸한 것,
이탈리아에서 이미 강력했던 군주의 세력을 강화시킨 것,
이탈리아에 매우 강력한 외세를 끌어들인 것,
직접 통치하지 않은 것(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것/역자),
그리고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여섯 번째의 실수, 곧 베네치아인들을 격파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생애에서 이러한 실책들로 인해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교회 세력을 강화하지 않았거나 스페인 왕을 이탈리아에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베네치아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합리적이고 필수적이었을 것입니다.
(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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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강력한 침략자가 어느 나라를 공격하기만 하면, 모든 약소 세력들이 그에게 모여드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던 통치자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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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해서 지배권을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모든국가(stato)나 모든 통치체(dominio)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입니다.
군주국들은 (통치자가 오랫동안 같은 가문으로부터 내려오는) 세습 군주국이거나 신생 군주국입니다.
신생 군주국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통치하는 밀라노처럼) 전적으로 새롭게 탄생한 군주국이거나 (스페인 왕‘이 통치하는 나폴리 왕국처럼) 기왕의 세습 군주국의 군주에게 정복당하여 그 일부로 새로 편입 된 군주국입니다. (15p)

그러한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타인의 무력을 이용하는 경우와 자신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운명(fortuna)에 의한 경우와 역량(virtú)에 의한 경우가 있습니다. (15-16p)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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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공국은 교황의 지원하에서 베네치아 군대와 합세한 루이 12세의 군대에게 1497년에 점령되었다. 체사레는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와 루이 12세의 지원하에서 로마냐 지방을 영유하게 되었다. 체사레는 "통일 이탈리아"라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밀라노는 루이 12세가 지배했고, 베네치아는 강력한 독립 공화국이었다. 더구나 교황인 아버지가 급사함으로써 로마냐에서의 그의 국가 수립 계획은 좌초되었다. 체사레는 이에 피렌체와 볼로냐를 겨냥했고, 두 도시는 루이 1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루이 12세는 체사레를 견제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페르난도 3세와 함께 나폴리 왕국을 분할했으나, 프랑스 군대는 역부족으로 곧 철수하고 나폴리는 시칠리아와 함께 스페인의 장기 지배하에 들어갔다. 마키아벨리는 통치 역량과 군사력을 겸비한 체사레에게서 외세의 각축장이 된 조국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를 모델로 삼아 「군주론』을 썼다. (7p)

<군주론>의 마지막 장에서 "야만족의 폭정"으로 인해 유럽의 변방이 된 조국 이탈리아의 구출과 통일을 기원하는 마키아벨리가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피렌체는 별로 길다고로 인해 유럽의 변방이 된 조리가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 별로 길다고 할 수 없는 마키아벨리의 생애에서도 여러 정권들(메디치 가문을 대체한 사보나롤라의 신정 정치, 소데리니의 집권, 메디치 가문의 재기)이 등장한다. 상인과 귀족의 도시 피렌체는 일시적으로 사보나롤라와 소데리니 등의 통치 시기도 있었지만, 1434년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대(大)코시모(코시모 데 메디치, 1389-1464렌체의 국부(Pater Patriae)"라고 불린다), 피에로 디 코시모 데 메디치(1416-69), "대인(il Magnifico)" 로렌초(로렌초 데 메데치, 1449-92), 피에로 데 메디치(1471-1503),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우르비노 공작 1492-1519)를 거쳐 알렉산드로(1511-37)로 계승되는 메디치 가문의 대(大)코시모 가계의 100여 년 통치하에 있었다. (8p)

선조가 의사였다는 연유로 메디치(Medici)라는 씨성을 얻게 된, 세 가계(또 하나의 가계인 조벤코의 가계까지 감안하면 네 가계이다)로 이루어진 메디치 가문 중에서 특히 대(大)로렌초 가계는 피렌체를 당대 유럽의 주도적 금융도시로 만들었고 막대한 재부로 예술가들(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을 후원했다. 메디치 가문은 4명의 교황들(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피우스 4세[조반니 안젤로 데 메디치, 1499-1565], 레오 11세)과 2명의 프랑스 왕비들(카트린 드 메디시스, 마리 드 메디시스)을 배출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영욕을 상징하는 가문이었다.(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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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충분히 범블 씨를 따라다녔고 노파의 장례 준비도 잘 마쳤으니, 어린 올리버 트위스트의 뒤를 쫓아 올리버가 여전히 토비 크래킷이 버리고 도망간 도랑에 쓰러져 있는지 확인하러 떠나는 것이 좋겠다.
(454-455/9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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