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격변: 술라, 1차 삼두정치, 카이사르, 2차 삼두정치,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로마에서는 또 한 번의 정치적 내란이 생긴다. 카이사르의 양자, 훗날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칭송되는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재위 BC 27~AD 14)는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그리고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와 2차 삼두정치를 체결한다. 이는 1차 삼두정치와 달리 공인된 형태였다.
특히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 싸움의 경쟁자가 되었는데, 이후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가서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고,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Actium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기원전 27년 로마의 정권은 옥타비아누스의 차지가 된다. (148/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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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명연설

카틸리나여,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얼마나 시험할 것인가? 우리를 조롱하는 그대의 광기는 얼마나 더 오래 갈 것인가? 그대의 방종한 뻔뻔스러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Quo usque tandem abutere, Catilina, patientia nostra? Quam diu etiam furor iste tuus nos eludet? quem ad finem sese effrenata jactabit audacia?
(143-144/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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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ulares 진보당, Optimates 보수당

오늘날 정당과 유사한 조직이 생기기 시작한다.
포풀라레스populares와 옵티마테스optimates가 그것으로, 각각 오늘날 진보당과 보수당의 역할을 했다.
포풀라레스는 의미 그대로 사람들의 의견을 변호하는 민중파로, 정치를 주도해온 세나투스에 반발해 평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다. 가이우스Gaius Gracchus와 티베리우스Tiberius Gracchus 형제가 최초의 포풀라레스로 간주되며, 그 번성을 이끈 중심인물은 마리우스Gaius Marius 장군이다.
옵티마테스는 세나투스 주도의 정치를 지지한 사람들로, 대표적으로 술라Lucius Cornelius Sulla 장군이 있다. 이때 처음으로 정치가 진보와 보수로 나눠지기 시작한다.
(135-136/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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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코미티움도 존재했지만, 각자 직업 또는 상황에 따라 따로 모이는, 소위 전문 분야에 따른 모임이 존재했다.
그중 세나투스senatus라는 원로원이 있었는데, 어르신을 의미하는 라틴어 세넥스senex에서 유래한 만큼 입법, 자문 등의 국정 활동이나 집정관인 콘술consul을 선출하는 막강한 권력과 권위를 가진 모임이었다. 물론 가장 중요했던 모임은 서민들로 구성된 민회인 코미티아comitia였고, 말하자면 세나투스는 코미티아에서 나온 사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오늘날 상원senate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127/4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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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tium... Committee... Populism

로마 공화정에서는 노예가 아닌 성인 남성들이 정치적 집회 장소인 코미티움comitium에 모여 토론을 했다. 코미티움은 정당의 존재 없이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진정한 포퓰리즘populism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코미티committee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아테네에는 프닉스pnyx라는 것이 있어서,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토론했다.(124/4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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