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둘러싼 소택지의 짭짤한 아지랑이가 메인스트리트 너머 크게 파도치는 바다 안개와 뒤섞였다. 습지와 바다가 손잡고 마을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다.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금이 간 시멘트에 구멍이 뿡뿡 뚫린 일차선 도로뿐이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9
피글리 위글리 식료품점 옆에 있는 술집인 도그곤 비어홀에서는 종이를 배 모양으로 접어 구운 핫도그, 매운 칠리, 튀긴 새우를 담아 팔았다. 점잖은 여자나 아이들은 술집 안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지만 포장판매 창이 따로 나 있어 길에서 핫도그와 네히콜라(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백인 일행은 코카콜라를, 그들과 멀리 떨어진 흑인 일행은 네히콜라를 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를 주문할 수 있었다. 유색인은 정문 출입은 물론, 창밖에서도 음식을 살 수 없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0
맨발에다 어느새 짧아진 멜빵바지를 입고 선 카야는 습지의 오솔길이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섰다. 입술을 깨물며 집으로 달음질쳐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장 보고 돈 계산하는 법도 몰랐다. 하지만 허기에 등을 떼밀려 메인스트리트로 올라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피글리 위글리 식료품점을 향해 걸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1
피글리 위글리 안으로 들어간 카야는 다양한 그리츠들을 살펴보다 거칠게 갈린 노란색 가루 한 봉지를 집어들었다. ‘이 주의 특선상품’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였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3
카야는 가게에서 뛰쳐나와 최대한 빨리 습지 오솔길 쪽으로 걸었다. 엄마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마을에서는 절대로 뛰면 안 돼. 네가 뭘 훔쳤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카야는 모랫길에 닿자마자 너끈히 1킬로미터를 내리달았고 나머지는 빨리 걸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4
며칠 지나자 그리츠를 만들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저어도 덩어리가 생겼다. 그다음 주에는 등뼈를 사서—빨간 딱지가 붙은 걸로—그리츠와 무청을 함께 넣고 끓였는데 맛이 좋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5
아버지와 카야는 같은 판잣집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고, 며칠씩 얼굴을 못 보는 날도 많았다. 웬만해서는 말도 하지 않았다. 카야는 꼬마 살림꾼이 되어 제 몸을 건사하고 아버지의 저지레를 치웠다. 아버지의 식사를 차려줄 만큼의 요리 솜씨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어차피 아버지는 밥때 맞춰 들어오지도 않았고—잠자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줍고 바닥을 쓸고 설거지를 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가 돌아올 때 깔끔한 판잣집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5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가을의 달은 카야의 생일을 위해서 빛난다고. 그래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어느 날 못 위로 둥실 떠오른 탐스러운 황금빛 보름달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나 이제 일곱 살이 됐나봐." 아버지는 생일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케이크 따위는 턱도 없었다.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얘기도 일언반구 없었다. 실제로 아는 게 별로 없었던 카야는 무서워서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6
수렁을 밟고 우뚝 선 버려진 소방망루의 썩은 다리를 타고 안개가 촉수처럼 피어올랐다. 깍깍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뿐 숨 막히게 조용한 숲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8
이건 또 다른 얘기였다. 카야는 몹시 배가 고팠다. 아침 식사로는 그리츠를 끓여서 다 떨어진 소금 대신 소다크래커를 부숴 넣어 먹었다. 카야가 이미 터득한 인생의 진실은 소금 없이는 그리츠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치킨 파이는 살면서 몇 번 먹어보지 못했지만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황금빛 파이 껍질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동그란 원처럼 충만한 그레이비 맛도 입 안 가득 느껴졌다. 위장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바람에 카야는 자기도 모르게 팔메토 잎사귀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57
버스 앞쪽에서 아이들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듯 읊조렸다. "미스 캐서린 대니엘 클라크!" 점심 때 본 여자애들, 키큰말라깽이금발과 동그랗고통통한얼굴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 숨어 살았니, 습지 암탉아? 모자는 어디에다 두고 왔니, 늪 시궁쥐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3
카야는 살면서 단 하루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가리를 관찰하고 조가비를 모으는 생활만으로도 배움은 충분했다. "나는 벌써 비둘기처럼 우는 법을 아는걸." 카야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그 애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좋은 구두를 신고 다니면 뭐 한담."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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