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것, 사상과 개성의 교단에 입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교단은 어떤 식으로든 틀림없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나는 내 친구가 그 교단의 대표나 사절일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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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똑똑한 말들은 아무 가치가 없어. 아무 가치도 없다고. 다만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죄악이야. 거북이처럼 완전히 자기 자신 속으로 기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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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모습이 실제의 데미안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듯하고 아주 늙고 짐승 같고 돌 같고 아름다우면서도 차갑고 죽어 있으면서도 전례 없는 생명으로 비밀스럽게 넘치는 것 같았다. 그 고요한 공허, 그 창공과 별들의 공간, 그 고독한 죽음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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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은 종이였고 음악은 소음이었다. 가을의 나무에서 잎새들이 그런 식으로 떨어진다. 나무는 그걸 느끼지 못한다. 비나 햇살이나 서리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린다. 나무 안에서 생명은 가장 좁고 가장 내밀한 곳으로 서서히 옴츠러든다. 나무는 죽지 않는다. 나무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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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부 세계에 철저히 무관심했으며, 오로지 내 안에 귀를 기울이고 내 깊은 마음속에서 금지된 어두운 물살이 출렁이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몇 날 며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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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은 내 기억에 무척 또렷이 남아 있다. 그 서늘하고 축축하고 밤늦은 시간에 흐릿하게 타오르는 가스등을 지나 기숙사를 향해 우리 둘이 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처음으로 술에 취해 있었다. 근사하지는 않았다.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거기엔 자극이나 달콤함 같은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반항이고 무절제였으며 삶이고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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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패거리의 제일 나이 어린 축에 속했다. 하지만 마지못해 얼렁뚱땅 끼워 주는 꼬마가 아니라 술자리를 이끄는 주동자, 스타로 머지않아 자리 잡았다. 대담하게 술집을 찾아다니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나는 또다시 완전히 어둠의 세계, 악마의 편이 되었고 그 세계에서 멋진 녀석으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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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독해져서, 나와 어린 시절 사이에 에덴동산의 문을 그처럼 별로 우아하지 않게 닫아 버리는 운명을 짊어졌다. 파수꾼들이 닫힌 문을 냉혹한 빛을 발하며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고, 나 자신을 향한 향수의 깨어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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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되든 나는 아무 상관 없었다. 나만의 독특하고 별로 근사하지 못한 방식으로, 술집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며 세상과 싸웠다. 그것은 세상에 항의하는 내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렸고, 이따금 그 상황을 이런 식으로 보았다. 세상이 나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자리, 더 숭고한 임무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사람들은 망가져야지 별수 있어. 그래 봤자 세상만 손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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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알폰스 베크를 만났던 바로 그 공원에서의 일이었다. 가시나무 울타리가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이른 봄, 한 소녀가 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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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봄날 그 공원에서 나는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젊은 숙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우아한 옷차림에 영리한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눈에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내 상상력을 활발하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나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성숙해 보였으며, 윤곽이 우아하고 뚜렷한 것이 벌써 숙녀 티가 났다. 하지만 얼굴에 오만하고 소년 같은 면이 어려 있었는데, 나는 그 점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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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 앞에 다시 하나의 영상이 나타났다. 연모해 마지않는 고귀한 영상. 아, 숭배하고 숭상하고 싶은 소망이 그 어떤 욕구나 충동보다도 더 깊고 격렬하게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5]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단테의 글을 읽은 적은 없었지만, 어떤 영국 그림에서 그녀를 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그림의 사본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다. 영국 라파엘 전파[6]풍의 소녀 그림이었는데, 팔다리가 무척 길고 몸이 늘씬했으며 얼굴이 갸름하고 두 손과 표정에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내 아름답고 젊은 아가씨는 그 그림 속의 모습과 똑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늘씬함과 소년 같은 면모를 보여 주었고 얼굴에 정신이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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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들 대신에 나는 베아트리체의 영상이 있는 나의 제단을 세웠다. 나 자신을 베아트리체에게 바침으로써 곧 정신과 신들에게 바친 것이다. 나는 어두운 힘들에게서 빼낸 삶의 부분을 밝은 힘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제 나의 목적은 쾌락이 아니라 순결이었고,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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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165
내 새로운 신념을 표현하려고 새롭게 훈련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게 있던 영국의 베아트리체 그림이 그 소녀와 그리 많이 닮지 않은 상황에서 연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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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166
어떻게 이제야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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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171
자신도 완전히 괴짜였던 피스토리우스는 내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용기를 갖도록 가르쳤다. 그는 나의 말, 나의 꿈, 나의 상상과 생각에서 항상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었으며 항상 그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중하게 논평함으로써 내게 모범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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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26
우리의 종교는 마치 종교가 아닌 듯이 행해지고 있어요. 마치 이성의 일인 양 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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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29
나는 자연이 던진 주사위였다. 불확실성을 향해, 어쩌면 새로움을 향해, 어쩌면 무(無)를 향해 던진 주사위. 태고의 깊이에서 던진 이 주사위를 작용하게 하고 그 의지를 내 안에서 느끼고 완전히 나의 의지로 만드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나의 소명이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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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66
하지만 나는 자유로웠고 온종일 나 자신을 위해 살았다. 교외의 낡은 집에서 조용히 호젓하게 지냈으며, 내 책상 위에는 니체의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니체와 함께 살며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끼고 그를 끊임없이 몰아친 운명을 냄새 맡고 그와 더불어 괴로워하고, 또 그토록 냉엄하게 자신의 길을 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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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76
세계의 껍데기를 힘차게 뚫고 나오는, 황금빛 새매 머리의 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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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90
나는 이 세상에서 그 여인을 알게 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이마시고 그녀 가까이에서 숨을 쉴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다. 그녀가 내게 어머니이던 연인이던 여신이던 내 곁에 있기만 하다면야! 내 길이 그녀의 길 가까이에 있기만 하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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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293
우리는 종종 생각과 대화를 통해 세상 한복판에서 살았다. 다만 다른 차원에서 살았을 뿐이다. 우리를 대다수 사람들과 갈라놓는 것은 어떤 경계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이었다. 우리의 과제는 세상에 하나의 섬, 어쩌면 하나의 본보기를 제시하는 것, 어쨌든 다른 가능성을 예고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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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아니면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노력은 점점 더 완벽하게 깨어 있음을 지향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행복 추구는 자신들의 의견, 자신들의 이상과 의무, 자신들의 삶과 행복을 집단의 것에 점점 더 단단히 옭아매는 것을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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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유럽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인류의 막강한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 냈지만, 결국 정신을 심각하게 황폐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유럽은 전 세계를 얻은 대가로 영혼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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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증오심을 일깨우며 당시의 인류를 비좁은 목가적 삶으로부터 위험한 넓은 세상으로 몰고 가기 위한 표식이 카인에게 새겨져 있던 것처럼 말이지. 인류의 행로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모두 오로지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고 그런 행적을 남길 수 있었어. 모세와 부처님도 그랬고,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도 그랬어. 누군가 어떤 흐름에 이바지하고 어떤 좌표에 의해 움직일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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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간구해서는 안 돼요.」 그녀는 말했다. 「사랑을 요구해서도 안 돼요. 사랑은 자기 자신 안에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당기지요. 싱클레어의 사랑은 내게 끌려오고 있어요. 그 사랑이 언젠가 나를 끌어당기면, 그때 가겠어요. 나는 선물을 주지 않아요. 나를 가져가 주길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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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6 - P311
관능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현실과 상징이 서서히 중첩되었다. 그러다 내 방에서 조용히 간절하게 그녀를 생각하면, 그녀의 손이 내 손안에 있고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스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또는 그녀 곁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녀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되지 않는 순간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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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바다였고, 나는 물살이 되어 그 바다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녀는 별이었고, 나 자신도 별이 되어 그녀를 향해 갔다. 우리는 만나서 서로에게 이끌렸다고 느꼈으며 서로의 곁에 머물렀다. 가까이에서 소리를 내며 원을 그리고 환희에 차서 영원히 서로의 주변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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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감정들, 극히 사나운 감정들조차 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잔혹한 행위는 내면의 발산, 내적으로 분열된 영혼의 발산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영혼은 미친 듯이 날뛰며 죽이고 파괴하고 죽어서 새로 태어나기를 원했다.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웠으며, 그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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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따금 열쇠를 찾아서 나 자신 안으로 침잠하면, 운명의 형상들이 어두운 거울 속에서 잠들어 있는 곳으로 완전히 침잠하면, 검은 거울 위로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친구이면서 인도자인 그와 똑같은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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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7년 프랑스의 베르됭과 솜 강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후,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그해 9월과 10월 사이 불과 몇 주 만에 스위스 베른에서 쓰인 이 소설은 예술적인 창작력과 정신 분석의 만남이 빚어낸 값진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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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는 〈모든 인간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하나의 좁은 길에 대한 암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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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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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하나의 좁은 길에 대한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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