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으로 지은 냉정한 합리성은 낡은 것을 모두 때려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세우려는 젊은이의 반항적 마음에는 불쾌하게 느껴진다. 마음의 충동을 지나치게 짧은 고삐에 잡아매려고 지혜를 모았던 자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노망든 자였으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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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조각된 좁다랗고 마술적인 평행 사변형에 무한성이 스며들어 한가하게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시간도 마찬가지로 정복되었고, 숭고한 순간이 영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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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미덕이 하찮은 악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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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프게 떨리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날 밤 나는 사랑과, 죽음과, 신이 하나이며 똑같다고 느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는 심연과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고 혼돈의 심연 속에서 숨어 기다리는 무서운 삼위일체를 더욱 깊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비잔티움의 어느 신비주의자가 〈투쟁적인 단자(單子, Militant Monad)〉라고 이름지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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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짐승의 울부짖음, 에이레 아가씨의 절규 ― 이 모두가 밧줄이 되어 내 목을 졸랐다. 나는 언젠가 나이 많은 이슬람교도의 입을 통해 들었던 근엄한 격언이 머리에 떠올랐다. 〈만일 여자가 같이 자자고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신은 이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너는 지옥의 밑바닥에 유다와 자리를 같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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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뚜렷한 목적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그날 아침, 아마도 이렇게 함으로써 내 마음속의 고뇌가 문을 열고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지만) 만일 고뇌가 윤곽을 갖추고, 만일 어휘가 고뇌에 구체적인 양상을 부여한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중대한 죄를 범했다. 하지만 저지른 죄를 고해한다면 나는 안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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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며칠 사이에 작품을 끝냈다. 원고를 모아서 나는 빨간 비잔티움체 글자로 〈뱀과 백합〉이라는 제목을 써넣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심호흡을 했다. 에이레 아가씨는 이제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종이 위에 누운 그녀는 절대로 다시는 종이에서 떨어져 나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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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나에게 항상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부끄럽지 않았다면 성적인 기쁨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그런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대지가, 목마른 대지가 된 기분이었고, 내 몸속 깊숙이 들어가 숨은 여성적인 요소가 눈을 떠서 남자를 받아들이듯 하늘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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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로 새롭게 빚어 굳혀 놓은 형태 이외에는 나는 그 후 다시는 에이레 아가씨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종이 위에 누워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축적되었던 고뇌는 진실이 아니었고, 상상력에 의해 새로 태어난 존재가 진실이었다. 상상의 힘으로 나는 현실을 지워 버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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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상상, 창조하는 신과 창조하는 인간 사이의 투쟁은 얼마 동안 내 마음을 도취시켰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고 이것이 내 의무이다.」 빗속에서 오락가락하며 나는 마당에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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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것이 파멸을 뜻할지언정, 나는 신과 싸우게 되어서 기뻤다. 그는 흙을 빚어 세상을 창조했고, 나는 어휘를 빚는다. 신은 지금처럼 땅 위를 기어다니는 인간을 만들었고, 나는 꿈을 이루는 공기와 상상력으로 시간의 횡포에 항거하는 인간을, 보다 영적인 인간을 빚어내리라. 신의 인간은 죽지만, 내가 창조한 인간은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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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의 신비는 지극히 깊다. 크레타 섬에 발을 디디는 모든 사람은 핏속으로 따스하고 온화하게 퍼지는 신비한 힘을 의식하고, 영혼이 자라기 시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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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인간이다. 나도 그렇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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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33
크레타의 비밀은 세속을 초월한 문제들이 아니라, 세상 인간의 삶이 지닌 문제들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하찮은 일들과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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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자아를 제거하고, 일단 자아가 제거되면 신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모든 장애물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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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말입니다.」 나는 섣불리 반박을 했다. 「왜 선교사들은 이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원주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에 맞는 신의 모습을 버리고 그 대신 외국의 모습을 부여하도록 설득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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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의 연금술은 모든 사람이 누릴 자격이 있는 위대한 기쁨이라고 나는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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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에 하렘의 궁녀들이 저녁마다 새로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는 정원에 줄을 지어 서서 젖가슴을 내놓고 군주가 선택하기를 기다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궁녀들의 겨드랑이에 밀어 넣었다가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는 그날 저녁에 체취가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랐다.
내 앞에 줄지어 늘어선 여러 나라들은 군주의 궁녀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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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스 순례는 석 달 동안 계속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과, 섬과, 마을과, 수도원과, 해안선들을 회고해 보면, 내 가슴은 흥분과 행복감으로 울렁거린다. 그리스를 여행함은 크나큰 기쁨이요 고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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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성의 두 요소인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세계의 어느 다른 곳에서도 항상 미소 짓고, 소박한 그리스의 땅에서처럼 그토록 유기적으로 결합된 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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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눈으로 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그리스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끊임없는 정신적 승리라는 마술의 힘으로 일관된 본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에서는 정신이란 물질의 계속이요 꽃이며, 신화란 가장 긍정적인 현실의 단순하고 종합적인 표현임을 인간은 확인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정신은 그리스의 돌을 딛고 서 있었으며,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그 신성한 자취를 발견하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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