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일으킨 나는 얼굴과, 머리와, 손에 힘찬 빗발을 즐겁게 의식하며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우스가 있는 힘을 다해 대지로 내려왔고, 숨이 막힌 아내는 한껏 웃으며 남성의 물을 받아들였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65

그리스의 산과, 마을과, 흙에 비물질적이고 경쾌한 양상을 부여하던 요소는 빛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빛이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이오니아에서는 지극히 상냥하며 동양적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이집트에서는 짙고 육감적이다. 그리스에서는 빛이 완전히 영적이다. 이런 빛 속에서 사물을 뚜렷하게 볼 능력을 갖춘 인간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73

동양의 불안정하고 혼란한 함성은 그리스의 빛을 거치는 동안 점점 투명해지며, 인간화하면서 로고스로, 이성으로 변형된다. 그리스는 위대한 투쟁을 거쳐 야수를 인간으로, 동양의 노예근성을 자유로, 야만적 도취를 명석한 합리성으로 바꿔 놓는 여과기이다. 무형에 형태를, 측정이 불가능한 사물에 척도를 부여하며, 맹목적으로 맞서 싸우는 힘들에게 균형을 잡아 주는 사명은 세파에 시달린 그리스라는 바다와 땅의 힘에서 나온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77

삶이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약간의 여유를 누리기 시작하는 순간에 문명은 태어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3

이성은 시간을 정복했고, 빛은 거짓과 폭력의 검은 힘을 정복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4

그리스인들은 예술 지상주의를 섬긴 적이 없었다. 아름다움에는 항상 목적이 있어서, 삶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고대인들은 조화를 이룬 건전한 마음을 담는 그릇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가꾸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5

마음과 몸의 조화 ― 그것이 그리스인들에게는 으뜸가는 이상이었다. 한쪽이 과잉되면 그들은 야만인이라고 여겼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6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리스에서는 사실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하자 문명이 몰락했다. 따라서 사실적이고, 과장되며, 사상이 없고, 초인간적 이상이 결여된 헬레니즘 시대가 온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7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에 그리스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조국에 대한 신념은 상실되었고, 개인적 이기주의가 충일한다. 무대의 주인공은 이제 신이나 이상화한 젊음이 아니라, 쾌락과 정욕을 탐하고 회의적이며 방탕한 돈 많은 물질주의자 시민이다. 재능은 이미 천재성과 대치되었고, 이제는 기호가 재능과 자리를 바꾼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8

아마도 인간의 숭고한 노력이 초인간적인 영원의 법을 침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삶과 노력은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강렬함을 얻는다. 그러한 순간을 영원으로 변형시키자. 다른 어떤 형태의 불멸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89

「예술은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창조한 힘의 재현이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90

삶의 모든 계층이 저마다의 모습을 제대로 간직한 이 순간은 보기 드문 순간이다. 대리석으로 깎아 놓은 순간 속에는 신의 초연함과, 자유인의 자제력과, 짐승의 광포함과, 노예의 사실적인 재현이라는 모든 요소가 공존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93

절정이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균형이며, 혼돈 위에 얹힌 순간적인 평정이다. 한쪽이 조금만 더 무거워도 기울어진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94

위대한 예술가는 일상적인 현실의 꺼풀을 초월해서 영원한 불변의 상징을 본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95

그런 까닭에 고전 시대의 그리스에서는 조각가들뿐 아니라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당시 모든 승리의 기념비를 영구하게 틀림없이 해두기 위해서 신화의 상징적이고 상승시킨 상황 속에 역사를 다시 펼쳐 놓았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95

만일 열매를 맺는 삶을 원한다면 우리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무시무시한 숨결과 조화를 이루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400

이성과 경험적 추구의 전통에 따라 서양은 세계를 정복하려고 나서며, 무서운 잠재력의 충동을 받은 동양도 마찬가지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달려 나간다. 중간에 위치한 그리스는 세계의 지리적이고 정신적인 교차로이다. 거대한 두 추진력을 절충시켜 총체를 찾아내는 사명 또한 그리스의 의무이다. 과연 성공할 것인가?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402

내 생각에 그것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을 훨씬 분명하게 파악했고, 그리스의 숭고한 업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달았으며, 그리스의 비극적인 운명과 모든 그리스인이 무거운 의무를 지고 있음을 보다 깊이 의식했다는 점이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4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주라고 했었다.
3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모두 자가 격리 생활에 익숙해졌다.
인간은 원래가 적응에 능한 존재니까.
호모 사피엔스는 어느새 호모 콘피누스가 되어 있었다. - <호모 콘피누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4261 - P4

정부는 대응 단계를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하고 <미래 격리 전투 체계(FCCS, Future Confine-ment Combat System)>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미래 전투 체계(FCS, Future Combat System)에서 따온 이 조치는 표현 자체만으로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으나 동시에 지하 생활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호모 콘피누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4261 - P5

이렇게 신인류인 <B1 인류>가 탄생했다.
어느 순간 바이러스의 위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괴물이 비로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서였을까. 어쨌든 인류는 지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호모 콘피누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4261 - P7

해양의 산성화로 사라졌던 어류들이 다시 돌아오고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산호초 띠가 만들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줄어들었던 빙모가 서서히 넓어지자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북극곰들이 새끼를 낳아 금세 수를 늘려 갔다. - <호모 콘피누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4261 - P8

인류가 신인류로 변이하는 과정은 과학자들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신인류는 전보다 더 행복하거나 불행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진정한 자리가 지표면 위가 아닌 아래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됐을 뿐이다. - <호모 콘피누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4261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리석으로 지은 냉정한 합리성은 낡은 것을 모두 때려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세우려는 젊은이의 반항적 마음에는 불쾌하게 느껴진다. 마음의 충동을 지나치게 짧은 고삐에 잡아매려고 지혜를 모았던 자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노망든 자였으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7

인간에 의해 조각된 좁다랗고 마술적인 평행 사변형에 무한성이 스며들어 한가하게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시간도 마찬가지로 정복되었고, 숭고한 순간이 영원으로 바뀌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8

하찮은 미덕이 하찮은 악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17

구슬프게 떨리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날 밤 나는 사랑과, 죽음과, 신이 하나이며 똑같다고 느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는 심연과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고 혼돈의 심연 속에서 숨어 기다리는 무서운 삼위일체를 더욱 깊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비잔티움의 어느 신비주의자가 〈투쟁적인 단자(單子, Militant Monad)〉라고 이름지은 것이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0

노래, 짐승의 울부짖음, 에이레 아가씨의 절규 ― 이 모두가 밧줄이 되어 내 목을 졸랐다. 나는 언젠가 나이 많은 이슬람교도의 입을 통해 들었던 근엄한 격언이 머리에 떠올랐다. 〈만일 여자가 같이 자자고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신은 이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너는 지옥의 밑바닥에 유다와 자리를 같이하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2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뚜렷한 목적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그날 아침, 아마도 이렇게 함으로써 내 마음속의 고뇌가 문을 열고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지만) 만일 고뇌가 윤곽을 갖추고, 만일 어휘가 고뇌에 구체적인 양상을 부여한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중대한 죄를 범했다. 하지만 저지른 죄를 고해한다면 나는 안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4

나는 며칠 사이에 작품을 끝냈다. 원고를 모아서 나는 빨간 비잔티움체 글자로 〈뱀과 백합〉이라는 제목을 써넣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심호흡을 했다. 에이레 아가씨는 이제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종이 위에 누운 그녀는 절대로 다시는 종이에서 떨어져 나오지 못하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4

비는 나에게 항상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부끄럽지 않았다면 성적인 기쁨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그런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대지가, 목마른 대지가 된 기분이었고, 내 몸속 깊숙이 들어가 숨은 여성적인 요소가 눈을 떠서 남자를 받아들이듯 하늘을 받아들였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8

어휘로 새롭게 빚어 굳혀 놓은 형태 이외에는 나는 그 후 다시는 에이레 아가씨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종이 위에 누워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축적되었던 고뇌는 진실이 아니었고, 상상력에 의해 새로 태어난 존재가 진실이었다. 상상의 힘으로 나는 현실을 지워 버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8

현실과 상상, 창조하는 신과 창조하는 인간 사이의 투쟁은 얼마 동안 내 마음을 도취시켰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고 이것이 내 의무이다.」 빗속에서 오락가락하며 나는 마당에서 소리쳤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8

비록 그것이 파멸을 뜻할지언정, 나는 신과 싸우게 되어서 기뻤다. 그는 흙을 빚어 세상을 창조했고, 나는 어휘를 빚는다. 신은 지금처럼 땅 위를 기어다니는 인간을 만들었고, 나는 꿈을 이루는 공기와 상상력으로 시간의 횡포에 항거하는 인간을, 보다 영적인 인간을 빚어내리라. 신의 인간은 죽지만, 내가 창조한 인간은 살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29

크레타의 신비는 지극히 깊다. 크레타 섬에 발을 디디는 모든 사람은 핏속으로 따스하고 온화하게 퍼지는 신비한 힘을 의식하고, 영혼이 자라기 시작함을 깨닫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30

너는 인간이다. 나도 그렇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33

크레타의 비밀은 세속을 초월한 문제들이 아니라, 세상 인간의 삶이 지닌 문제들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하찮은 일들과 관련이 있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42

「춤은 자아를 제거하고, 일단 자아가 제거되면 신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모든 장애물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48

「그렇다면 말입니다.」 나는 섣불리 반박을 했다. 「왜 선교사들은 이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원주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에 맞는 신의 모습을 버리고 그 대신 외국의 모습을 부여하도록 설득합니까?」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49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의 연금술은 모든 사람이 누릴 자격이 있는 위대한 기쁨이라고 나는 믿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54

나는 옛날에 하렘의 궁녀들이 저녁마다 새로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는 정원에 줄을 지어 서서 젖가슴을 내놓고 군주가 선택하기를 기다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궁녀들의 겨드랑이에 밀어 넣었다가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는 그날 저녁에 체취가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랐다.

내 앞에 줄지어 늘어선 여러 나라들은 군주의 궁녀들 같았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56

나의 그리스 순례는 석 달 동안 계속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과, 섬과, 마을과, 수도원과, 해안선들을 회고해 보면, 내 가슴은 흥분과 행복감으로 울렁거린다. 그리스를 여행함은 크나큰 기쁨이요 고뇌이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56

나는 완전성의 두 요소인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세계의 어느 다른 곳에서도 항상 미소 짓고, 소박한 그리스의 땅에서처럼 그토록 유기적으로 결합된 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57

따라서 눈으로 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그리스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끊임없는 정신적 승리라는 마술의 힘으로 일관된 본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에서는 정신이란 물질의 계속이요 꽃이며, 신화란 가장 긍정적인 현실의 단순하고 종합적인 표현임을 인간은 확인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정신은 그리스의 돌을 딛고 서 있었으며,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그 신성한 자취를 발견하리라.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어질 날이 가까워 오자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달콤한 즙이 무르익은 무화과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면, 목마르고 굶주린 우리들이 탐을 내며 손을 뻗어 껍질을 벗기고, 껍질을 벗기는 동안 입 안에 침이 고이듯.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83

우리들은 하찮은 쾌감을 위해 벅찬 욕망을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우리들은 중대한 순간을 위해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으며, 두 친구가 아니라 원한이 맺힌 적들처럼 화가 난 듯 식식거리며 가슴을 맞대고 움켜잡고는 싸움을 벌일 경기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85

하얀 산, 프실로리티, 드히티, 높은 세 산봉우리들이 솟아오른 크레타는 거품으로 항해해 들어가는 세 돛 범선 같았다. 수많은 젖통이 달린 바다의 괴물 크레타는 파도 위에 반듯하게 누워 햇볕을 쬐었다. 아침 햇살에 나는 그녀의 손과, 발과, 꼬리와, 발기한 젖가슴을 선명하게 보았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1

나는 그녀에게 선물로 줄 원숭이는 없었지만 그녀가 가르치는 어느 학생을 통해, 내가 좋아했으며 걸핏하면 물어뜯던 작은 개를 보냈다. 그 개의 이름은 카르멘이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3

젊음은 눈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우면 되는데도 줍지 않고, 샘터로 가서 시간이라는 물을 쓸데없이 흘러 말라 버리게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을 모르는 야수 ― 그것이 젊음이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4

내 마음은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바로 그 순간 해가 떠올랐고, 신이 손으로 빚어낸 첫날처럼 반짝였다. 사로니크 만(灣)이 광채를 내뿜었고, 아이기나는 멀리 아침 빛 속에서 장미꽃처럼 만발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99

한쪽에서는 호메로스의 말처럼 갈기가 하얀 파도들이 호메로스의 신선한 시처럼 시원하게 물결쳤고, 다른 쪽에서는 기름과 빛이 가득 찬 아테나의 올리브나무와, 아폴론의 월계수와, 모든 술과 노래의 기적을 일으키는 디오니소스의 포도가 펼쳐졌다. 검소하고 건조한 대지에서는 돌멩이들이 햇빛에 장미처럼 붉게 물들었고, 산들은 운동선수처럼 완전히 알몸을 드러내고 쉬면서 평화롭게 햇볕을 쬐며 공중에서 푸르른 나래를 쳤고, 광채가 아른거렸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0

그 기쁨! 처녀의 몸을 지닌 그리스는 파도 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떠올랐고, 태양은 신랑처럼 그녀 위에 엎드렸다. 바다는 돌멩이들과 물을 길들였고, 물질의 지둔함과 거침을 떨쳐 버리고 본질만을 간직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1

아티카의 풍경은 이상적인 인간의 특성을 규정 지어서, 건강하고도 보기 좋은 몸매에 과묵하고 피상적인 부유함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억누를 능력도 갖추고, 상상력을 제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3

아티카의 풍경은 뽐내지 않고, 미사여구에 탐닉하지 않으며, 신파조로 기절하는 발작으로 타락하지 않고, 차분하고 힘찬 설득력을 지니며, 해야 할 얘기만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그것은 본질을 형성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4

아티카를 돌아다니다 보면, 겸손함과 고상함과 힘의 가장 훌륭한 교훈을 대지로부터 얻게 되리라는 예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맞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5

내 마음의 맥동(脈動)에 맞는 것은 홀수였다. 홀수의 삶은 전혀 편안하지 않다. 홀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을 바꿔 보고, 보태고, 더 밀어 보려고 한다. 그것은 한쪽 발로 땅을 딛고 다른 발은 떼어 떠나려고 한다. 어디로 갈까? 잠깐 멈춰 숨을 돌리고 새로운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음 짝수로 간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과 별이 총총한 하늘은 지구의 둘레를 얌전하게 매암을 돌지 않았다. 지구는 우주 공간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작고 하찮은 별에 지나지 않아서 노예처럼 태양의 주위를 돌았으니,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의 머리에서 왕관이 굴러 떨어졌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53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동물의 무한한 쇠사슬에 연결된 유인원의 자손이었다. 살갗을 조금 긁어내고, 영혼을 조금 벗겨 낸다면 그 밑에서는 우리들의 할머니인 원숭이가 나타난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54

심연의 한쪽에는 유인원이, 다른 쪽에는 수도원장이 버티고 섰다. 그들 사이에서 혼돈의 위로 줄이 연결되었고, 나는 그 줄을 타고 공포에 떨며 나아갔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63

비록 내가 옳다고 생각했어도 나는 생각하는 바를 분명하게 밝힐 능력이 없었다. 위기를 맞으면 항상 도피하는 문 노릇을 해온 웃음에 나는 또다시 의존했다.

영혼의 자서전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1 - P2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