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라는 말이 ‘커피의 위세’를 실감나게 한다. 사실 커피의 교역량은 구리, 알루미늄, 밀, 설탕, 면 등보다 적다. 미국의 작가 마크 펜더그라스트Mark Pendergrast가 1999년 펴낸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Uncommon Grounds』에서 "커피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원자재로서는 지구에서 오일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가치가 있다"라고 한 것이 와전된 듯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라고 말하면서 커피에 대한 애정과 놀라움을 표현하는데, 이제는 바로잡는 게 좋겠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25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 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경쟁을 벌였다. 아프리카(에티오피아)냐 아라비아반도(예멘)냐, 그리스도 국가(에티오피아)냐, 이슬람 국가(예멘)냐의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기도 했다. 공방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절충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이 먼 옛날에는 같은 나라였다는 둥 언제 어떤 이야기들이 튀어나올지…….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26
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의 기원이 아랍인들이 주장하듯, 인류사에서 커피를 처음 경작한 자신들의 땅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고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 고원에서는 재래종 커피나무가 속속 발견된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원종native variety이 있어야 설득력을 지닌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33
에티오피아는 약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MenelikⅠ가 초대 황제가 되었다는 건국신화를 가진 그리스도 국가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염소를 잡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것은 16세기 이슬람교도에게 14년, 20세기 이탈리아에 5년뿐이다. 앞서 6세기쯤에는 당시 아비시니아Abyssinia(현재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남부 지역을 공격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되었을 것이란 게 에티오피아의 시각에서 본 커피의 역사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33
커피 그 자체에 대한 첫 기록은 안토니 파우스투스 나이론보다 770년 이상 앞선 기원후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Rhazes가 남겼다. 그는 커피를 ‘분첨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표현했다. 이어 1000년쯤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인 이븐 시나Ibn Sina는 커피나무와 생두를 ‘분Bunn’, 그 음료를 ‘분첨’이라고 구별해 적으면서 약리 효과도 기술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36
이보다 오래된 물증은 화석인데, 에티오피아의 하다르Hadar 계곡에서 발견된 320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뼈 화석이 그것이다. 발굴단이 당시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를 듣고 있다가 발견한 것이 인연이 되어 ‘루시Lucy’라는 이름을 얻은 이 화석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현재까지 인류의 기원으로 대접받는다. 루시가 발굴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으로 알려진 카파가 있다. 오늘날에는 짐마Djimmah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두 곳은 인접해 있을 뿐 같은 곳이 아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43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구약성서의 구절을 추적해도 커피나무의 고향이 예멘이라는 주장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구약성서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일로 내려오는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태초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설령 그곳이 자신들의 텃밭인 아라비아반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도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싶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53
1,000년을 훌쩍 넘는 긴 세월 동안 커피의 시원지는 예멘으로 알려졌다. 인류의 역사에서 커피나무를 처음으로 경작한 나라가 예멘이며, 커피나무가 이곳에서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거쳐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55
이런 점에서 칼디의 정체성을 따지는 것은 곧 예멘과 에티오피아의 기원은 물론 고대 종교들의 뿌리와 상호 연관성과 변화상을 성찰하는 멋진 실마리가 된다. 유대교와 다신교의 만남이 에티오피아를 잉태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신교는 구약성서에 눈을 떠 훗날 이슬람교를 내면화할 수 있는 경험을 한다. 이스라엘·예멘·에티오피아의 역사가 커피에서 만나 한데 어우러지고, 유대교·다신교·기독교·이슬람교가 구약성서를 토대로 교감을 나눈다는 사실은 커피 애호가로서는 가슴 벅찬 일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60
시바의 여왕이 이끈 아랍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인 셈어족Semitic Languages을 사용했다. 셈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 중 장남이다. 아랍인은 셈의 후손으로서 셈어족를 구사하는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셈족의 일부가 기원전 3500년쯤 북상해 나일강 인근에 살던 함족Hamite(함은 노아의 아들로 아프리카인의 조상이다)과 어우러지면서 이집트인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쯤 아라비아사막을 횡단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 셈족의 한 분파가 바빌로니아인의 조상이 되었다. 또 기원전 2500년쯤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란 고원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 정착한 셈족은 아무르인, 레바논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 무리들은 페니키아인이 되었다. 셈족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기원전 1400년쯤에는 시리아 남부 지역에 거처를 정해 아람인이 되었으며,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분파는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65
솔로몬 왕은 유대교를, 시바의 여왕은 다신교를 숭상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셈족이었다. 셈족끼리 낳은 자식은 마땅히 셈족이므로 이스라엘과 시바(예멘), 에티오피아는 같은 핏줄인 것이다. 메넬리크 1세가 황제에 오른 과정을 보면, 에티오피아의 초대 종교는 유대교였다. 22세의 청년으로 성장한 메넬리크 1세가 예루살렘을 찾아가 히브리 율법과 유대신앙을 공부하고 유대교식 세례를 받았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당시 메넬리크 1세가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솔로몬 왕의 뜻을 정중히 거절하고 에티오피아의 악숨Aksum으로 돌아와 솔로몬 혈통의 왕국을 이어갔다고 주장한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68
‘커피coffee’와 이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cafe’는 어원이 같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지명인 ‘카파Kaffa’에서 따왔다는 설, 기운을 북돋우는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 아랍어로 힘을 뜻하는 ‘카와kahw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리만족하는 통에 아랍어로 포도주wine를 의미하는 ‘카와qahwa’로 불리다가 발음이 변했다는 주장도 있다. 17세기 초 커피를 처음 접한 유럽인들은 ‘아라비아의 와인The Wine of Arabia’이라며 ‘카와’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650년쯤 영국에 전해졌을 때 헨리 블런트 경Sir Henry Blount이 ‘커피’라고 칭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카페는 커피를 즐기는 장소로 의미를 굳혀갔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79
영국 화가 존 프레더릭 루이스John Frederick Lewis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오스만 사람들의 숙소에서 본 모습을 목판의 유채화로 남겼다. <커피를 나르는 여인The Coffee Bearer>(1857년).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0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나일강 루트를 통해 이집트로, 또 하나는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전해졌다.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는 『의학 전범』에 "커피가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고 썼다. 이는 커피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기록이다. 그 당시 이미 예멘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나 이라크까지 커피 음용 문화가 전해졌다는 방증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4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중심으로 이슬람권에 커피를 널리 퍼뜨린 일등공신은 신비주의 수피교Sufism 수도승들이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카바 신전을 관장하던 수피들은 8~16세기에 걸쳐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동쪽으로 이라크와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더 멀리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4
이슬람 시아Shiah파의 한 분파인 수피Sufi는 적극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신을 만나려는 독특한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격렬하게 빙글빙글 도는 ‘수피 댄스sufi whirling’를 하면서 무아경에 빠져들었다. 수피는 ‘양의 털’을 뜻하는데, 초기 수도승들이 양모를 입고 금욕과 청빈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면적 각성을 강조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성’보다 ‘체험’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85
커피 역사에서 16세기 오스만제국이 등장하고 17세기 초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통해 커피가 유럽에 상륙한 이후의 사연은 많은 기록물 덕분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91
1600년대 들어 커피는 거의 1,000년 동안 갇혀 있던 아라비아반도를 벗어난다. 그 주역은 17세기 이슬람 학자이자 수피로 추앙받는 인도의 바바 부단Baba Budan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순례하고 예멘을 거쳐 귀국하면서 커피 씨앗 7개를 몸에 숨겨갔다. 바바 부단은 커피 씨앗을 카르나타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찬드라기리 언덕Chandragiri Hill에 심었다. 그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되었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를 대량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98
네덜란드는 1616년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나무를 빼돌려 인도와 실론Ceylon(현재의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 대대적으로 재배한다. 여러 나라가 커피 재배에 혈안이 된 건 바야흐로 유럽 시장이 열리면서 커피가 큰 부를 안겨주는 아이템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99
오스만제국은 16세기 초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커피를 들여왔다. 커피를 가늘게 갈아 체즈베에 세 차례 끓어오르게 해 마시는 특이한 방식은 ‘터키시 커피’로 불리며 독특한 음용법으로 뿌리를 내렸다. - <커피인문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7479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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