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미명 아래 괴로워하는 건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도 다가갈 수 있는 절대적인 방패가 되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27

나는 에세이를 썼다. 대학원생의 문학 비평들은 예리하게 빛나는 생각과 함께 막힘없이 뻗어 나갔다. 드디어 내 안에 있던 문장들이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고 힘겹게 하나씩 비집고 나왔으며 문장은 전에 나온 문장 옆에 재빨리 달라붙었다. 그때 하나의 이미지가 나를 사로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이미지의 형태와 윤곽이 선명하게 보였다. 문장들은 알아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지는 내 생각의 전체였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내 자신이 완전히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면의 공간은 말끔하게 치워지고 직사각형으로 변한다. 공기는 깨끗하고 너저분한 잡동사니도 없다. 그 네모난 공간은 내 이마에서 시작되어 가랑이에서 끝난다. 직사각형 한가운데는 오직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만이 자기를 더 명확하게 만들어달라고 뚝심 있게 기다린다. 이 세상 다른 어떤 것도 이 공간에 버금갈 수 없다는 걸 알 때면 무한한 환희를 느낀다. 그 어떤 ‘사랑해’도 이 공간을 침범할 수 없다. 그 환희 속에서 나는 안전하고 관능적이고 신이 나고 평화롭고 아무 위협도 영향도 받지 않는다. 행동하기 위해, 살기 위해, 존재하기 위해 이해해야 할 모든 것을 이해한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28

데이비에게 독서는 거대한 암흑을 잠시 밝혀주는 레이저 빔과 같았다―폭이 좁고 한곳만 집중적으로 비추는 강렬한 빛이었다. 20대 후반에 아내와 아들을 떠난 뒤 심리치료를 받았고 정신분석은 그의 삶을 그대로 해석하는 위대한 드라마가 되었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언어와 통찰을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 마음으로 흡수했고 자기만의 진공 속에서 현자가 되어갔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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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ive with such easy assumptions, don‘t we? For instance, that memory equals events plus time. But it‘s all much odder than this. Who was it said that memory is what we thought we‘d forgotten? And it ought to be obvious to us that time doesn‘t act as a fixative, rather as a solvent. But it‘s not convenient - it‘s not useful - to believe this; it doesn‘t help us get on with our lives; so we ignore it.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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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오늘은나 또한 거리 공연가니까. 나는 언제나 그들의 배짱, 재능, 뉴요커들의 걸음을 멈춰 세우는 그 장악력에 감탄하곤 했다. 지난밤 나는 이 도시의 대규모 행사장에서 강연을 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장벽이라는 주제였고 역시 동전을 받을 모자는 돌리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연설을 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술술 풀어냈고 관객들은 내 손안에 있었다. 물론 이런 행사를 하면 반응이 생각보다 안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제는 내 생각에도 매끄러웠다. 어젯밤에는 내가 그동안 온갖 일을 하면서 습득한 기술과 역량을 발휘했고 그러고 있다는 걸 나 스스로도 알았다. 알았기 때문에 정신은 맑았고, 생각은 명료했으며, 표현은 풍부했다. 관객들은 내 연설에 감동받은 것 같았다.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느낌을 확신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19

아주 단단한 돌덩이가 내 가슴 위에 내려앉아 자리를 잡았다. 몸을 빨리 움직일 때도, 꿈쩍없을 때도, 입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무슨 일인지 짐작한 스테판은 내 얼굴과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여러 번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다가 내 가슴이며 배며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렬한 성적 흥분이 찾아왔다. 우리는 격렬하고 거칠게 사랑을 나누었다. 끝난 다음 울음이 터졌다. 내 가슴에 올라앉아 있던 돌덩이가 치워졌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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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번 애비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했고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창가에 앉아서 온종일 이웃들을 바라보곤 했다. 매장 직원들은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누가 동네 사람이고 누가 외지인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의 등식은 간단하다. 익명성을 잃는 대신 보호를 받는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31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빛―남자들의 잔인함과, 여자들의 노여움―을 보면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네티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꼈다. 골목을 천천히 걷고 있는 네티는 내 어린 시절을 채운 불안의 한 조각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47

그는 프레임이 있는 공간에서 오브제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여자가 이 세계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자신 또한 세상 안에서 스스로를 배치하면서 드러냈고, 삶에서 얻어내고자 했던 모든 건 그 배치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배치 과정을 외운 다음 스스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바랐다. 자기를 모방하되 초월하기를.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67

나는 방 안에 앉아서 머릿속 생각들과만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다. 나는 마치 아직 말을 떼지 않은 아이 같다. 엄마의 거부는 강력하다. 나를 마취시키고 외경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나마저 포기와 굴복으로 끌어들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88

엄마는 당신이 이 생에서 얻고 싶은 것,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것을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느끼는 것 자체를 의무로 여기며 불행이라는 먹구름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시커먼 구름 밑에서 무력하게, 툭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동정과 연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으로 남아 있기로 한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88

처음으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내 몸에는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지 않았고 그에게는 모범 시민의 피가 흐르지 않았다. 나는 물리적인 환경의 부조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는 완벽하게 정리를 마친 듯한 단정한 방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명료한 사고를 섬겼고 그는 신비로운 계시에 끌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06

그제야 내가 요리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요리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왜 우리 두 사람 모두가 필요로 하는 이 서비스를 왜 번번이 내 쪽에서만 제공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그리하여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일부러 요리에 무심했고 무능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09

끊임없이 복도를 떠돌아다니면서, 창문이 뻥뻥 뚫린 방들을 들락거리면서 어딘가 다른 곳에 두고 온 듯한 연대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조화로움을 찾아 헤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11

"내가 뭘 하자고 하건 다 싫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싫거나. 어? 뭘 어떻게 해도 네 성에는 안 차잖아. 마음에 안 들잖아. 아니야? 넌 나를 그렇게 느끼게 해. 백날 그래. 지금만 그런 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그랬어. 넌 항상 불만족스럽고, 실망해 있어. 모든 것에 있어서 그래.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 노력은 요만치도 안 해. 그저 불만만 가득해서는 그 빌어먹을 흔들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잖아."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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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가끔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 말을 하며 태어난 것 같다. ‘말도 안 돼.’ 이 말은 ‘안녕 - 잘 잤니 - 잘 자 - 좋은 하루 보내 - 잘 지내’처럼 그냥 내 입에서 술술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동응답기처럼 나오는 고정 대사다. ‘말도 안 돼’ 소리가 뇌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상황이 어찌나 각양각색인지 나도 놀랄 지경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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