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드레스를 입은 여왕을 보았다. 드레스에 촘촘히 달린 눈들은 모두 투명했으며, 타오르는 불꽃 같기도 크리스털 같기도 했다. 머리에 층층이 쌓인 왕관은 드레스에 달린 눈만큼이나 많았다. 여왕은 소름 끼치게 빠른 속도로 다가와 내 목을 밟고서 끔찍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나는 말했다. "물론입니다! 오래도록 나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내 영혼의 이성입니다."

―브라반트의 하데베이흐,
13세기 시인이자 신비주의자
(엘리엇 와인버거 『천사와 성인』에 변형되어 인용)

-알라딘 eBook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중에서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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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을 하루에 백 알 넘게 복용하다 중독된 것이었다. 작가 윌리엄 버로스가 묘사했듯 이 약물은 자극성은 코카인만큼 약하지만 효능은 코데인의 두 배로 헤로인과 맞먹기에 미국 의사들은 괴링을 법정에 세우기 전에 의존증부터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합군에 체포될 당시 괴링이 가지고 있던 여행 가방에는 2만 회 넘게 투약할 수 있는 디히드로코데인이 들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남아 있던 생산분의 사실상 전부였다. - P9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은 1939년 11월9일 전선에서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르비틴을 더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상황이 열악합니다. 편지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만 쓰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편지를 쓴주요 용건은 페르비틴을 더 보내주십사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합니다. 하인 올림." - P10

독일어로 ‘블라우조이레‘, 즉 청산이라 불리는 액체 상태의 시안화물은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섭씨 26도에서 끓으며 연한 아몬드향을 내는데, 인류의 40퍼센트는 해당 유전자가 없어서 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 진화적 변이 때문에 아우슈비츠르케나우, 마이다네크,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에서 치클론B에 살해당한 유대인 중 상당수는 가스실을 채우는 시안화물의 냄새를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일부는 자신들의 절멸을 계획한 자들이 자살용 캡슐을 깨물며 들이마신 것과 같은 향기를 맡으며 죽었다. - P16

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는 수십 년 전 캘리포니아 오렌지에 살충제로 뿌려졌으며 멕시코인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몰래 탑승한 기차의 이를 구제하는 데 쓰였다. 객차의 나무판은 고운 파란색으로 물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의 벽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색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안화물의 진짜 기원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 P16

프러시안블루를 사용한 최초의 대화가는 1709년 네덜란드의 피터르 판데르베르프였다. 그의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지평선을 가린 구름 아래로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은은하게 빛나는 파란색 장옷은 메시아의 벌거벗은 시신을 둘러싼 제자들의 수심을 상징한다. 예수의 피부는 어찌나 창백한지 마치 쇠못에 벌어진 상처를 입술로 소독하려는 듯 무릎 꿇고서 그의 손등에 입맞추는 여인의 얼굴이 비칠 정도다. - P20

디펠의 영약에 들어 있던 성분에서 탄생한 파란색은 결국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에서뿐 아니라 마치이 색깔의 화학 구조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폭력을 유발하기라도 하는 듯 프로이센군의 제복에서도 빛난다. 그 무언가는 저 연금술사의 실험에서 이어져내려온 과오, 그늘, 실존적 얼룩이었다. 이 실험들에서 그는 동물을 산 채로 해부하고 조각조각 이어 붙여 끔찍한 키메라로 만들어서는 전기 자극을 가해 되살리려 했다. 이 괴물은 메리 셸리에게 걸작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의 영감을 선사했다. 소설에서 그녀는 인간의 모든 능력 중에서 가장 위험한 능력인 과학을 맹목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했다. - P23

비소가 신체 조직의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들어 몇 년에 걸쳐 쌓이는 끈질긴 암살자인 데 반해 시안화물은 일시에 당신의 숨을 멎게 한다. 시안화물 농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경동맥 소체의 수용체가 한꺼번에 자극되어 호흡을 중단시키는 반사가 일어난다. 빈맥, 무호흡, 경련, 심혈관 허탈에 앞서 나타나는 이 증상을 의학 문헌에서는 ‘헐떡거림‘이라고 부른다. 시안화물은 속효성 덕에 수많은 암살자에게 사랑받았다. - P26

하지만 제1차세계대전 참호 속에서 사린 가스, 겨자 가스, 염소 가스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병사들이 느낀 공포는 한 세대 전체의 무의식에 스며들었다. 역사상 최초의 대량살상무기가 초래한 공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제2차세계대전 때 가스 공격 금지 조치를 모든 나라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 P30

이프르 공격을 감독한 인물은 이 새로운 전쟁 수단의 아버지인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천재였으며, 이프르에서 죽은 병사 5000명의 피부를 검게 물들인 복잡한 분자 반응을 이해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임무 성공으로 전쟁부 화학 부서의 책임자로 승진했으며 카이저 빌헬름 2세와 만찬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아내의 분노였다.
독일의 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인 클라라 이머바르는 실험실에서 가스가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미치는지 보았을 뿐 아니라, 현장 시험중에 바람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하마터면 남편을 잃을 뻔했다. - P33

1907년 하버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그는 20세기 초에 전례 없는 세계 대기근을 몰고 올 뻔한 비료 부족 사태와 맞섰다. 하버가 아니었다면 구아노와 초석같은 천연 비료에 의존하여 농사짓던 수억 명이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 P35

하버는 질소의 성공에 고무되어 바이마르공화국을 재건하고 경제를 옥죄는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계획을 고안했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것만큼 놀라운 그 계획은 바닷물에서 금을 채취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거짓 신분으로 돌아다니며 전 세계 바다에서 물 시료 5000점을 채집했다. 그중에는 북극과 남극의 얼음 조각도 있었다.
그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금을 캐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지만, 몇 년간 고생한 끝에 자신의 처음 계산이 이 귀금속의 양을 몇 배나 과대평가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빈손으로귀국했다. - P39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 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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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는 일부러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생각했다. ‘효과가 있었던 것 같군. 이제 제시카는 내 행동에 조금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내가 당황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거야.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더 깊이 감춰진 이유들을 찾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알라딘 eBook <듄 1부 :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39

"저 나무들은 대추야잡니다. 대추야자 한 그루는 하루에 물 40리터를 쓰죠. 한 사람에게 필요한 물은 8리터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무 한 그루가 사람 다섯 명과 맞먹는 셈이죠. 저기 있는 나무가 모두 스무 그루니까 사람으로 치면 100명입니다."

-알라딘 eBook <듄 1부 :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41

폴의 얼굴 윤곽과 눈매는 그녀의 것이었지만, 아이 속에서 어른이 자라 나오듯 그 윤곽에서 아버지의 날카로움이 엿보였다.

-알라딘 eBook <듄 1부 :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44

‘짐승 같은 놈들! 웰링턴의 아내는 베네 게세리트였어. 그 흔적이 이 사람에게 분명히 남아 있어. 하코넨이 그녀를 죽인 것이 분명해.케렘78)과 같은 증오 때문에 아트레이데스에 묶여 있는 불쌍한 희생자가 또 있었군.’

-알라딘 eBook <듄 1부 :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49

"투피르 하와트가 가는 곳에는 죽음과 기만이 뒤따른다."
"그 사람을 헐뜯지 마세요."
"헐뜯는다고요? 칭찬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죽음과 기만뿐이에요. 난 단지 투피르가 쓰는 방법들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 것뿐이에요."

-알라딘 eBook <듄 1부 :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51

무앗딥이 아라키스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놀라운 속도로 배워나갔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물론 베네 게세리트는 그가 이렇게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무앗딥이 맨 처음 받은 훈련이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알아두면 될 것이다. 무앗딥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자신이 배울 수 있다는 기본적인 신념이었다. 자신이 배울 수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그리고 배우는 것이 어렵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앗딥은 모든 경험에 교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이룰란 공주의 『무앗딥의 인간성』

-알라딘 eBook <듄 1부 :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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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생쥐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다들 준비됐나요? 내가 아는 얘기 중 가장 말라비틀어진 옛이야기입니다. 다들 좀 조용히 해요! ‘정복왕 윌리엄은 교황의 옹호를 등에 업고, 지도자를 원했으며 근래의 왕위 찬탈과 정복에 상당히 익숙했던 잉글랜드인들의 복종을 얻어냈다. 머시아와 노섬브리아 백작인 에드윈과 모카는’—"

-알라딘 eBoo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중에서 - P34

"그런 줄 알았는데." 쥐가 말했다. "계속하죠. ‘머시아와 노섬브리아 백작인 에드윈과 모카는 그에 대해 지지를 선언했다. 애국자인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갠드조차 현명한 처사로 그것을 보아—’"

-알라딘 eBoo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중에서 - P34

쥐는 이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이야기를 계속했다. "‘—현명한 처사로 그것을 보아 왕세자 에드거와 함께 윌리엄을 찾아가 그에게 왕관을 권하기로 했다. 윌리엄의 행실은 처음에는 온건했다. 그러나 그가 거느린 노르만인들의 오만불손함은—’ 얘, 지금은 좀 어떤 것 같니?" 쥐는 앨리스를 향해 물었다.

-알라딘 eBoo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중에서 - P35

"내가 하려던 말은," 도도가 기분 상한 듯 말했다. "몸을 말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코커스 경주*라는 겁니다."
* 정당에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회합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 부분에 빗대어, ‘코커스 경주Caucus-race’ 자체가 힘들고 지루하지만 빙빙 돌기만 하면서 뚜렷한 성과가 없는 활동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중에서 - P35

그러고는 다들 한번 더 앨리스를 둘러싸고 모여든 가운데, 도도가 근엄하게 골무를 내밀며 "이 우아한 골무를 부디 받아주시지요"라고 말했고, 이 짧은 연설이 끝나자 모두 박수쳤다.
앨리스는 온통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여겼지만,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차마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딱히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그저 절을 하고, 가능한 한 엄숙한 얼굴로 골무를 받았다.

-알라딘 eBoo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중에서 - P37

"내 꼴이 이렇게 된 데에는 길고 슬픈 사연이 있단다!" 생쥐가 앨리스를 보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꼬리가 길긴 하지만."* 앨리스는 쥐의 꼬리를 내려다보며 궁금히 여겼다. ‘왜 슬프다고 하지?’ 그리고 앨리스는 쥐가 말하는 동안 그 생각을 계속했으므로, 앨리스의 머릿속에서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 원문에서 앨리스는 쥐가 말한 ‘tale(사연)’을 ‘tail(꼬리)’로 알아듣는다.

-알라딘 eBoo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중에서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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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o long ago, I decided to spend a few days in the West Indies. I was to go there for a short holiday. Friends had told me it was marvellous. I would laze around all day, they said, sunning myself on the silver beaches and swimming in the warm green sea.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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