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ould skin the muskrats and stretch the pelts and sell them for a lot of money. - P10

But that time had vanished for them; they refused to recognize it even if they were shown the evidence in snapshots or forced to listen to it in family conversation. - P7

With the runoff from the fields muddying the water and the pale sunlight on its surface, the water looked like butterscotch pudding on the boil. - P7

The flood had been so recent that these paths were not easy to follow. You had to kick your way through beaten-down brush and jump from one hummock of mud-plastered grass to another. - P8

They were too old to raise sticks and make shooting noises. They spoke with casual regret, as if guns were readily available to them. - P9

The river could be counted on every year to sweep off and deposit elsewhere a good number of surprising or cumbersome or bizarre or homely objects. - P9

Even the use of names that were outrageous and obscene and that grown-ups supposedly never heard would have spoiled a sense they had at these times, of taking each other’s looks, habits, family, and personal history entirely for granted. - P10

Any one of at least a dozen boys could have been substituted for any one of these three, and accepted by the others in exactly the same way. - P10

But these differences dropped away as soon as they were out of sight of the county jail and the grain elevator and the church steeples and out of range of the chimes of the courthouse clock. - P11

They had something close in front of them, a picture in front of their eyes that came between them and the world, which was the thing most adults seemed to have.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틀 사이 그녀의 얼굴은 마치 뼈 위에 얇은 가죽을 덮어놓은 것처럼 말라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표정이 닳아 없어져, 어떤 감정도 담을 수 없는 질긴 가죽만 남은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87

높고 반듯하게 솟은 그 나무들의 줄기와 가지에도 눈이 얼어 있다. 하늘은 파랗고, 차가운 햇빛이 우듬지의 윤곽을 에워싸고 있다. 한동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다가, 내가 그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냉혹할 만큼 완전하게 은희 언니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87

사람 몸을 태울 때 가장 늦게까지 타는 게 뭔지 알아? 심장이야. 저녁에 불을 붙인 몸이 밤새 타더라. 새벽에 그 자리에 가보니까, 심장만 남아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어.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92

실내의 훈기에 몸이 녹는 것을 느끼며 점심을 준비한다. 때로 대충 넘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수술 후 삼 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한 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기름 없이 볶은 새송이버섯과 데친 두부, 두 가지 나물과 현미밥 반 공기를 막 식탁에 차렸을 때 윤이가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96

저것은 단지 K 선생님의 해묵은 고통이 짓이겨진 흔적일 뿐인데, 묵묵히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내 지난 삼 년이 으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그림도 골똘히 나를 바라본다. 서로의 눈길이 어긋나, 서로가 볼 수 없는 곳을 더듬는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01

부질없는 심문과 대답 사이, 체념과 환멸과 적의를 담아, 서늘하게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
눈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시간.
내 죽음 속으로 그가 결코 들어올 수 없고, 내가 그의 생명 속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시간.
오직 삶을, 삶만을 달라고,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기어가 구걸하고 싶던 시간.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01

그녀에게 말해보고 싶었다.

새벽까지 타는 심장을 그녀가 지켜보았던 그해,
생각 속의 미로 속에서 더듬더듬 내가 움켜쥐려 한 생각들을.

시간이 정말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짐승처럼 죽지 않도록,
다음번엔 두려워하지 않을 준비를 하겠다고.
내 안에 있는 가장 뜨겁고 진실하고 명징한 것,
그것만 꺼내놓겠다고.
무섭도록 무정한 세계,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05

그러지 마,라고 그때 말했어야 했다.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 마. 잠 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 마.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08

얼핏 잠이 엷어질 때마다 숲의 산책로가 어른거렸다. 하루에 두 번, 움직일 수 있는 한 걸었던 그 길가에 흰 질경이꽃이 핀다. 여린 잎들이 버드나무에 돋아난다. 어지러운 햇빛이 돌아온다. 희거나 목이 길거나 부리가 노란 새들이 온다. 생명이 온다. 조금 더 버티면. 후회와 고통을, 깊게 찌르는 자책을, 안 지워지는 얼굴을 등지고 조금 더.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09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그녀가 회복되었다,라고 첫 문장을 쓴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10

왜 하필 오늘 그 새를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지난 십이월이었다. 영하 십오 도의 한파가 잠깐 물러간 일요일 오후에 그 새를 보았다. 산책로가 둥글게 구부러지는 곳이었는데, 서리가 내린 풀숲 가장자리에서 그것은 얼굴을 가슴 쪽으로 파묻고 죽어 있었다. 두루미 종류의 흰 새였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83

그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머리맡의 자명종을 눌러 끄며 몸을 일으켰고, 침대 옆의 책상을 더듬어 안경을 썼다. 검푸른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속옷 바람으로 서재 문을 열고 나갔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12

서재로 침대를 옮기고 난 첫 밤을 그는 가끔 기억했다. 다시 자취생 신분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홀가분하게 잠을 청하며 그는 약간의 행복마저 느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행복감은 껌에서 단물이 빠지듯 사라졌다. 대신 그는 하루하루 잠이 얇아졌다. 자신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깨곤 했으며, 일단 깨고 나면 무수하게 만져지는 어둠의 겹, 예민한 수면의 마디들을 일일이 느끼며 몸을 뒤척였다. 야근이 잦은 편이고 출근 시간이 이른 그에게 숙면은 필수적이었다. 그는 서서히 체중이 빠졌고, 더욱 서서히 말수가 줄었다. 그 변화가 워낙 완만했기에 아내를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13

이상한 것은 그의 왼손이 마치 나름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뺨의 상처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14

그는 오른손을 선반으로 뻗어 안경을 썼다. 이제 그의 모습이 정확하게 보였다. 흰 러닝셔츠는 군데군데 물방울에 젖었고, 왼손은 여전히 왼뺨의 상처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왼손을 뺨에서 떼어냈다. 순순히 떼어졌다. 그 동작은 마지못해 그의 뜻을 따르는, 내키지 않아 하는 타인의 손과 닮은 데가 있었다.
이상하다.
그는 유심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제 왼손은 얌전히 욕실 바닥을 향해 늘어뜨려져 있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14

그의 왼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막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몸 쪽으로 끌어당기고 말고 할 틈도 없이 왼손은 정확하고 기민하게 뻗어나가 그녀의 뺨에 얹혔다. 매끄러운 뺨의 감촉이 그에게 전해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커다랗게 치켜뜬 눈에 밤 불빛들이 술렁였다. 그의 왼손은 번지듯 뺨에서 미끄러져 그녀의 섬세한 콧날을, 이마를, 눈두덩을 어루만졌다.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닿았을 때에야 그의 왼손은 짧게 떨며 멈췄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25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덩어리진 어둠이 가로등 사이를 빠르게 헤엄쳐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 번쩍이는 가로등의 전구들이 거대한 안구들 같다고, 그를 위협하듯 집요하게 노려보는 것 같다고 그는 느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38

오랜만에 당신을 불러봅니다.
거긴 지낼 만한가요. 나는 여전히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서른일곱 살이 되었고, 웃을 때면 눈가에 잔주름이 파이기 시작하고, 가르마 오른쪽으로 흰머리가 꽤 났습니다. 아마 머리가 빨리 희어지려나 봐요.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1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 the last couple of decades, there has been a museum in Walley, dedicated to preserving photos and butter churns and horse harnesses and an old dentist’s chair and a cumbersome apple peeler and such curiosities as the pretty little porcelain-and-glass insulators that were used on telegraph poles. - P3

The top part, that is—the part that’s fastened onto the hollow handle. A large disk, with a smaller disk on top. In the large disk a hole to look through, as the various lenses are moved. - P3

THIS place was called Jutland. There had been a mill once, and some kind of small settlement, but that had all gone by the end of the last century, and the place had never amounted to much at any time. Many people believed that it had been named in honor of the famous sea battle fought during the First World War, but actually everything had been in ruins years before that battle ever took place. - P4

There was a pale-blue shine to the water that was not a reflection of sky. It was a whole car, down in the pond on a slant, the front wheels and the nose of it poking into the mud on the bottom, and the bump of the trunk nearly breaking the surface. Light blue was in those days an unusual color for a car, and its bulgy shape was unusual, too. They knew it right away. The little English car, the Austin, the only one of its kind surely in the whole county. It belonged to Mr. Willens, the optometrist. He looked like a cartoon character when he drove it, because he was a short but thick man, with heavy shoulders and a large head. He always seemed to be crammed into his little car as if it was a bursting suit of clothes. - P6

They could picture Mr. Willens’s face as they knew it—a big square face, which often wore a theatrical sort of frown but was never seriously intimidating. His thin crinkly hair was reddish or brassy on top, and combed diagonally over his forehead. His eyebrows were darker than his hair, thick and fuzzy like caterpillars stuck above his eyes. This was a face already grotesque to them, in the way that many adult faces were, and they were not afraid to see it drowned.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하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다가 그렇게 될 뿐이다.
매리 월스톤크래프트

-알라딘 eBook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중에서 - P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들고양이를 피하기 위해 그 여자는 무리하게 차선을 바꾼다. 오늘로 나흘째다. 노르스름한 털, 부드러운 살의 윤곽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던 고양이는 이제 거의 부패했다. 며칠 더 지나면 부피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문드러질 것이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29

내가 안 죽였어,라고 그 여자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자신의 목소리를 흔적 없이 삼킨 것이 끔찍한 소음이 아니라 더디게 저무는 여름 햇빛인 것처럼, 두 손으로 운전대를 붙든 채 미간을 찌푸린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29

액셀을 밟던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난 적도 있었다. 그 여자는 왼발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바꿔 밟으며 갓길에 차를 세우고, 공포가 가라앉을 때까지 욕설과 기도를 절반씩 섞어 뇌까렸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1

부드럽고 쓸쓸한 곡선의 몸을 옆으로 누인 산을 향해 달리며, 거대한 송곳 구멍 같은 터널로 불쑥 들어서며, 터널 입구에 핀, 상여를 장식한 것 같은 흰 꽃들을 기억하며 그 여자는 생각에 잠긴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1

훈자, 천 년 전에 멸망한 훈자국의 유적. 파키스탄 동북쪽 산간 지방의 오지. 그곳에 가려면 두 개의 육로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첫번째는 중국 신장의 국경도시인 카슈가르에서 꼬박 이틀 동안 버스로 달리는 길, 두번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버스로 하루 걸리는 길이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3

그 봄이 지나갈 때까지, 어지러운 햇빛 속을 승용차로 달려 출근할 때마다 서른두 살의 그 여자는 훈자를 생각했다. 두 눈을 시큰하게 하는 빛, 생리적인 눈물이 고이게 하는 빛, 어른어른 마성이 피어오르는 빛 속에서 커브를 꺾으며 훈자를 생각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3

어디로 눈을 들어도 해발 육천 미터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보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길. 탄식처럼 갑자기 훈자는 나타날 것이다. 지대가 높아, 늦은 봄이 되어서야 살구꽃이 지천으로 피는 곳. 가을이면 말린 살구가 가게마다 그득한 곳. 한번 들어가면 떠나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에 장기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곳.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4

그에게는 고유한 개성이라고 불러야 할 독특한 무심함이 있었는데, 그 체념에 가까운 무심함 덕분에 어떤 좌절이나 분노도 조용히 비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열정이나 연민, 깊고 끈끈한 사랑까지 침착하게, 씁쓸히 지나쳐갔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5

그 봄, 그 여자가 자신의 뻣뻣한 어깨를 주무르며,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받아들여간 것은 자신이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집에서 영원히 일을 하고 가계를 꾸려가야 할 한 사람.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부어줘야 할 단 한 사람.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6

그 후 칠 년 가까이 매달 급여의 삼분지 일씩을 원금과 이자로 자동이체 했지만, 아직 그 여자는 절반의 빚도 갚아내지 못했다. 두 차례의 감원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직위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위를 향해 기어올라갔지만, 급여는 사정에 따라 오래 동결되거나 오히려 삭감되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여전히 직장을 얻지 못했다. 또래보다 일찍 앞머리가 세었고 비스듬히 등이 굽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고, 아파트 상가의 학원에서 학원으로 건너다니며 긴 오후를 보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6

첫번째 육로의 기점인 카슈가르는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의 성소가 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끈질긴 내전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오지인 훈자는 변함없이 조용할 테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육로는 안전하다고만 하기 어려웠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7

훈자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새벽, 그 여자는 으슥한 골목에 엎어진 자신의 흙투성이 뒷모습을 내려다보는 꿈을 꾸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8

오랜 시간 계속되어온 습관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훈자를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여자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훈자가 아닌 훈자였다.
훈자가 아닌 훈자를 생각하는 일은 훈자인 훈자를 생각하는 일보다 힘이 들거나 거의 불가능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39

그 여자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맨발로 걸었고, 동이 터왔고, 시퍼런 그믐달이 어둠 속에 면도날처럼 돋아나는 것을 보았다. 소리 없이 다가온 산짐승에게 목덜미가 찢겼고, 목구멍으로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0

상담사는 그 여자의 고백에 전적으로─직업적으로─공감했고, 더 이상 양쪽 가계의 정신병력을 물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았다. 대신 세 가지의 해결책을 그 여자에게 주었다. 첫째, 아이를 돌봐줄 제삼의 조력자를 찾을 것. 둘째,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근심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셋째, 그 여자의 남편을 자신에게 보내 상담 받게 할 것. 덧붙일 것 없이 분명한 그 답들을 받아 들고 그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1

다만 아이와 함께 있는 짧은 시간, 부족한 재능을 오직 열의로 보상하려 하는 희극배우 같은 사람이 되었다. 농담을 던지고 발을 구르고 깔깔 웃는 동안, 불쑥불쑥 살얼음처럼 얇고 날카로운 행복을 느꼈다. 이따금 자신이 은밀히 미쳐가고 있는 것인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오히려 아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쳐온 것은 아닌지 곰곰이 자문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2

대답을 듣기 위해 눈을 감은 순간, 비틀어진 마른 가지들을 통과한 주황색 햇빛이 그 여자의 눈꺼풀을 찔렀다. 눈꺼풀이 홧홧 달아오르기 전에 그 여자는 눈을 부릅떴다.
나무에게서 등을 돌리자, 방금 그 여자가 빠져나온 산길이 아직 어두컴컴했다. 날카로운 주황색 빛은 그 여자의 두 눈꺼풀에, 얼얼한 망막 위에 해독할 수 없는 문자처럼 찍혀 번득였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4

엄마, 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눈을 감아.
그럼 온 세상이 환해져.
변신할 것 같아.
정말 변신할 것 같아.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6

어제까지 없었던 흰 스프레이 선이 도로 가운데 그려져 있다. 연한 색 샌들 한 짝, 거칠게 깨어진 유리 파편들이 중앙선까지 흩어져 희끄무레한 빛을 뿜는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7

검은 아스팔트가 새로 깔린 구간으로 그 여자의 차가 들어선다. 차선이 지워진 캄캄한 자리에 드문드문 희뜩한 표지들이 꽂혀 있다. 불안하게 큰 커브를 돌며 그 여자는 눈을 부릅뜬다. 앞차가 뱉어 내는 브레이크 등의 불빛이, 끈덕지게 술렁이는 도로의 어둠이 핏물처럼 그 여자의 눈에 비쳐 어른댄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7

인아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그 악몽 속으로 나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살고 있지 않으니, 악몽을 꾸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어제 저녁 인아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밝은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고, 내가 그녀의 안부를 되묻자 ‘악몽을 꾸는 것만 빼곤 다 좋아’라고 대답하고는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 현재까진 그게 내가 그녀의 악몽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49

그렇게 그녀가 누군가를 향해 웃을 때 내가 약간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그 누군가가 남자건 여자건,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건 상관없다. 고통과 거리를 두려고 나는 잠깐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0

인아는 스물네 살의 겨울부터 약 육 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는데, 이천 일이 넘는 그 기간 동안 거의 매일 요리를 했기 때문에 남은 인생에선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1

인아가 만든 음식들은 예외 없이 맛있었지만, 요리를 하던 시절의 인아는 어딘지 불행해 보였기 때문에 나로선 그것들을 다시 맛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2

잠깐 집 근처의 카페에 나오면서 굽이 높은 빨간 구두를 신다니, 인아는 갑자기 나를 사랑하게 되었거나 우울한 것 같다. 만난 지 십 년 만에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후자일 게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2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인아는 아직 불을 안 붙인 담배를 깨문 채 카디건을 벗고 원피스에 목을 넣는다. 헐렁한 원피스 속으로 인아의 마른 몸이 쏙 들어간다. 잇자국이 박힌 담배를 재떨이에 걸쳐놓고 인아가 묻는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3

나는 문득 몸을 기울여 인아에게 입맞춘다. 자칫 인아가 싫어할 수 있기 때문에, 입술을 제외하고는 몸이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인아는 눈을 감지 않고, 나도 눈을 감지 않는다. 인아의 혀에서 시럽 맛이 난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4

약속 장소에 나타난 인아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숱 많은 머리를 느슨하게 땋아 내리고, 긴 체크무늬 치마에 투박한 러닝화를 신고, 왼손 검지에는 커다란 큐빅이 박힌 반지를 낀 날씬한 여자애였다. 무슨 디자인 회사의 수습사원이라고 했는데, 회사의 성격상 그런 차림이 허용되는 모양이었다. 키가 조금 클 뿐 뛰어난 미인이랄 수는 없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암호를 걸어놓은 듯 수수께끼 같은 표정만은 인상적이었다. 해독이 필요해 보이는 그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는 대뜸 반말로 물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4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져볼 수 없을 차가움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5

차가운 유리잔처럼 섬세한 그 목소리의 표면에, 기묘하게 처연한 슬픔 같은 것이 자잘한 물방울들처럼 응결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5

다만 인아의 노래가 갑자기 끝났을 때,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억눌러왔던 생생한 갈망이 단박에 빗장을 끄르고 내 심장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을, 그 어둡고 남루한 골목 한가운데서 나를 마주 보며 서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6

(거기 담겨 있던, 회를 뜨고 남은 물고기를 별생각 없이 양푼에 옮겨 담았어. 그런데, 수돗물을 받아서 막 씻으려는데 그 물고기 뼈가 세차게 퍼덕였어. 살은 다 발라졌는데 아직 살아 있었던 거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어. 양푼을 놓치는 바람에 얼굴이며 윗옷에, 부엌 바닥에 물이 마구 튀었어. 다행히 물고기는 개수대 안으로 떨어졌어. 그걸 보고 모두들 웃어댔어. 이걸 어떡해요, 살아 있어요, 내가 말하니까 큰동서가 웃으면서 대답했어. 뭘 어떻게 해, 동서가 알아서 해봐. 난 우는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뼈만 남아서 꿈틀거리는 그 물고기를 씻어서,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었어.)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59

(나, 요즘 프랙탈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 깜짝 놀랐어, 우리 몸속 혈관들이 뻗어나가는 선, 하천들이 지류를 만들며 뻗어가는 선, 나무들이 하늘로 가지를 뻗어 올리는 선 들이 모두 닮아 있다니. 지하철 입구에서 빠져나오는 인파의 움직임도 비슷한 선들을 그리고 있다니. 그렇다면, 혹시 사람의 인생도 그럴까? 공간이 아니라 시간 안에서, 우리 삶이 어떤 수학적인 선…… 기하학적으로 추측 가능한 선들을 따라 나아가고 있는 걸까?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올 때마다 생각하게 돼. 함께 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걷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과 내가 비슷한 몸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비슷한 곡선으로 뻗어간 핏줄들 속에 거의 같은 온도의 피가 흐르고, 세찬 심장의 압력으로 그게 순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결코 내 삶의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고, 나 역시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함께 그 선들을 그리고 있다니.)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61

그 순간 인아는 폭발했다. 지나치게 뻑뻑하게 감은 오르골처럼 부서졌다. 자잘한 부속들이 사방으로 튀듯 더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취중독백 같은 문장들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인아가 최근에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논리와 인과가 무의미해지는 지점을 통과해,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넘어갔다가 우연히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이상한 열기와 집요함을 그 와중에 얻어냈다는 것을. 그것이 어떤 일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걸 겪고도 부서지지 않은 인아의 가냘픈 몸이 어쩐지 두렵게 느껴졌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62

인아는 그동안 입어온 검은색 계열의 옷들을 차례로 버렸다. 머리를 밝게 물들였고, 선명한 노랑색 셔츠나 워싱을 많이 한 청바지 같은 값나가지 않는 것들을 하나둘 사들였다. 하지만 정작 음반에 실린 곡들은 처음 만난 여름밤에 들었던 노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 있었다. 그 깨끗함이 되돌아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스크래치와 거친 효과음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압도적으로 몽환적인 사운드 속에서 인아의 목소리는 무엇인가와 지독하게 싸우는 사람처럼 가냘프고 절실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68

내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존재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웃음이다.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여자이고 싶은지 알게 해준 사람도 인아고, 남자의 몸으로 여자를 안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도 인아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72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암석 대신 얼음으로 덮인 달

지구의 달처럼 하얗지만
지구의 달처럼
흉터가 패지 않은 달

아무리 커다란 운석이 부딪친 자리도
얼음이 녹으며 차올라
거짓말처럼 다시 둥글어지는,
거대한 유리알같이 매끄러워지는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73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질 수 없을 차가움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74

(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장례식이 끝났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물론 난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이 세계를 믿지 않아.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런 환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76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지우고 샤워기의 뜨거운 물로 오래 몸을 씻은 뒤, 아침에 입고 왔던 옷들을 주섬주섬 걸쳐 입는다. 세면대 위의 거울 속에서 나를 건너다보는, 친숙하고도 낯선 사람의 얼굴을 마주 건너다본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한 번도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이 저기 있다.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얼굴, 서서히 완고한 주름들을 새기며 늙어갈 사내의 얼굴을 나는 본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78

나 역시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고통을 주는 데가 있는 인아의 웃음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 깊게 상처 입히리란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산책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알라딘 eBook <노랑무늬 영원> (한강 지음) 중에서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