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아버지도 당신의 사후에 대해선 충실한 배려를 하지 못하셨다. 건축업으로 모은 재산으로 많은 부동산을 사두신 사실을 당신 혼자만 간직한 채 돌아가신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고2 때부터 집안은 이미 기울기 시작했지만, 1969년 6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론 완전히 풍비박산되고 말았다. 모든 재산을 털어 아버지의 빚을 갚고 나니 알거지가 돼버렸다. 우리 칠 남매는 친척집이나 친구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가 사놓으셨던 부동산의 소재지만 알았어도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505 - P23

내 어린 시절을 언급할 때 파고다공원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의 파고다공원은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숲이 아주 울창하고 광활한 도심 속 자연 공간이었다. 광활하다는 건 어릴 적 내가 느꼈던 감각일 것이다. 어렸을 때 신나게 개헤엄을 치며 놀았던 방죽에 어른이 되어 가보면 생각보다 작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505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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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의도 탐욕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독서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 쉬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01

『상실의 시대』는 젊음과 많이 닮았다. 아닌 척하지만 나는 특별하다고 굳건히 믿고, 내 욕망에는 정당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젊은 시절에 느끼는 ‘근원적인 상실감과 고독, 세상의 부조리’의 실체는 실은 충족되지 않는 성욕과 본인 미래에 대한 불안일 때가 많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 역시 폭력적인 세상에 편입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려 하지만, 그러는 자신도 역시 본의든 본의 아니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야 만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자꾸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녀석이지 않을까.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07

뭘 잘 모를수록, 자신이 없을수록 설명이 장황하고 거창해지는 법인데 하루키는 반들반들 손때가 묻은 자기 집 가구에 대해 설명하듯 수월하게 핵심만 딱 짚어 묘사한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를 꿈속 같은 상징과 비유로 뒤덮인 세계를 이야기할 때도 그 속에서 십 년은 실제로 산 사람처럼 구체적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기막히도록 술술 쉽게 풀어낸다. 스웨터에서 실 풀어내는 기계 같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논리적 사고를 하는 좌뇌는 잠시 쉬게 내버려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의 꿈 이야기를 듣듯이 멍하니 읽곤 한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09

말하자면 그는 정물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수면 상태에서 끝도 없이 지속되는 꿈을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다만 그 꿈을 옮기는 필치는 치열하고 꼼꼼하다. 그는 리얼리즘 문체를 철저하게 구사하며 비非리얼리즘 이야기를 펼치는 게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문체를 사십 년간 가다듬고 또 가다듬는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13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시골에서 로큰롤』은 1959년생 지방도시 소년이던 오쿠다가 록 음악에 빠져 지낸 소년기를 신나게 회상하는 내용이다. 나는 1969년생이니 십 년 차이가 나는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발전 격차 때문인지 시대 격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맞아 맞아, 이땐 이랬지……’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으며 로큰롤 소년 시절을 회상했었다. 무라카미 류의 유쾌발랄한 소설 『69』에도 온통 60년대 록 음악의 불온한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19

문화의 힘이란 무시무시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몸은 여기 있지만 머리와 가슴은 미국과 영국에 가 있었던 것이다. 문화적 식민주의니 뭐니 할지도 모르지만, 더 매력적이고, 더 자유롭고, 더 가슴이 뛰는 것에 매료되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결국 돌에 구멍을 내듯 할리우드 영화와 팝 음악이 상징하는 자유에 대한 동경이 〈아, 대한민국〉과 ‘건전가요’의 시대를 끝내게 만든 근본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0

한참 팝과 록에 빠져가는데 집에 있는 건 낡은 더블데크 카세트 라디오 하나. 그래서 공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FM을 듣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번개같이 녹음했다. 〈황인용의 영팝스〉(특히 전영혁이 나오는 코너)를 매일 들었다. 듣고 싶은 곡이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다양한 초식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2

그때만 해도 온갖 촌스런 이유를 붙인 금지곡이 많아서 여기저기 찾아 헤매야 했었다. 평창동 사는 부잣집 친구 집에 가서 떨리는 가슴으로 녹음해 오던 금지곡들은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 스틱스의 《Mr. Roboto》,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앨범 등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뿐이다. 5공 시절 문화공보부의 금지곡 담당자들은 사실 명곡만 골라내는 대단한 안목의 소유자들이 아니었을까?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2

갈증은 독재정권이 말기에 접어들 때쯤에야 풀리기 시작했다. 1986년 파고다극장에서 열린 들국화 공연에서 느낀 전율은 어느 해외 밴드의 공연 영상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최고는 〈사랑일 뿐이야〉. 존 레넌처럼 가느다란 최성원의 보컬로 서정적으로 시작한 노래는 주찬권의 천둥소리 같은 드럼(정말 레드제플린의 존 보넘을 연상시켰다)과 전인권의 절규가 끝없이 반복되며 끝났다.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와 〈Come Sail Away〉를 원곡보다 더 멋지게 소화하는 그들을 보며 느낀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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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음이 떨리는 순간 음악은 이미 환한 빛을 발하며 그곳에 있다. 미약한 시작 속에 성취되어 있다. 그다음은 단순하다. 잇따르는 습득은 아무것도 아니다. 음악이 자신에게 오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느린 걸음으로.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이. 황금 말인 음악을 길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손가락으로 그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당신은 건반 위로 숙여진 아이의 등을 바라본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 울타리 훨씬 저편, 악보 훨씬 저편에 존재하는 - 맞서기 위한,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고된 작업이다. 배운다는 건 무엇일까?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건 무엇일까?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더없이 생생하고 반항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알라딘 eBook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중에서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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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월의 신선한 아침에 맞이하는 그 푸르름 말입니다. 벨벳의 부드러움과 눈물의 반짝임이 담겨 있는 푸르름이지요. 당신에게 이 푸르름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편지는 앙베르나 로테르담의 보석 마을에서 다이아몬드를 고이 감쌀 때 쓰는 종이를 떠올리게 할 거예요. 결혼한 신랑의 셔츠처럼 새하얀 그 종이에는 투명한 소금 결정, 동화 속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하얀 조약돌, 갓난아이의 눈물 같은 다이아몬드가 담겨 있지요. - P17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 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 P21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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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념적 스승이었던 마르크스는 서유럽 민주주의사회가 내세운 ‘개인의 자유’를 냉소적으로 비판했지만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모든 이가 온전하게 자유를 누리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661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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