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선의도 탐욕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독서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 쉬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01
『상실의 시대』는 젊음과 많이 닮았다. 아닌 척하지만 나는 특별하다고 굳건히 믿고, 내 욕망에는 정당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젊은 시절에 느끼는 ‘근원적인 상실감과 고독, 세상의 부조리’의 실체는 실은 충족되지 않는 성욕과 본인 미래에 대한 불안일 때가 많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 역시 폭력적인 세상에 편입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려 하지만, 그러는 자신도 역시 본의든 본의 아니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야 만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자꾸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녀석이지 않을까.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07
뭘 잘 모를수록, 자신이 없을수록 설명이 장황하고 거창해지는 법인데 하루키는 반들반들 손때가 묻은 자기 집 가구에 대해 설명하듯 수월하게 핵심만 딱 짚어 묘사한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를 꿈속 같은 상징과 비유로 뒤덮인 세계를 이야기할 때도 그 속에서 십 년은 실제로 산 사람처럼 구체적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기막히도록 술술 쉽게 풀어낸다. 스웨터에서 실 풀어내는 기계 같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논리적 사고를 하는 좌뇌는 잠시 쉬게 내버려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의 꿈 이야기를 듣듯이 멍하니 읽곤 한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09
말하자면 그는 정물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수면 상태에서 끝도 없이 지속되는 꿈을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다만 그 꿈을 옮기는 필치는 치열하고 꼼꼼하다. 그는 리얼리즘 문체를 철저하게 구사하며 비非리얼리즘 이야기를 펼치는 게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문체를 사십 년간 가다듬고 또 가다듬는다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13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시골에서 로큰롤』은 1959년생 지방도시 소년이던 오쿠다가 록 음악에 빠져 지낸 소년기를 신나게 회상하는 내용이다. 나는 1969년생이니 십 년 차이가 나는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발전 격차 때문인지 시대 격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맞아 맞아, 이땐 이랬지……’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으며 로큰롤 소년 시절을 회상했었다. 무라카미 류의 유쾌발랄한 소설 『69』에도 온통 60년대 록 음악의 불온한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19
문화의 힘이란 무시무시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몸은 여기 있지만 머리와 가슴은 미국과 영국에 가 있었던 것이다. 문화적 식민주의니 뭐니 할지도 모르지만, 더 매력적이고, 더 자유롭고, 더 가슴이 뛰는 것에 매료되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결국 돌에 구멍을 내듯 할리우드 영화와 팝 음악이 상징하는 자유에 대한 동경이 〈아, 대한민국〉과 ‘건전가요’의 시대를 끝내게 만든 근본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0
한참 팝과 록에 빠져가는데 집에 있는 건 낡은 더블데크 카세트 라디오 하나. 그래서 공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FM을 듣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번개같이 녹음했다. 〈황인용의 영팝스〉(특히 전영혁이 나오는 코너)를 매일 들었다. 듣고 싶은 곡이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다양한 초식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2
그때만 해도 온갖 촌스런 이유를 붙인 금지곡이 많아서 여기저기 찾아 헤매야 했었다. 평창동 사는 부잣집 친구 집에 가서 떨리는 가슴으로 녹음해 오던 금지곡들은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 스틱스의 《Mr. Roboto》,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앨범 등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뿐이다. 5공 시절 문화공보부의 금지곡 담당자들은 사실 명곡만 골라내는 대단한 안목의 소유자들이 아니었을까?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2
갈증은 독재정권이 말기에 접어들 때쯤에야 풀리기 시작했다. 1986년 파고다극장에서 열린 들국화 공연에서 느낀 전율은 어느 해외 밴드의 공연 영상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최고는 〈사랑일 뿐이야〉. 존 레넌처럼 가느다란 최성원의 보컬로 서정적으로 시작한 노래는 주찬권의 천둥소리 같은 드럼(정말 레드제플린의 존 보넘을 연상시켰다)과 전인권의 절규가 끝없이 반복되며 끝났다.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와 〈Come Sail Away〉를 원곡보다 더 멋지게 소화하는 그들을 보며 느낀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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