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 위에서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2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이제 그레고르 잠자라는 이름을 가진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76

이런 것이 정말 나인가? 이렇게 불합리한, 그리고 간단히 손상될 듯한 몸뚱이로(방어할 껍데기도, 공격할 무기도 주어져 있지 않다) 과연 이 세계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78

호기심보다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다. 몸속에 똬리를 튼 이 준열한 공동空洞을, 한시라도 빨리 실속 있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그실속 있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잠자는 이제 자신이 갈 곳을 알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1

해안에 물이 차오르듯 서서히 포만감이 밀려왔다. 몸속의 공동이 서서히 메워지면서 진공의 영역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4

그는 왠지 모르게 그걸 알았다. 그것은 추측도 아니고 지식도 아닌 완벽하게 순수한 인식이었다. 그런 인식이 어디서 어떤 경로를 밟아 찾아오는 것인지 잠자는 알지 못했다. 그것 또한 순환하는 기억의 일부인지 모른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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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살 수도
너 없이 살 수도 없네.
Nec tecum possum vivere
네크 테쿰 포쑴 비베레
nec sine te.
네크 시네 테. - P20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어느 한 사람의 문제로 몰아가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 널린
쉽고도 흔해빠진 선택이었습니다.
Nes tecum possum vivere
nec sine te. - P25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내키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Qui quae vult dicit,
퀴 퀘 불트 디치트,
quae non vult audiet.
퀘 논 불트 아우디에트. - P26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창비, 2015)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 P29

친구들이 없다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Sine amicis vir non
시네 아미치스 비르 논
potest esse beatus.
포테스트 에쎄 베아투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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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maria 2023-12-01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니다. 지나다 마음에 닿아 들립니다.
 

<캐니언의 프러포즈>는 9년 전 여름 빌 모리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빌은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스냅사진 촬영 업체를 운영했는데 그 무렵엔 그에게 촬영을 의뢰하려면 최소 여섯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6월 15일부터 사흘간 그랜드서클 촬영을 예약한 커플은 빌의 삼백 번째 고객이었다. <캐니언의 프러포즈>가 6월 16일 새벽 4시에 찍힌 사진이어서 그들은 한동안 그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사실은 빌을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합류하겠다고 했던 삼백 번째 고객은 약속 시간이 임박했을 때 돌연 예약을 취소했다. - P7

사진 속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반쯤 굽혀 앉은 남자가 있었다. 얼굴이 명확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까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진이었다. 여자의 어깨에서부터 뒤로 드리워진 베일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흰 눈이 베일 가득 쏟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 은빛 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일한 조명은 달빛이었다. 사진에 담긴 어둠은 실제보다 더 화사하게 느껴졌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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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Ad astra per aspera
아드 아스트라 페르 아스페라 - P15

나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고싶다.
Volo esse ut vivam,
볼로 에쎄 우트 비밤,
non vivere ut edam.
논 비베레 우트 에담.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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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읽고 싶은 책 없어?" 나가는 길에 셰에라자드가 물었다. 딱히 없는 것 같다고 하바라는 대답했다. 그냥 당신의 그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입 밖에 내면 그다음 이야기를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42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43

그 남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카운터 제일 안쪽 의자. 물론 먼저 앉은 손님이 없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그 자리는 거의 예외 없이 비어 있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46

비교적 이른 저녁 시간에 옆구리에 책을 끼고 와서는 카운터에 놓고 읽었다. 두툼한 단행본이다. 문고본을 읽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48

기노는 남자의 이름을 모른다. 남자는 그가 기노라고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가게 이름도 ‘기노’다. 남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기노도 굳이 묻지 않았다. 그는 가게에 와서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고, 말없이 책을 읽고, 현금으로 계산하고 가는 단골손님에 지나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49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가게에서 기노는 오랜만에 마음껏 음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바짝 마른 땅이 빗물을 빨아들이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고독과 침묵과 적막을 받아들였다. 아트 테이텀의 피아노 솔로 음반을 자주 들었다. 현재 그의 심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56

인간이 품는 감정 중 질투심과 자존심만큼 골치 아픈 것도 아마 없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70

눈을 감자 무수한 암갈색 화상 자국이 그녀의 매끈하고 하얀 등 위에서 살아 있는 곤충떼처럼 꿈틀거리며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불길한 이미지를 떨쳐내려고 고개를 몇 번 좌우로 작게 흔들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83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을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런 공백을 샛길처럼 이용하는 자도 있어요.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91

가미타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명심하십시오. 되도록 멀리 떠나고, 되도록 자주 이동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반드시 그림엽서를 보내주세요. 그러면 기노 씨가 무사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93

기노는 그날 밤 여행가방을 꾸렸다.이다음 긴 비가 내리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게 좋다. 그것은 너무도 느닷없는 통보였다. 설명도 없을뿐더러 전후 사정도 불명확하다. 하지만 기노는 가미타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매우 난폭한 이야기였지만 의심할 마음은 왠지 생기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295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뱀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두려 하고 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03

상상한다는 두뇌활동 자체를 지워버려야 한다. 어쨌든 나는그것을 내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다. 아무리 텅 비었을지라도 그것은 아직까지는 나의 마음이다. 어렴풋하게나마 거기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다. 몇 가지 개인적인 기억이 바닷가 말뚝에 엉킨 해초처럼 말없이 만조를 기다리고 있다. 몇 가지 감정은 베어내면 필시 붉은 피를 흘리리라. 아직은 그 마음을 영문 모를 곳으로 떠나보내 헤매게 할 수는 없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06

풍성한 초록 가지를 땅 가까이까지 늘어뜨린 버드나무의 모습을 기노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아담한 앞마당에 드리워주었다. 비 오는 날에는 무수한 은빛 물방울이 부드러운 가지에 맺혀 반짝였다. 바람 없는 날 그것은 깊고 조용한 사색에 잠기고, 바람 부는 날이면 미처 정하지 못한 마음을 정처 없이 뒤흔들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07

하지만 시간은 그 움직임을 좀체 공평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욕망의 무게가, 회한의 녹슨 닻이, 본래의 합당한 시간 흐름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에서 시간은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었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09

초여름 바람을 받아 버드나무 가지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기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작고 어두운 방 한 칸에서 누군가의 따스한 손이 그의 손을 향해 다가와 포개지려 했다. 기노는 눈을 꼭 감은 채 그 살갗의 온기를 생각하고 부드럽고 도도록한 살집을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었다.그래,나는 상처받았다,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서.
그동안에도 비는 끊임없이, 싸늘하게 세상을 적셨다.

-알라딘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중에서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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