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니언의 프러포즈>는 9년 전 여름 빌 모리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빌은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스냅사진 촬영 업체를 운영했는데 그 무렵엔 그에게 촬영을 의뢰하려면 최소 여섯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6월 15일부터 사흘간 그랜드서클 촬영을 예약한 커플은 빌의 삼백 번째 고객이었다. <캐니언의 프러포즈>가 6월 16일 새벽 4시에 찍힌 사진이어서 그들은 한동안 그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사실은 빌을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합류하겠다고 했던 삼백 번째 고객은 약속 시간이 임박했을 때 돌연 예약을 취소했다. - P7
사진 속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반쯤 굽혀 앉은 남자가 있었다. 얼굴이 명확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까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진이었다. 여자의 어깨에서부터 뒤로 드리워진 베일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흰 눈이 베일 가득 쏟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 은빛 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일한 조명은 달빛이었다. 사진에 담긴 어둠은 실제보다 더 화사하게 느껴졌다. -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