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거쳐 단어는 변화하고 새로운 단어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발음되는 단어에서 유추해 비슷한 형태로 변화하지요.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6be9649151a6494a - P135

강아지풀의 중국어와 영어 이름을 보면 이를 더 잘 알 수 있지요. 중국어로는 개 구(狗)자와 꼬리 미(尾)자를 써서 구미초(狗尾草)라고 하고 영어로는 여우 꼬리 모양이라는 의미에서 foxtail이라고 부르지요. 그 외형 때문에 명명했다면 강아지꼬리풀이라 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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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대국어 시기에는 가야지와 발음이 거의 유사한 개야지나 개아지가 강아지의 의미로 쓰였지요. 사람들은 흩날리는 하얀 버드나무 씨를 버들가야지라고 부르다가 당시 강아지를 뜻하는 말로 함께 쓰이던 개야지, 개아지, 개지를 연상하게 되었고, 버들강아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버들가야지가 버들강아지로 바뀐 것은 가라지가 강아지풀로 바뀌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6be9649151a6494a - P143

즉 ‘가라지 → 강아지풀’이 되는 데는 ‘버들가야지 → 버들강아지’로의 변화가 영향을 주었는데 강아지풀이란 말이 굳어지자 이번에는 반대로 강아지풀이 버들강아지가 지칭하는 대상을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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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중엽 이전까지만 해도 이름은 모두 우리말식이었습니다. 김알지, 박혁거세, 이차돈, 거칠부 등 왕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모두 우리말이었습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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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이름이 가진 의미를 알고 나면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 보입니다. 공간을 보는 시야가 달라지기도 하지요.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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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우리말 이름들도 문헌에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한자로 적혀야 했습니다. 즉 순우리말 이름을 한자의 음과 뜻을 활용하여 적게 된 것입니다. 가령 노들나루, 노들섬, 노들강변에서 보이는 우리말 지명인 ‘노들’을 한자로 鷺梁(노량)이라 적었는데요. 노량에서 앞글자 鷺(해오라기 로)는 한자의 음을 취하여 적은 것이고 뒷글자 梁(돌 량, 들보 량)은 뜻을 취하여 적은 것입니다. 여기에 나루를 뜻하는 津(나루 진)을 붙여 노량진이란 지명이 된 것입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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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명량(鳴梁)은 한자의 뜻을 활용하여 적은 예입니다. 진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해협에 물살이 매우 거세게 흐르는데 그 소리가 커서 마치 우는 듯이 들린다 하여 울돌목이라고 합니다. 울돌목을 한자의 뜻으로 적어 鳴(울 명)과 梁(돌 량)이라 한 것인데 현재에 와서 공식 명칭은 명량이 되어버렸습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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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오개와 아현이 그렇습니다. 서울 충정로에서 마포 방향으로 가려면 작은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이 고개를 애오개라고 하는데요, 지금의 아현동이지요. 애오개는 순우리말 지명입니다. 애고개라는 뜻의 애오개를 한자로 兒(아이 아)와 峴(고개 현)으로 적은 후 이를 음으로 읽어 아현이 되었지요. 현재는 첫 번째 한자인 兒(아이 아)자를 阿(언덕 아)자로 바꾸어 阿峴(아현)으로 적고 있습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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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예로 대치와 한티가 있습니다. 큰 고개라는 뜻의 한티를 한자의 뜻과 음을 살려 大(큰 대), 峙(고개 치)로 적었으므로 대치는 원래 한티로 읽어야 하며 표기만 한자로 하였을 뿐 같은 지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치는 3호선 지하철 역명 대치역으로 사용되고 있고, 한티는 수인분당선의 역명 한티역으로 쓰이고 있지요. 마치 다른 지명인 듯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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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6호선의 새절역이 그렇습니다. 새절역이 위치한 곳의 행정구역 명은 신사동(新寺洞)이므로 일반적인 예에 따라 신사역이란 명칭이 부여되어야겠지만, 이미 3호선에 신사(新沙)역이 있었으므로 이 이름을 피하여 신사(新寺)의 옛 이름인 새절을 취하여 역명을 부여했습니다. 즉 역사적으로는 새절이란 순우리말 지명을 한자를 빌려 新(새 신), 寺(절 사)로 적게 되었고 이 신사(新寺)라는 명칭이 새절을 대체하여 공식 명칭으로 쓰이다가 역명을 정할 때에는 다시 순우리말 지명 새절이 부활한 것입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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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의 잠실새내역도 순우리말 지명을 되살려서 역명을 바꾼 사례입니다. 원래 이름은 신천역이었는데요, 같은 2호선에 위치한 신촌역과 발음이 비슷하여 혼동되기도 한다는 요인도 있었으나, 잠실이란 명칭을 앞에 붙여야 한다는 지역 주민의 요구도 받아들여 新(새 신), 川(내 천)이란 이름을 옛 지명식으로 훈독하여 새내라는 이름을 되살린 것입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6be9649151a6494a - P159

1993년 지하철 4호선이 연장 개통했을 때, 벌말이라는 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촌스럽다는 것이었죠. 게다가 당시만 해도 대부분 지하철역이 한자어로 된 행정구역상 공식 동명과 일치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벌말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을 버리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평촌이란 이름으로 개정하였습니다. 벌말을 한자음으로 바꾸어 坪(벌 평)에 村(마을 촌)을 쓴 것이지요. 뜻을 살려 우리말로 읽으면 벌말이 되고 한자음으로 읽으면 평촌이 됩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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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되면 공간을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생각의 관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나를 깨닫게 되기도 하지요. 지금 살고 있는 고장의 옛 이름을 한번 찾아보세요. 몰랐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6be9649151a6494a - P160

앞에서 명아주가 돼지사료로 쓰인다는 의미에서 영어로 pigweed라고 한다고 하였지요? 명아주는 아마도 그 옛날부터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돼지사료로 널리 쓰였던 듯합니다. 우리 조상들도 돼지잡초라는 의미에서 ‘돝+ᄋᆡ+ᄀᆞ랏 → 도ᄐᆡᄀᆞ랏’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ᄐᆡᄀᆞ랏은 도ᄐᆡᄋᆞ랏으로 변화하고 다시 도ᄐᆞ랏으로 변화합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놀랍도록 생활의 공통성이 각자의 언어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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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초 하나가 이처럼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명아주, 도투라지, 능쟁이와 같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이름은 외형적 특징에 연유하여 붙여지기도 하고 용도에 따라 붙여지기도 하지요. 한낱 잡초라 여기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식물 하나가 이처럼 다채로운 생각거리를 건네고 있습니다. - <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6be9649151a6494a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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