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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역사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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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흥미진진한 역사서가 있을까?

인류의 역사 5000년을 내집안 드나들듯이

이문명에서 저문명으로...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대륙에서 저대륙으로...

이나라에서 저나라로...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저자의 다른 저서의 제목처럼 종횡무진이다.

5000년의 인류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역사적 사건들을 비교 분석하고 해석하는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재의 시사적인 사건들을 자세히 드려다보면 과거의 깊은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얻게된 또다른 시각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을 얻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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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주니어 클래식 1
윤소영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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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지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인간이 손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 인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자못 궁금해지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다윈의 [종의 기원]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처음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기억 속에서 잊혀졌고 15여년이 흘렀다. 나에게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동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첫 관심을 가진 동물은 공룡!!

같이 책을 읽어나가며 공룡이 환상동물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생존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란 건 무엇인가? 그 후로 2~3년 동안 아이들과 공룡에 빠져 살다가 그 이후로 공룡이전의 동물들에 대해 호기심이 확장되면서 우리 인류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였을까? 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생각났던 인물이 다윈이었다. 이때부터 다윈은 나에게 저 멀리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 꼭 만나봐야 할 할 사람으로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던 중에 윤소영 선생님이 풀어쓴 이 책을 만났다.




먼저, 책 내용과 관련하여 보자면 내가 아이들의 과학그림책이나 과학동화를 읽어주면서 알게 된 동물과 관련된 상식들이 이미 150여년전에 알려진 상식들이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예를 들자면, 뻐꾸기의 탁란, 개미와 진딧물의 공존관계 등이다.

게다가, 이와 관련된 연구가 이미 고대 그리스 아낙시만드로스라는 학자로부터 출발하여 라마르크의 연구, 린네의 연구 지질학의 발달 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시대를 아우르는 뛰어난 과학적 성과가 과학자 한 사람의 연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시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연구, 다른 여러 학문분야의 발전 등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성과를 이루어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쓰신 윤소영 선생님 또한 150여년전에 쓰여진 이야기를 그 이후에 알려진 과학적 연구 및 현상과 잘 연결시켜 자세하게 풀어주심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다윈은 발견된 의문점을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다윈과 윤소영 선생님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그들의 통찰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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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노벨레 (구) 문지 스펙트럼 9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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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을 한 번밖에 읽지 않아서 그런지 통 모르겠다.

이야기전개로만 보자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시시한 내용이다. 다른 남자를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는 아내의 고백과 남편인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꿈을 꿨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고 이를 질투한 나머지 아내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사창가나 아내 이외의 다른 여인들을 찾아 탐닉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서로를 용서하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식상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게다가, 1장에서 이미 이 부부가 행복할 결말은 맞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메시지를 주는 책이 고전으로서 지금까지 읽혀질리 만무하다는 생각했다. 일단 기획의 말에서 프로이드의 심리분석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책이라 하니 먼저 프로이드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고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렸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내가 이해한 바로는, 아직 실현하지 못하였거나 억눌린 욕망·본능의 표출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꿈은 소원성취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알베르티네의 꿈은 현실 속에서 이루지 못한 본능적인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쯤은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꾼다. 아이들 없이 떠나는 여행, 남편이 없는 새로운 삶... 어디로든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탐험코자 하는 욕구를 가진 인간에게 또 다른 세계라고 볼 수 있는 아내나 남편 이외의 다른 인간에 대해 그러한 본능적 욕구가 없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알베르티네의 꿈은 그녀가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본능적 욕구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짧은 소견이나마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프로이트가 슈니츨러를 찬양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 이론의 정수를 한편의 짧은 산문으로 분출하였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꿈을 통해 아직 실현되지 않은 혹은 억제된 본능적 욕구를 분출하면서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갈망·갈증·그리움 등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알베르티네가 다시 자신의 본연의 자리를 찾았던 것처럼.

 게다가, 이 책은 사회적·윤리적·이성적 관념의 테두리에 갇혀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연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은 왜 본성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수많은 규제와 규율을 만들어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인간은 왜 스스로를 규제안에 가두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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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김상봉 철학이야기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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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철학적 고찰!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세상에서 이토록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널려 있는 이유를 묻고 있다.

비극이란 슬픔의 자기반성이므로, 비극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서 슬픔과 고통의 그 의미와 존재이유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비극은 고통을 통한 만남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예술로, 오직 슬픔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참된 만남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직 한사람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고통이 되고 그 고통의 나눔 속에서 내가 너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의 가치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고통의 값어치를 무한히 초월하는 까닭에 우리는 그 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을 기꺼이 긍정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은 오직 고통이 나를 너와 만나게 하는 한에서 다가온다. 김상봉 선생님은 오직 만남을 통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 그 많은 슬픔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결론을 내린다.




만남!




나에게는 낯선 단어이다.

내가 너와 만나서 우리가 되는 관계!

지난시간동안 내 생활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거의 없었다. 내 삶은 가족생활이 전부였다.

만남은 어떤 단어들보다도 나에게 낯선 단어였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없었으니 누군가의 고통도 그 고통의 나눔도 몰랐다. 그저 나에게는 내개인적인 슬픔이 있을 뿐이었다.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그 고통을 같이 느끼고 행동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이나 뉴스에 슬픔이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면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러한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내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고통은 내 고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데 아파하면서까지 그 고통을 알면 뭐하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김상봉 선생님은 인간의 진정한 삶은 단순한 현존이 아니라 오직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의 빗장을 풀고 내 맘 속에 내가 아닌 너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네가 내 속에 들어와 머물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미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그 크기는 오로지 그가 품고 있는 슬픔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크기와 다름 아니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만남을 통한 고통과 슬픔의 깊이가 깊어지고 나면 그 때는 알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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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 1616~1799 -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
이시바시 다카오 지음, 홍성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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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제국의 유목민을 만나다!




청나라라고 하면 이민족인 만주족이 유구한 역사의 중화민족인 한족을 잠시 동안 다스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민음사 주최의 대중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듣던 중 청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지금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 3대째 청조사를 연구하고 있다. 기존의 청조사는 북경 입관 전의 역사는 무시하고 입관 후의 정조사만을 중국사에 포함하고 있다. 그에 대해 저자는 아이신 기오로의 누르하치가 처음 패권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청나라가 멸망한 신해혁명 이전까지를 청조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새로운 관점이 제기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현재 중국의 원형이 청조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티벳 달라이 라마와의 갈등, 대만의 이국론 등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현황 문제들이 현대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청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100만도 되지 않은 만주족이 1억의 한족을 280년 동안 지배할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 있었을까?”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풀어내고 있다.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진 현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다민족 국가인 청조를 280년 동안 이끌어온 동력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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