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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평점 :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물리학자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시인 같은 문체로, 우리가 얼마나 깊고 섬세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지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단순히 과학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철학, 예술, 역사, 시, 심지어 종교와 신화까지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결”이라는 하나의 본질을 향해 나아갑니다. 로벨리는 양자역학의 복잡한 개념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내며, 우리 삶 깊숙이 과학이 가진 시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심어줍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질 때, 기존 세계의 오류를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의 진가는 질문에 있습니다. 로벨리는 단 하나의 답보다 다양한 시선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길 권합니다. 장자의 고사를 인용하며 “물고기의 기쁨을 인간이 알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대목에서는, 과학과 동양철학이 결국 같은 본질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동하게 됩니다.
“청년 여러분, 세상은 군벌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군벌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이 미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많고도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로마에도, 베이징에도, 샌프란시스코, 리우데자네이루, 이슬라마바드에도 있습니다. 지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 문장은 마치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거대한 변화의 일부이며,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결 속에서 의미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기후 위기, 전쟁, 불평등 등 불확실성과 고립감이 짙게 드리워진 이 시대에, 로벨리의 글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그 방향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 아니고, 불멸의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로벨리의 글은 겸손함과 유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을 담은 과학서이면서 철학 에세이이고, 동시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성과 관계성에 대한 회복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