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에는 잃어야 얻는다 -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카를 융의 말
칼 구스타프 융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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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라는 문턱에 서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 즉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참 부지런히도 살았습니다. 사업가로서, 마케터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역할들 뒤에 가려진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지 묻게 되는 날이 오더군요.

융은 이 시기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확장하고 채워가는 시간이었다면, 인생의 오후는 오히려 덜어내고 정리하며 내면을 통합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특히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인 ‘그림자’조차 외면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습니다. 내가 애써 부정해왔던 불안이나 열등감, 혹은 현실 때문에 억눌러왔던 진심 어린 욕망들까지도 결국 나를 완성하는 소중한 조각들이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억지로 힘을 내라고 다독이지도, 무조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실과 쇠락, 그리고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 진짜 나다워지기 위해 짐을 가볍게 하는 과정이라는 역설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젊은 날의 자기계발서들이 '더 많이 가지라'고 채근했다면, 이 책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인생의 후반부가 단순히 저물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비로소 나 자신과 가장 가까워지는 귀한 시간임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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