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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자존감 수업 - 암기식 수학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
샬리니 샤르마 지음, 심선희 옮김 / 앵글북스 / 2025년 7월
평점 :
나의 사춘기 자녀들은 본인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필요성을 어른의 언어로 장황하게 설명해 본다. 아이들을 설득하는 나 역시 학창 시절엔 공부하는 게 싫었기에 설득력 있게 말하지는 못한다. 결국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추상적인 말로 마무리될 뿐이다.
책을 읽으며 학창 시절 수학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려 봤다. 두터운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공식에 맞춰 문제 풀이만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험에서는 공식을 대입하여 빠른 시간에 계산 결과를 답으로 적어내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이공계열에 진학 후 대학에서는 한 단계 더 어려운 기호와 암호로 둘러싸인 문제들을 접해야 했고, 기계적으로 공식을 암기하고 족보에 의존해 근근이 필수 수학 과목을 이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 성적은 중상위권의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제의 의미를 아무것도 모른 채 그런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의아할 뿐이다.
수학에 대한 나의 경험은 이해보다는 공식 위주로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수업 시간에 공식만 덩그러니 던져놓고 '알겠죠?'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없겠지만, 주로 공식을 증명하여 이해시켜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교육 방식은 이해도를 전혀 높여주지 못했고, 그저 공식만 외우고 시험에 그 공식에 맞는 문제가 출제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수학 자존감 수업> 속에는 재미있는 두 가지 비유가 있었다.
수학에 첫 번째는 농구를 하는 사람이 모두 NBA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또한 NBA 스타가 될 수 없다고 하여 농구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이 모두 수학 올림피아에 참가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에 치러지는 시험에서 정답과 오답으로 나의 등급이 매겨져 자존감이 낮아져서도 안 됐다. 우리들의 교육 방식은 늘 그래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수학하는 즐거움을 가로막고 있었다.
수학에 두 번째는 게임과 수학의 차이점을 비교한 비유였다. 처음 즐기는 게임이라면 조작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죽는 (실패하는) 과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같은 방법으로 시도해도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현재 레벨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체력, 힘, 기술의 수준을 파악하고 다양한 조합으로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렇기에 게임에 몰입하고 재미를 느낀다.
반면 수학은 어떨까? 정해진 교과 과정에 맞춰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도 하나둘 개념을 습득하며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레벨업과 같은 과정이다. 그러나 실전에서의 경험은 게임과 전혀 다르다. 게임에서는 죽음(실패)을 교훈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지만, 수학 시험에서의 실패는 오답이고 오답은 낙제생이라는 딱지를 안겨줄 뿐이다. 시험 볼 때 창의성을 발휘하기보다는 더 위축되어 생각의 폭만 좁아질 뿐이었다.
<수학 자존감 수업>을 읽으며 '왜 우리는 꼭 정해진 방법으로 정답을 빠르게 찾아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수학 공부를 해야 했는지에 대해 많은 후회가 들었다. 그로 인해 수학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다행인 것은 책을 통해 수학에 대한 낡은 신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말하는 낡은 신화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공식을 사용해 빠른 시간 안에 올바른 답을 찾는 것"이 수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생각이었던 것이다.
책 속에서 단순한 덧셈, 뺄셈을 계산해 보라고 했을 때 나는 단순히 빠르게, 그리고 당연하게 'OO 이지'라고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이 덧붙여졌을 때 '응?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당연함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었다.
수학에 수학 자존감 수업>이란 제목은 마치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보다는 부모,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수학에 대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어떤 방식으로 수학을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잘못된 방식으로 공부했고, 수학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을 깨우쳐 주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서 찾고 싶었던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수학을 삶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수학에 "수학을 언어처럼"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문장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만약 우리가 한국어만 할 줄 알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미국을 갔다고 생각해 보자. 영어를 쓸 줄 모르는 한국인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미국의 삶에서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00의 기회가 있다면 5%도 안 되는 경험과 기회를 얻을 뿐이다. 반면에 영어를 현지인처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보다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기회를 포착할 것이다.
수학도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그 나라 언어를 배워 그 나라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을 '수학을 언어처럼'이라는 비유로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자연의 규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학적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나 기술에 의존하는 디지털 세계로의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수학은 더욱 중요한 학문이자 언어가 되고 있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수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해준 책이었고, 나를 짓누르던 낡은 신화를 걷어내 수학을 재미로 즐기도록 생각의 전환을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