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
김용삼 지음 / 플로우북스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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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난 이승만 대통령책을 읽고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거나 선생님들한테 들은 얘기가 많이 오류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정말 악마화가 많이 되어 있었는데 이 책은 또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저자 김용삼은 195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를 거쳐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경남대 북한대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 기자, 시사 월간지⟨월간조선⟩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팬앤드마이크⟩대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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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월간조선⟩기자 시절 황장엽 망명 사건 특종 보도로 1997년 제1회 대한민국언론 대상을 받았고 2008년에 해양사상보급에 공헌한 공로로 장보고 대상을 받았다. 2013년에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우수상을 받았으며, 2015년에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공통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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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요 저서로는 ⟪제 5공화국 전두환 시대⟫⟪이승만과 기업과 시대⟫,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한간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혁명⟫,⟪김일성 신화의 진실⟫,⟪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세계사와 포개 있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를 발간했다. 공저로 ⟪반일 종족주의⟫,⟪반일 종족주의와 투쟁⟫,⟪반일 종족의 역사내란⟫등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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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근대화한 일본과 현대화한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 낸 한국적 리더였다. 그의 역사 무대 등장 이후 한국 사회에는 변혁의 태풍이 몰아닥쳤다. 먹물들의 천국에서 공상농사로 상징되는 기업가들의 천국으로 변모했다. 박정희는 예외적인 리더십으로 한국을 변모시켰다. 지구상에 그 이론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숱한 전문가와 학자, 언론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추진했고, 이를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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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문 학자와 글로벌 금융기관의 수장들까지 나서서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종합제철소(포스코) 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의 ‘예외적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절대가능하지 않았을 하나의 기적이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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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와 간호사, 농민과 노동자, 기술자와 기업인, 군인과 공무원,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수많은 국민의 희생과 도전이 축적된 결과다. 거대한 에너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모으고 국가적 목표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박정희의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 역시 외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박정희가 남긴 기적의 결과물을 자양분으로 삼아 지금도 먹고 산다.



육 여사는 시인 김남조 씨와의 인터뷰에서 남편 박정희 대통령이 결혼 이후 지금까지 아내의 생일을 한 번도 잊어버린 일이 없으며, 가끔 단소를 연주한 후 아내에게 평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1968년 11월 14일 한국외국어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육 여사는 박정희와 결혼한 동기에 대해 “재력이 없고 권력이 없는 점, 또 미남이 아닌 점, 무엇인가 의지가 굳고 무뚝뚝하고 결단성이 있는 데 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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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박근혜는 “어머님은 자녀들이 뭘 물으면 종이와 볼펜을 가져다 일일이 써 가면서 자세히 설명하는 성격”이고, “아버지의 매력은 소박하고 거짓이 없으며,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비상하다”라고 평했다. 큰딸이 본 박정희 대통령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면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생각난다. 크게 가능성이 없거나 안 된다는 일을 된다고 주장해 이룩하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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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항상 많은 일이 산적해 있고 마음 쓸 곳이 한둘이 아닌 데도 언제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신 것이 아버지의 특징이다. 길을 똑바로 내고, 지붕을 개량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정돈한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꼭 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듯이 하는 생활 철학이 확산한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책상에 다 책을 하나 놓으셔도 똑바로 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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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신당동 박정희 서장의 자택으로 장교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육여수여사는 이들에게 커피와 과일을 대접해 올리면서 틈이 나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헌 옷가지와 빨랫거리를 찾아냈다. 육영수여사는 근혜, 근연, 지만, 3남매를 친정어머니가 데리고 안방에서 주무시도록 했다. 육여사는 빨래를 한 가지씩 다리미로 다려 차곡차곡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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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경이 되자 박정희는 서재에서 장태화, 김종필, 이낙선 등과 함께 일어났다. 건넌방으로 건너온 박정희는 작업복에서 점퍼 차림으로 갈아입고 작업모를 썼다. 그리고 아내 육영수에게 “여보, 그 가방 속에 있는 권총 꺼내줘요.”라고 말했다. 권총을 건네받은 박정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녀올게” 박정희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육영수는 “저 보세요”라고 낮은 목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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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이제 집을 나가면 다시는 살아서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마루 끝에 앉아 군화 끈을 조이던 박정희는 잠시 주춤하더니 군화 끈을 다시 풀었다. 아내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장녀 근혜의 방으로 들어간 박정희는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하는 근혜 양의 산수 문제를 함께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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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박정희는 아내 육영수의 얼굴을 뒤로 한 채 신당동 집을 나섰다. 아내에게는 “내일 아침 5시 정각에 라디오를 들어보시오” 라는 말을 남겼다. 혁명 동지 장태화가 “무슨 숙젭니까?” 하고 물었다.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했다.



육영수는 남편이 지금 나가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녀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도록 배려한 것이다. 남편 일행을 배웅한 뒤 육영수는 건넌방으로 건너가 장롱에서 남편에게 받은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한 장한 장을 읽어가며 태웠다. 그렇게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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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의 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키자 육영수는 라디오 다이얼을 돌렸다. 혁명 공약이 막 낭독되고 있었다. 육영수 여사는 남편 박정희와 함께 걸을 때면 늘 남편보다 한걸음 뒤처진 곳에서 걸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남편에게 조금 부족한 듯 보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아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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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여사는 남편을 부를 때 다른 부부들처럼 내외 간에 “여보”혹은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저 좀 보세요, 어디 계셔요라는 말로 남편을 불렀다. 하루는 청와대에서 여기자와의 간담회에서 부부 싸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큰일을 하시는 분이니까 꾹 참고 있어요. 불만을 한데 모아 두었다가 물러나시면, 한번 호되게 공격하려고 벼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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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의 감동적이고 감동적인 애민정신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18년 동안 한국을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변혁의 지역은 제주도였다. 한국에서도 가장 낙후했던 지역을 살기 좋고, 소득 높은 지역으로 탈바꿈하는 혁명에 성공한 상징이 제주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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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과거에는 필리핀, 아프리카보다 못 살았는데 박정희대통령때문에 발전하게 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책을 읽어보니까 그건 맞는 것 같다. 난 과거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보고 알게 됐는데 이승만 대통령도 좋았고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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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정치가나 정치는 싫어도 억지로 책을 읽고 정치 사상이나 정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은 한다. 이 책을 읽어보니까 박정희 대통령도 좋아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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