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과 기술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올바른 도구가 능숙한 사람 손에 쥐어지면, 기업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우리의 일상은 편리해진다. 그러나 잘못된 도구는 형편없는 결과를 낳거나, 심지어 위험한 제품과 참사를 부를 수 있다. 여기에 부실한 시공 과정까지 겹친다면 재앙은 참사를 부를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1919년 ‘보스턴 당밀 홍수’에서 벌어졌다.
그해 1월, 보스턴 노스 앤드 제역에서 거대한 당밀 저장 탱크가 폭발하면서 약 757만 리터가 넘는 ‘끈적한’ 당밀이 도심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시속 56킬로미터에 달하는 당밀 파도가 몰려와 길목에 있던 모든 것을 덮쳤다. 결국 21명 목숨을 잃고,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 사고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에서 당밀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위대한 미국 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언제나 흥미롭다.
미국인들에게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혹은 첫 데이트에서 던져 볼 만한 화제다. 정답은 없지만, 그렇기에 끝없는 대화가 된다. 복수에 사로잡힌 광기 어린 항해 이야기 《모비딕》인가? 아니면 노예 제도의 참상을 드러내며 출간한 19세기에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일까? 물론 수많은 작품들이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꼽는 건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겉으로 보기에 소설 속의 제이 개츠비는 모든 것을 가졌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데이지 부캐년만은 손에 넣지 못했다. 그는 화려한 파티와 사치스러운 물건들로 자신을 포장하며 데이지를 끌어들이려 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고, 사랑까지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진정한 행복도, 과거도, 데이지의 마음도, 화려함은 결국 외로움과 공허함을 가린 가면에 불과했다.
영국 출판사 펭퀸 북스는 재즈 시대 방탕한 쾌락주의를 완벽히 포착했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은 곧 멈추고, 불빛은 꺼지고, 미국은 출구 없는 경제 대공황 속에서 비틀거리게 되었다. 피츠제렐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위대 한 개츠비》는 그의 수정 구슬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심리학과 철학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타인의 불행에서 오는 은밀한 만족감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