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탈리아에서 행복한 인생을 배웠다
박재현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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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을 어떻게 하시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나도 10년도 넘게 투병생활을 해봐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나도 금방 나을거라는 희망으로 병원도 열심히 다니고 백가지 가까운 약과 80군데가 넘는 병원을 다녀서 좋아지기는 많이 좋아졌는데 아직 100%는 못 고친 것 같다.

아직도 더 고쳐야 한다는게 우울한데 저자는 어떻게 그 과정을 통과했는지 알고 싶었다.

나랑 병명은 틀리지만말이다.

저자 박재현은 20대에 급성 림프종 백혈병 투병 생활을 극복하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깨닫게 되었다.

​몸이 회복된 후 뉴욕에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선물하고 싶어 시작한 ‘홈키친 원테이블’을 계기로 요리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친구들과의 인연으로 이탈리아의 다양한 매력을 경험한 뒤, 첫 사업으로 현지 투어가이드 스타트업<트립아이>를 운영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만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현재는 서울 쌀국수<미미옥>에서 셰프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아빠랑 엄마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때문에 5월 개점이 미뤄지고 있ㄷ가고 했다.

​‘캠핑맨’ 유튜버로서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해지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며 진정한 행복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찾는 게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 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줄  안다.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백혈병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는 그저 목숨을 걸고 극복한 뒤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살면서 몸과 마음이 갖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참된 의미를 각자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회사 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이 창업을 했다.

​바위에 계란을 치듯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다 보니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을 때가 많았다.

​물론 사업의 본질은 이익을 쟁취하는 것이지만 저자는 상대방이 돈이 되는 사업 이라고 말하는 순간 한 발짝 물러서서 다시 보게 된다.

 여기서 사업을 판단하는 저자의 기준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속편한 사업은 한순간의 이익을 맛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하기는 어렵다.

​저자 또래의 청년들 대다수가 추구하는 것을 보면 ‘부’인 것 같다.

​ 저자는‘돈을 번다는 것’이 노력의 결과인 것인지 ‘원인’ 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학창시절부터 10념 넘게 해온 태권도를 접고 요리에 빠져 셰프로 주방에 들어갔을 때, 노동의 강도는 운동과 비슷했지만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투어가이드 스타트업을 할 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너무 행복하게 이탈리아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 살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이타리아 사람들은 대체로 불친절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행복한 무드가 있나보다.

저자는 ​지금도 서울 쌀국수 ‘미미옥’ 주방에서 10시간씩 서서 육수를 뽑아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가 아픈 뒤 아버지는 어떤 이야기나 부탁을 하면서 아버지의 대답은 늘 “그래”였다.

​아버지는 어떤 경우에도 저자가 말한 것에 “안 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긍정적으로 지켜봐 주셨다.

​이 책을 쓰면서 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저자가 늘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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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항상  어떻게 하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까를 고민했었다.

​아버지는 20년 넘게 독서 모임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독서량도 매우 많고, 책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으시다.

​저자가 성공한 사업가보다 저자가 되는 것이 유일한 아들로써 인정받는 일이라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아팠을 때를 다시 회상하게 되는 순간은 저자에게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아팠던 분들이나 지금 투병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저자와 비슷한 행복의 방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무한한 사랑으로 언제나 큰 그늘을 만들어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삶의 무게를 견딘 자신에게도 ‘그 동안 사느라 애 많이 썼다’라고 오늘은 꼭 따뜻한 칭찬을 해 주고 싶다고 한다.

​한국의 입시 경쟁에서 운동만큼 큰 경쟁력이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운동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중학교 때 태권도를 시작하는 학생은 그만큼 드물었다.

​저자는 평범한 중학교 학생이었다.

​공부를 월등히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기회로 미국 보스턴에 있는 YMCA 여름학교를 가게 되었다.

​보스턴에 도착해서 한국 중년 부부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주인아저씨는 보스턴에서 꽤 큰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계시는 관장님이었다.

 당시 저자도 태권도 1단 유단자라 반가운 마음이 컸다.

​방과 후에 집에 오면 곧장 도장 일을 돕기 시작했다.

​잠시였지만 도장에서 미국 수련생들과 같이 운동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미국에서의 태권도 사범 일을 어깨 너머로 배우는 기회도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 올 며칠 전이었다.

​관장님은 조용히 저자를 부르시더니 뜻밖의 제안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태권도부가 있는 학교에서 운동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저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한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순간의 선택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운동부에서 새롭게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어느새 풍생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생활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운동부라고 하면 운동만 하고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자는 학생을 쉽게 연상한다.

​운동부 학생들은 그들만의 가는 길이 있기 때문에 담임도 제약을 두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저자 스스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운동 하나에만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것도 같이 준비해야  자신이 원하는 성공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막상 야간 학습을 시작해 보니 운동만 해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안 하던 공부까지 하려니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오전과 오후에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게 훈련을 하고, 야간에는 열심히 공부하기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남다른 정신력이 필요했다.

​밤 10시에 집에 도착해서 과외도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을 ​ 위해 쏟아 주시는 부모님에게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을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결국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08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기대를 품고 학교를 다녔다.

​사실 학교 분위기는 거의 태릉선수촌과 비슷했다.

오로지 올림픽 인재 양성에 집중되어 있는 체육전문학교이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을 누리면서 후회 없는 생활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항상 좋은 기억을 만드는 것은 그 다음 일을 해나가는 좋은 원동력이자 발판이 되는 것 같다. 2008년 5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효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모님께 여행 선물을 하기로 했다.

20살이 되니 효자 노릇을 하고 싶었나 보다.

​들뜬 마음으로 부모님도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이 뿌듯함도 잠시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렸구나라고 생각하며 혼자 동네 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는데 의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물론 아무 일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불안했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 보는 것인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불덩어리 같은 몸을 이끌고 종합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으며 병실에 누워 있었다.

​부모님은 소식을 듣고 여행을 마치기도 전에 곧바로 내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오셨다.

​곧 의사는 저자에게 “급성 림프종 백혈병입니다.”라고 말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백혈병은 림프구계 백혈구가 악성 세포로 변하여 골수에서 증식하고 말초 신경으로 퍼지는데 간, 비장, 림프계, 대뇌, 소뇌, 척수 등을 침범하는 일종의 혈액 암이라고 한다.

​골수 검사는 조혈기관인 골수를 채취하여 검사하는 진단 검사 방법 중 하나로 혈액학적 질환 및 조혈기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중요한 검사이다.

​일차 항암 시기가 끝날 무렵 아빠가 아주 조심스럽게 저자 옆에 와서 책 한권을 보여 주며 설명 했다.

​김성동 저자의 <감기에서 백혈병까지의 비밀>이라는 책이었다.

​일단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감기와 백혈병이 무슨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두꺼운 책까지 나왔을까?

​결론적으로 이 책이 저자에게 내린 진단은 ‘오진’이었다.

​저자에게 오진이라고 말해 준 유일무이한 생명의 은인 같은 책이었다.

​아버지는 이 책을 읽고 저자의 병은 분명 오진이라고 확신하시고  저자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인체는 감기로 1도 화상을 입고 해열진통제로 3도 화상을 입는다.’

​찬바람에 오래 노출되어 땀구멍이 닫히게 되면서 인체는 오한 발열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때가 바로 ‘감기’에 걸린 상황이다.

​인체는 오한으로 열이 꽉 차게 된 인체는 열에 취약한 부분부터 차례로 화상을 입게 되는데 그것이 폐렴, 신장염, 간염, 등이다.

​인체는 오한으로 열이 발산되지 않아서 생긴 화상 정도는 일정 기간 치유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상으로 회복시켜 놓을 만큼 휼륭한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다 읽고 그냥 이 책에서 하는 말 그대로 믿어 버리기로 했다.

​책 내용이 제발 사실이길 버리는 마음이 그만큼 컸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이 책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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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내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책만 읽으며 자신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것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떠한 물리치적 치료를 받아야 자신의 병이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몸에 적신호가 오면 두려움이 커지면서 많은 생각에 빠진다.

​가장 안 좋은 상황까지 생각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바닥까지 끌고 내려가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라고 없게 된 채 예민해지게 된다.

나도 아픈 게 너무 심해서 죽을지 모른다고 의사한테 들었는데 주변을 전부 정리했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전부 끓고 페이스북도 탈퇴하고 아는 사람들의 연락은 받지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차 항암 치료가 끝나고 2차를 맞아야 하나 아니면 병원을 탈출하고 자연 치유를 해야 되는가 하고 고민하는 시기에  허봉수원장님을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저자를 보자마자 원장님은 독한 감기와 다를게 없다면서 더 이상 병원에 누워 있어서는 안 되고, 나와서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서 생활 습관도 고치며 치료해야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셨다.

​처음 누군가와 자신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나을 수 있다는 위로와 확신을 심어 준 일이었다.

​허봉수 원장님은 저자가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지를 보자마자 오진이라고 확신하셨다.

​누구나 독한 감기가 걸렸을 때 골수 검사를 하면 대부분 백혈병 진단이 나온다고 하셨다.

​원장님은 초지일관 하나만 말씀 하셨다.

​밥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물로도 못 고친다고 하셨다.

​원장님은 오직 ‘생태섭 영양연구를’ 위해 1980년 21세 때부터 자신의 시간을 바쳐 식물에 대한 연구를 깊게 하셨다.

​습하고 응달진 밭에서 자란 무와 배추가 일조량과 물 등의 환경에 의해 변화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같은 조건 안에서 무는 잘 자라는데 배추는 그렇지못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새 백혈병 환자라는 꼬리를 달고 살아온 지 11년이 지났다.

11년, 그래 한 번 아프면 10년은 거뜬히 지나간다.

​저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약간은 불편한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노력해도 가끔 상처가 되기도 한다.

​백혈병 판정을 받은 스무 살부터 가장 힘들게 자연 치유와 식이요법에 집중했던 3년 기간은 저자에게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돌릴 수 있지만 기억이 자세하게 나지 않는다.

​크게 기억나는 것들은 병원 생활, 항암 치료, 경주 시골 생활, 강원도 작은 절 그리고 악착같이 지켰던  체질 밥상이 전부인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병상에 누워버리는 바람에 2학년까지는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학교 특성상 체육대학이다 보니 어떤 고등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다양한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저것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다행히 빠른 속도로 몸이 회복이 되어 대학교 막바지에는 정상적으로 대학 생활도 하고 과대표에 부회장까지 역임하며 대학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 살게 된 큰 이유는 당시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복잡한 것이 없이 매우 간단하다.

“일단 뉴욕에 가서 살다보면 길이 보일 거야”뉴욕은 전 세계 모든 인종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다문화 도시이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살다 보면 뭔가를 바라보고 시야도 매우 넓어질 것이라고 말씀했다.

저자​ 자신도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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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뉴욕에서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떠나는 뉴욕행이었다.

​막상 가려고 하니 설레기도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아마 저자보다 부모님이 더 신경 쓰였지만 오히려 저자를  위해 내색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투병 생활을 한지 4년차 밖에 되지 않았을 때라 온 가족의 신경은 저자 건강에 집중되어 있던 시기였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경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저자 또한 한편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금까지는 아무 일 없었지만 한국도 아닌 먼 나라 미국 땅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이 이었던 것이다.

​뉴욕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이 24세였다.

​아무래도 한국에 있으면 투병 생활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다 보니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었다. 잠시라도 어디 나가고 싶었다.

​한국에 있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이른 아침에 녹즙 한 잔, 점심 지나고 한 잔, 그리고 저녁 먹기 전 한 잔씩 하루에 세 잔은 꼭 챙겨야 했고, 혀가 부르는 음식이 아닌 머리가 생각하는 식단을 먹어야만 했다.

​뉴욕에 와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졌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많고 끼와 능력이 넘처 나는 인재들도 많았다.

​그저 새롭게 태어나서 적응해 나가는 느낌이라  자신이 아팠던 과거를 까마득하게 잊는데 아주 좋았다.

​뉴욕은 저자에게 아픈 과거를 무덤덤하게 해주었고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스케치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뉴욕은 요리, 음악, 미술, 연기, 공부, 비즈니스 등 아주 다양한 분야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모든 기회와 욕망이 있는 도시라서 누구나 뭐든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좋은 경력도 쌓을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다.

​브루클린 대학원생이 되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갔다.

​뉴욕에서 생활한지 일 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뉴욕에서 영어 공부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로 지냈다.

그러나 걱정보다 오히려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인생에서 진정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중요한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피렌체에 살면서 ‘자신도 저렇게 낭만과 감성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인들이 휴식이란 시간을 인생에서 아주 중시 여겼다.

​성공했거나 열심히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극이 되고 어느 부분은 공감대 형성이 되었다.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본인 스스로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스스로 올린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직업 이외에 시간이 더 빛나고 값진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값진 삶을 살기 위해 일을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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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는 말 그대로 쌀로 만든 국수인데 왜 꼭 베트남 스타일로만 먹어야 할까,,

​ 그래서  저자가 서울 쌀국수 육수 레시피를 개발할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바로 향신료였다.

​시작은 서울이 아닌 고향 울산에서 18평의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일단 울산에서 실력을 쌓고 서울로 진출하려는 전략이었다.

​비싼 임대료의 부담을 느껴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일이 즐겁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적자가 지속되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되기 때문인 걸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며 성루 쌀국수에 대한 손님들 반응도 지켜봐야 했다.

​서울에서 쭉 살다가 울산에서 산다는 것은 당장은 지루하고 적응이 필요할 수 있지만 나중에 저자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양보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게 이름은 미미옥의 뜻은 ‘아름다운 미’ ‘쌀 미’ ‘집 옥’의 한자의 뜻을 사용하여 ‘아름다운 쌀의 풍경이라는’ 뜻이다.

​매장에서는 갓 도정한 쌀도 판매한다.

​일반 식당과 차별화를 두고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데 집중했다.

​비싼 유학도 다녀왔으니 보란 듯이 남들이 인정하는 직장을 다녀야 과정이 부합하는 결과일 것일까,,

​그럼 남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해 주는 것이 되는 건 아닐까,,

​유학 다녀와서 쌀국수 장사를 하면 잘못된 것일까,,

​오히려 이럴 때는 길게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혹은 여러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매일 가던 카페가 있었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분위기는 르네상스 시대의 느낌이 물신 드는 아주 낭만 있는 카페로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카페테라스에 앉아 책 한권을 읽으며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는 게 좋았다.

​거기를 좋아한 이유는 분위기보다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들어가면 멋지게 차려입은 60세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절도 있게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 맛 또한 아주 훌륭하다.

난 커피 맛이 훌륭한 건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

서울시내 카페를 전부 돌아봐도 편의점이나 가게에서 파는 바리스타 룰스 카라멜 딥 프레소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어느날 한 번은 저자가 주문 한 커피가 평소 3분이면 나오는데 10분째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오더니 저자의 주문을 잊고 다른 손님 커피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며 미안하다며 금방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몇 분 뒤 커피와 함께 저자의 손등을 잡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 카페에서 20년을 일했는데 지금 내 나이가 60살이 넘어서 주문을 깜빡했네. 이해해 주시게."

 이 말을 듣자마자 60의 나이보다 20년 동안 카페에서 일했다는 말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한 카페에서 평생 직장처럼 지금까지 일해 온 것이다.

​저자가 본 그들은 정말 그들 소신껏 최대한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딱히 일에 욕심을 내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고만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각자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부심을 갖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저자는 이픈데도 미국도 가고 이탈리아도 가면서 그들의 삶을 유심히 본 것 같다.

저자가 본 사람들은 비교가 아니라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자신의 삶에만 집중한 사람들인 것 같다.

아픈데 비교까지 하고 바삐가는 사람들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못 산다.

저자는 인생의 진짜를 볼 줄 알고 잘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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