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아가씨가 이 집에 와 있을 때 클레브 공작이 들어왔는데, 아가씨의 뛰어난 미모에서 받은 감명이 너무도 커서 그만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귀즈 경도 샤르트르 양을 본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귀공자였다.
"그런데 그 분의 영애가 절세의 미인이어서 그때 이미 선왕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었거든.
포병 총사령관인 테 백작은 워낙 공작 부인을 싫어하던 터라 부인의 문란한 행실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폐하께서 질투하고 계시던 브리삭 백작과 공작 부인이 정을 통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보고드렸는데 공작부인의 술수에 말려 오히려 폐하의 미움을 사서 포병 총사령관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단다."
"게다가 그 슬픔은 영원히 가시지 않는다는 생각 밑바닥에는 어떤 감미로운 감정도 흐르고 있었지."
"절대로 신용해도 될 만한 인간이란 없다.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후회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쉽게 요구를 들어줄 만한 여자들은 신사의 반려자로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제 마음이 이끌리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손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에게 매어달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의 옆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는 슬픔으로 가슴이 쓰렸지만 갑자기 아내를 일으켜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문에 당신에 대한 애정이 감소되지도 않을 거요."
"남자들이란 호기심때문에 경솔한 짓을 잘하는 법"이라던 느무르 공의 말은 클레브 공의 현재 심경을 너무도 잘 설명해주는 것이어서 부인은 느무르 공의 그 말을 그저 지나가는 말로서 흘려버릴 수는 없었다.
남들한테 떠벌리지 않고서는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이다.그는 생각이 나는대로 마구 지껄였다."제가 사랑하는 분은 당신이에요"라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혼자서 그렇다고 속단하고 그 속단대로 남에게 말한 것이다.확증이라도 잡았더라면 남들 앞에서 더 자랑을 했을 거다.자랑할 값어치가 있는 사랑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을 수 있는 남자가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한 건 내 잘못이었다.
나는 경솔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한 여성의 사랑을 받는 행복과 영광을 잃어버렸다.
이들 왕족과 그 옷자락을 받드는 귀부인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입은 의상과 색깔이 같은 옷차림을 한 수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느무르 공은 부인 앞에 엎드려 그 심정을 간절하게 호소했다.눈물과 말로써 일찍이 어떤 연인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격렬하고도 자상한 애모의 정을 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