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학력 초등학교 졸업.16세부터 공장 생활 시작.30세까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한 남자"
이 자리에 우뚝 서기까지 그가 겪었을 고통과 고생이 눈에 밟혀서다.
(김기덕 감독과 나는 나이도 같지만 26세에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서른 세살이나 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줄 형편도 못 되었지만 그의 미래도 걱정되었을 테니 말이다.
"가족들은 생계비를 벌지 못할까봐 내가 시나리오 쓰는 것을 반대했고 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거리에서 타자기를 안고 시나리오를 썼습니다.사람들이 대학 나온 사람들도 못하는 것을 한다고 포기하라고 한 적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기덕씨가 작가가 되면 자기 손에 불을 붙이겠다고 했습니다."
생계형 노동까지 완전히 포기한터라 그는 시나리오 창작을 "노동"처럼 여기고 "노동자라면 매일 작업"을 했고 그런 식으로 매달 장편 영화 하나 분량의 시나리오를 완성해냈다.
그해 쓴 열개의 각본중에서 <화가와 사형수>가 한국 영상작가 교육원 창작 대상을 수용했고 그로부터 12개월후 그는 정말 자기 영화의 감독으로 첫 데뷔를 한다.
"영화공부를 따로 하거나 연출부를 거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했습니다.그래서 초반에 찍은 필름은 다 버렸습니다.그리고 약 4개월간 찍어 완성한 영화가 `악어`이고 방법은 어설프지만 영화는 의미가 있다는 평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은 김 감독을 `사이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화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예산 활용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김기덕은 11일에서 14일이라는 기록적인 시간 안에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좀 더 걸렸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고작 20일이다.
그는 재촬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번째 촬영에서 사소한 잘못이 있을 경우 다음 장면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한다.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도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또 그는 시간 순으로 촬영을 하며 플롯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해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로 인해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하나 놀라운 일은 그가 거의 경험이 없는 카메라맨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카메라맨은 감독의 지시를 이행하고 그럼 화면은 온전히 김기덕 자신의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편집작업역시 그는 완전히 혼자 해결하는 타입이다.
그가 "본질적인 신념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을 때 그건 바로 정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실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인식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인듯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거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있었습니다.그러나 곧 깨달았습니다.인정받지 못했다고 제가 변할 수는 없습니다.(그럴 때마다)더 단단하게 제 생각을 고집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눈에만 보이는 세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있고 초월적인 경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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