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려놓다.
혐오하면서도 품고 싶다는 욕망을 다스릴 길이 없는 `여성`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산 자살`이란 그동안의 삶을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 택하는 죽음을 이르는 표현이다.
[늙는 것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죽음이라는 사건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나는 니체를 인용했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죽음, 이것은 자유죽음이다."
존재 앞에서 쏟아내는 욕지기는 인생을 비웃으며 무엇으로든 살아야만 한다는 이야기에 구역질을 해댄다.
내 `세계 내 존재`의 일부이기는 그치기 전에 목에게 잘 대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은 여전히 세계 속에 있는 내 목에게.
자유죽음은 그저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였을 뿐이다."나는 언제라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종종 여자 스스로 냉소적으로 이렇게 빈정댔다고 한다.
메시지는 호소를 넘어서는 호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메시지는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든 또한 공허한 개념의 장난으로 말해진 것이든 간에 일체의 선택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인간이 처한 비탄은 그게 어떤 것이든 비웃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실존으로 투기한 것은 자유죽음이다.
슈니츨러를 두고 무식하고 거친 평자들은 "조숙해서 감정의 유희나 일삼으며" 문학계에서 교태나 부리는 것 푼짜리 한량으로 폄하하곤 하지만 실제로 슈니츨러는 삶과 죽음의 무의미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위대한 작가이자 죽음의 친구이다.
[구스틀 소위]에서 작품 전반에 유령처럼 떠도는 자유죽음의 분위기를 보라.
소름이 돋게 만드는 단편 [죽음]이나 역시 단편인 [어둑한 새벽녘의 놀이] 그리고 희곡 [동화] 등에서도 자유죽음이라는 주제는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다.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타이르던 거짓말에 비해 유일하게 진솔한 게 자유죽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