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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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R. 번치 / 모데란

기계화된 인간, 끝없이 재조립되는 전쟁의 나날

모데란은 핵전쟁 이후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지구, 세계는 핵전쟁 이후, 기계적 진화가 극단적으로 뒤섞인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자기 육체을 신금속으로 치환한 전쟁광 남자들이 끝없이 서로를 파괴하며, 인간은 점점 기계화되었다. 감정은 마모되었고, 신체는 절단되고 교체되기를 반복했다. 쉰일곱 편의 단편들은 이러한 서늘하고 잔혹한 풍경을 차례로 보여주며, 영원히 고통을 반복하는 기계 인간들의 삶 속 점점 희미해지는 인간성을 응시한다.

번치의 단편은 한때 독자들로부터 쓰레기라 불리며 외면받았고, 편집자들조차 잡지에 싣지 말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쓰레기 같은 미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풍경과 닮아 있다. 처음 발표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간 탓에 이해받지 못했지만, 결국 번치가 쓴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모데란의 세계에는 전쟁의 승패도, 주인공의 영웅적 성장도 없다. 대신 황량하게 메마른 내면과 감정의 소실, 그리고 기계화된 인간 존재가 맞닥뜨리는 허무함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플라스틱, 전쟁, 그리고 기계화된 인간은 실제로 21세기의 일상적 풍경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미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 있고, 데이터와 기계적 프로세스에 인간의 본질이 압도당하며, 전쟁은 물리적 형태를 넘어 사이버전과 정보전으로 진화했다.

위험한 예언가 번치는 이 미래를 마치 은유처럼 그려냈지만, 그의 이야기는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 이미 도착한 현재의 연대기에 가깝다. 처음엔 이 세계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공상적 과장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이 악몽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도,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서도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긴장을 푸는 순간, 그의 단편들이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은 일반화될 것이며, 누구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가정들을 용인하게 된다.'

출판사 '현대문학' 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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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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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 바디올로지

몸으로 써내려간 끝나지않는 이야기

바디올로지는 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류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이야기를 다룬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이 몸을 어떻게 재단하고, 길들이고, 심지어 착취했는지 들여다보며,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몸에 대한 생각을 하나하나 의심하게 만든다.

몸은 태어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시선과 담론 속에서 끊임없이 규정되고 다듬어지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가슴, 얼굴, 머리카락, 살집, 피부, 심지어는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특히 신체적 외모가 자본이 되고, 권력 관계에 종속되며, 사회적 계층을 가로지르는 역할을 수행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쁜 몸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용과 노력을 지불하며 살아왔는지, 몸을 매개로 벌어지는 인간 사회의 이면을 들춰낸다. 근대 이후 한국인의 몸을 둘러싼 변화상을 살펴보면 단발령에서 시작해 여성 노동자의 머리카락 착취, 탈코르셋 운동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머리카락 한 올조차 시대 권력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음을 알수있다.

몸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전쟁터로 존재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평과 얼평은 여전히 우리를 감시하며, 스스로 몸을 평가하게 만드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몸을 통한 착취와 소비, 권력의 논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죽음 이후 육체적 부재에 이르러서도, 살아 있는 몸은 물론 죽음을 맞은 몸조차 세상을 향한 증언을 멈추지 않는다. 바디올로지는 이러한 몸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교묘한 협상, 그리고 폭력적인 착취의 기록을 통해, 외면해온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몸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견뎌온 역사였고, 어쩌면 앞으로 나를 바꿔나갈 지도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출판사 '디플롯'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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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만난 나무 이야기 - 길 위에서 만난 나무, 그 나무가 전하는 이야기
백종서.신동숙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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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서, 신동숙 / 여행길에 만난 나무 이야기

천연기념물에서 보호수까지, 그 안에 스며든 시간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전국 100곳 이상의 보호수와 천연기념물 나무를 따라가는 특별한 여정은 서울 봉은사 모과나무에서 시작되어 수도권, 충청, 전라, 경상, 강원, 제주까지 이어진다. 신사임당이 심은 배롱나무, 창덕궁의 회화나무,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용문사 은행나무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나무들을 소개한다.

나무는 자연의 생명이면서도 인간의 기억과 시간을 품은 존재로 남아 있다. 낙성대공원의 굴참나무는 이순신 장군의 시절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고, 강화 고려궁지의 회화나무는 고려의 마지막 흔적을 껴안고 있다. 이 외에도 남해 다랭이마을의 왕후박나무나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일상 속 생명의 고귀함을 잊고 사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나무 하나하나는 시간과 기억을 품은 살아 있는 기록이며, 각각의 장소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자신만의 역사와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모퉁이의 나무 한 그루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고, 지나간 계절을 고이 품고 있는 시간의 그루였다. 수많은 풍파를 견디며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은 그렇게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경북산불로 주왕산국립공원 3,260헥타르가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다. 역대 국립공원 산불 피해 중 가장 큰 규모로 2023년 지리산 산불의 25배에 달한다고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안동 측백나무숲과 주산지의 왕버들, 청송의 나무들, 그리고 경북 지역에 숨 쉬던 수많은 생명과 이야기들. 그중 일부는 이제 우리가 다시는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산불은 단지 나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누군가의 기억, 마음의 풍경,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자연이 함께 사라진 것이기에 산불 소식은 더욱 아타깝다. 신속한 피해 복구와 회복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p349 우리의 날숨은 나무의 들숨이 되고, 나무의 날숨은 우리에겐 들숨이 됩니다.

출판사 '책과나무'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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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 속 세계사 -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물들
태지원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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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원 / 정물화 속 세계사

한 점의 정물화, 하나의 사물에서 시작된 세계사의 이야기

미술관에서 자주 마주치는 정물화 속 사물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경제 흐름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역사서, 정물화 속 세계사는 15점의 정물화를 중심으로, 그 속에 그려진 사물이 상징하는 역사적 맥락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꽃과 과일, 시계, 해골처럼 평범해 보이는 사물들이 단지 미적인 대상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경제, 사회, 철학, 정치와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얼핏 단순하고 고요하게만 보이는 정물화속 사물들은 사실 그 시대의 사회, 경제적 배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러한 사물들이 정물화 안에서 어떻게 역사와 연결되며, 당대의 가치관과 생생한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대항해 시대를 연 향신료와 오렌지, 경제 버블의 상징인 튤립, 노예무역과 제국주의의 그늘을 드리운 설탕과 초콜릿까지 정물화에 담긴 사물 하나하나가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비추는 창이 된다.

저자 태지원은 이 모든 이야기를 미술 감상과 함께 전개하며, 마치 그림 전시회를 거닐며 역사 강의를 듣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세계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감각적인 입문서가 되고, 미술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시야를 넓혀주는 깊이 있는 교양서가 된다. 교과서 바깥의 살아 있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깊은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정물화는 멈춰 있는 그림처럼 보이지만, '정물화 속 세계사'를 읽고 나면 그 안에 흐르는 시간과 변화가 생생히 보인다. 아름다움과 비극이 공존하는 화려한 색채와 고요한 분위기 뒤에는 인간의 욕망, 자본의 흐름, 죽음에 대한 인식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눈에 익은 이미지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차근차근 밝혀질 때,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물들은 비로소 역사 속 숨은 주인공이 된다.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였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출판사 '아트북스'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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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철학 상담소 - 연중무휴 고민 상담 중 생각하는 10대
이진민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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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 / 열두 달 철학 상담소

철학이라는 불빛으로 감정을 비추다

없는고민 빼고 다들어주는 연중무휴 '열두 달 철학 상담소'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부, 관계, 자존감, 진로, 성별 등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마주치는 보편적인 고민들, 그 안에 담긴 복잡한 마음을 철학자들의 지혜로 하나씩 풀어내며, 철학자들의 깊은 생각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청소년들의 제철 고민 하나를 골라 그에 어울리는 동서양 철학자들의 관점을 소개한다. 공자, 소크라테스, 니체, 장자, 보부아르, 아리스토텔레스, 노자 등 철학자들의 생각을 통해 위로와 통찰을 전하며, 찰학자의 생각를 명확하고 쉽게 정리해 전한다.

작심삼일의 좌절, 학업의 무게, 사랑의 혼란, 끝없는 비교,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단지 청소년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같은 익숙하면서도 깊은 고민들을 10대의 눈높이에서 다루고, 그 질문에 철학자들의 오래된 생각을 덧붙인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기에 철학자들의 관점 역시 다양하다. 차이를 배움의 기회로 삼고, 다름을 수용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돕는다.

각 달마다 만나는 12가지 감정은 마치 사계절을 닮았다. 불안과 외로움, 분노와 무기력 같은 감정들은 겨울처럼 날카롭기도 하지만,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 속에서는 그 감정들이 전부 인간적이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철학이라는 단단한 토대를 통해, 종종 무심히 지나치거나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마주하게 했다.

문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질문이 많기 때문에 철학을 찾는 사람들. 열두 달 철학 상담소는 고민 많은 청소년은 물론, 그 시기를 지나온 모든 어른들에게도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쉽게 발 디딜 수 있게 도왔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이지만, 오히려 지친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위로였다. 고민을 멈출 수 없다면, 철학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출판사 '북트리거'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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