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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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주목받아온 작가 박민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며 매번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놀라게 해왔다. 그런 그의 작품이 1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당시 박민규의 색다른 연애소설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이야기로,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작품이다.

눈 내리던 1986년 겨울,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세 청춘이 있었다. 누구보다 부드러웠지만 누구보다 약했던 요한, 잘생겼지만 사랑을 모르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흔들리던 나, 그리고 세상이 외면했으나 누구보다 따뜻했던 그녀.

그해 그들은 서로에게 처음으로 자신도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세상의 잣대는 잔인하게도 그녀를 떠나게 만들었고, 청춘은 산산이 흩어졌다. 세월이 흘러 성공한 작가가 된 나는 여전히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들으며,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에게서 배웠던 사랑의 온도, 그해 겨울의 눈빛, 그리고 서로의 존재가 빛이 되어주던 순간들. 그녀가 독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결국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비행기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스무 살의 자신과 마주한다. 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진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 맞는가?

소설은 음악과 그림과 도시의 풍경이 어우러져 한 편의 긴 기억처럼 느껴진다. 어떤 문장은 빛처럼 가볍고, 어떤 문장은 돌처럼 가라앉는다. 이 대비가 작품 전체를 몽환적인 기운으로 채웠다. 세월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쉽게 꺼내지지 않는 사랑, 그 상처와 아름다움 모두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

사랑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정확한 형태를 드러낸다.

#위즈덤하우스 @wisdomhouse_official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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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 마라 -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신경 끄기의 기술
와다 히데키 지음, 전선영 옮김 / 달콤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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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 / 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 마라

“단 3분짜리 감정에 하루를 빼앗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의 실수, 아침의 짜증, 한순간의 불안이 하루 전체를 잠식하는 경험.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는 이런 감정의 파도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의 연구를 책에 담았다.

일본 아마존 10년 연속 베스트셀러 누적 1,000만 부를 기록한 작가이자 정신의학 권위자인 그는,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 마라에서 알려주는 감정의 본질. 화, 짜증, 불안, 걱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억제할수록 더 강하게 되돌아오고, 반대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가도 이내 잦아든다.

감정이 크게 흔들릴 때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타인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분리하라는 조언들. 나쁜 감정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춰 들이쉬는 작은 호흡,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도 넓어지는 관용의 태도.

이 모든 것은 복잡한 준비도, 특별한 능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곧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침들이다.

불쾌한 감정에서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이제껏 보지 못했던 행복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매일 행복할 순 없어도 행복한 일은 분명 매일 있다.

#스몰빅미디어 #달콤북스 @smallbigmedia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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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임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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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 / 바임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더 넓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욘 포세의 희곡은 이미 셰익스피어 이후 최다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희곡과 소설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문체로 사랑받아 왔고, 이번에는 2025년부터 매년 한 권씩 공개될 ‘바임 3부작’의 첫 권 바임을 선보였다.

외딴 바닷가 마을 바임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고독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운명, 고요한 파도처럼 쉼표만 흐르고 마침표가 사라진 욘 포세의 문장들.

독백처럼 이어지는 이야기의 첫 장에서 어부 야트게이르는 헐거워진 단추 하나를 달기 위해 여러 옷가게를 들른다. 하지만 그가 들어간 가게는 새옷을 몇 벌은 살 수 있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바늘과 검은 실을 팔았다. 그는 체면을 위해 계산을 치르며 씁쓸함을 삼키지만, 그보다 더 아린 것은 문득 떠오른 첫사랑 엘리네의 기억이었다.

젊은 시절 배의 이름에까지 새겨 넣을 만큼 소중했던 여자, 오래전에 바임을 떠나버린 첫사랑 엘리네. 혼자가 된 야트게이르 앞에 꿈처럼 다시 나타나 고향 바임으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2장에서는 야트게이르의 유일한 친구 엘리아스, 3장은 엘리네의 남편이자 또 다른 어부 프랑크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머무르며, 누군가는 돌아온다.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인물들을 이끌고, 그 흐름에 휘쓸리며 파문처럼 번져간다.

쉼표로 이어지는 호흡, 소리 없이 스며드는 감정, 그리고 들렸다 사라지는 속삭임들. 바임은 욘 포세 특유의 문체가 가장 뚜렷하게 빛나는 작품이었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이야기.

#문학동네 @munhakdongne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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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단단한 하루 - 누드 사철 제본
지수 지음 / 샘터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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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 오늘도 단단한 하루

루틴을 만들겠다고 다짐할수록 오히려 더 지쳤던 사람이라면, 오늘도 단단한 하루가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오늘의 계획보다 컨디션을 먼저 묻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대신, 오늘을 망치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그림에세이

책 곳곳에는 작가가 프리랜서로 살아온 8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불안정한 미래와 성과에 대한 압박, 끊임없는 비교와 자책 속에서도 앞을 재기보다 오늘을 지켜내는 하루를 선택해 왔다. 매주 이어온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 아무리 피곤해도 챙겨 먹는 따뜻한 식사, 하루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꾸준히 이어온 발레 수업 같은 소소한 일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삶을 단단히 떠받치는 힘이 되어준다. 요즘 많은 책들이 나를 더 나은 내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만, 오늘도 단단한 하루는 내일보다 오늘을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는 것에 더 마음을 썻다.

거대한 목표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작은 체크 하나를 채워가며 오늘을 살아내는 힘을 차근히 길러보자. 답답함 없이 활짝 펼쳐지는 사철 제본안에 사랑스러운 토끼 캐릭터와 따뜻한 그림, 밑줄 잔뜩 긋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 담겨있다.

48p 시간은 나를 끊임없이 늙어가게 만들고 할 수 있던 것도 할 없게 만들겠지만 시간이 쌓이면 때로는 안 되던 게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는 게 슬픈 것만은 아니야.

99p 잃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소중한 걸 가졌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지키고 싶어진다. 지나간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움켜쥐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비타민 하나, 물 한 잔으로 이 몸에 작은 애정을 건넨다.

155p 허기와 배고픔은 다르다. 허기는 감정의 틈에서 생기고, 배고픔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나는 종종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먹는다. 심심해서, 불안해서 위로가 필요해서.

156p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때 멈추는 게, 내 욕망이 아니라 내 상태에 맞추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큼이나 불편하다.

197p 내게 중요한 건 '친밀함의 양'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관계의 리듬'이었다. 친밀함에도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매일 소통하는 걸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느슨한 온기로도 충분하다.

242p 우리, '여유로운 나'를 좋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뭘 하는 나'를 더 좋아하잖아. 그렇지. 바쁘고 지쳐도 스스로 뿌듯해지는 마음도, 쉬면 불안해지는 기분도 잘 알지.

#샘터 #샘터사 @isamtoh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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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좋겠네 - 그리고 소설가 문은강의 월요일 다소 시리즈 4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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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강 / 인간이란 좋겠네

한 사람의 하루를 담아내는 문학 컬렉션, 다소 시리즈. 네 번째 작품으로 한 편의 소설과 함께, 그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의 일상과 다짐이 담겨있다.

사랑은 언제나 이해보다 먼저 찾아온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보다, 그 사랑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문은강의 소설 인간이란 좋겠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 한다.

시인 장진영은 연인의 귀가 시간에 맞춰 베란다에 나갔다가 추락사한다. 사고인지, 선택인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이 죽음은 남겨진 두 여자, 연인 양미애와 제자 마여진을 마주하게 만든다. 소설은 장진영의 부재 이후를 따라가며, 그를 사랑했다고 믿는 두 여자가 어떤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고, 소유하고, 끝내는 놓지 못하는지를 교차해 보여준다.

양미애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와의 시간을 지우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녀에게 사랑은 도망치지 않고 견디는 일이었다. 함께한 날들의 기억 그가 남긴 말과 부재는 양미애의 일상을 짓누르지만, 그녀는 그 무게를 끝내 자신의 삶 안에 들여놓는다.

한편 장진영의 제자였던 마여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를 애도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붙잡는 행위로, 떠나려는 존재를 곁에 가두는 욕망에 가까웠다. 장진영을 향한 감정은 존경과 사랑, 소유욕이 뒤섞인 형태로 점점 폭주하고,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는 그를 놓지 않기 위해 기억과 감정을 집요하게 붙든다.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를 붙잡으려 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 마여진의 가족사와 성장 과정, 양미애가 걸어온 시간의 결들이 서서히 밝혀지며, 그들이 왜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성질, 사랑 앞에서 우습고 추잡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 이토록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존재일지라도, 그래서 더욱 인간이란 좋겠다고.

우리는 사랑 앞에서 과연 어떤 인간으로 남게 되는가.

#다산북스 #다산책방 @daso_series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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