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단단한 하루 - 누드 사철 제본
지수 지음 / 샘터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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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 오늘도 단단한 하루

루틴을 만들겠다고 다짐할수록 오히려 더 지쳤던 사람이라면, 오늘도 단단한 하루가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오늘의 계획보다 컨디션을 먼저 묻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대신, 오늘을 망치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그림에세이

책 곳곳에는 작가가 프리랜서로 살아온 8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불안정한 미래와 성과에 대한 압박, 끊임없는 비교와 자책 속에서도 앞을 재기보다 오늘을 지켜내는 하루를 선택해 왔다. 매주 이어온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 아무리 피곤해도 챙겨 먹는 따뜻한 식사, 하루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꾸준히 이어온 발레 수업 같은 소소한 일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삶을 단단히 떠받치는 힘이 되어준다. 요즘 많은 책들이 나를 더 나은 내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만, 오늘도 단단한 하루는 내일보다 오늘을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는 것에 더 마음을 썻다.

거대한 목표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작은 체크 하나를 채워가며 오늘을 살아내는 힘을 차근히 길러보자. 답답함 없이 활짝 펼쳐지는 사철 제본안에 사랑스러운 토끼 캐릭터와 따뜻한 그림, 밑줄 잔뜩 긋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 담겨있다.

48p 시간은 나를 끊임없이 늙어가게 만들고 할 수 있던 것도 할 없게 만들겠지만 시간이 쌓이면 때로는 안 되던 게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는 게 슬픈 것만은 아니야.

99p 잃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소중한 걸 가졌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지키고 싶어진다. 지나간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움켜쥐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비타민 하나, 물 한 잔으로 이 몸에 작은 애정을 건넨다.

155p 허기와 배고픔은 다르다. 허기는 감정의 틈에서 생기고, 배고픔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나는 종종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먹는다. 심심해서, 불안해서 위로가 필요해서.

156p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때 멈추는 게, 내 욕망이 아니라 내 상태에 맞추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큼이나 불편하다.

197p 내게 중요한 건 '친밀함의 양'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관계의 리듬'이었다. 친밀함에도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매일 소통하는 걸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느슨한 온기로도 충분하다.

242p 우리, '여유로운 나'를 좋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뭘 하는 나'를 더 좋아하잖아. 그렇지. 바쁘고 지쳐도 스스로 뿌듯해지는 마음도, 쉬면 불안해지는 기분도 잘 알지.

#샘터 #샘터사 @isamtoh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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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좋겠네 - 그리고 소설가 문은강의 월요일 다소 시리즈 4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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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강 / 인간이란 좋겠네

한 사람의 하루를 담아내는 문학 컬렉션, 다소 시리즈. 네 번째 작품으로 한 편의 소설과 함께, 그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의 일상과 다짐이 담겨있다.

사랑은 언제나 이해보다 먼저 찾아온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보다, 그 사랑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문은강의 소설 인간이란 좋겠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 한다.

시인 장진영은 연인의 귀가 시간에 맞춰 베란다에 나갔다가 추락사한다. 사고인지, 선택인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이 죽음은 남겨진 두 여자, 연인 양미애와 제자 마여진을 마주하게 만든다. 소설은 장진영의 부재 이후를 따라가며, 그를 사랑했다고 믿는 두 여자가 어떤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고, 소유하고, 끝내는 놓지 못하는지를 교차해 보여준다.

양미애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와의 시간을 지우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녀에게 사랑은 도망치지 않고 견디는 일이었다. 함께한 날들의 기억 그가 남긴 말과 부재는 양미애의 일상을 짓누르지만, 그녀는 그 무게를 끝내 자신의 삶 안에 들여놓는다.

한편 장진영의 제자였던 마여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를 애도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붙잡는 행위로, 떠나려는 존재를 곁에 가두는 욕망에 가까웠다. 장진영을 향한 감정은 존경과 사랑, 소유욕이 뒤섞인 형태로 점점 폭주하고,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는 그를 놓지 않기 위해 기억과 감정을 집요하게 붙든다.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를 붙잡으려 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 마여진의 가족사와 성장 과정, 양미애가 걸어온 시간의 결들이 서서히 밝혀지며, 그들이 왜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성질, 사랑 앞에서 우습고 추잡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 이토록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존재일지라도, 그래서 더욱 인간이란 좋겠다고.

우리는 사랑 앞에서 과연 어떤 인간으로 남게 되는가.

#다산북스 #다산책방 @daso_series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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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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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 / 레슨

모두의 삶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잘못 배운 것들, 배우지 못한 것들, 그리고 너무 늦게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레슨은 그렇게 뒤늦게 다가오는 진실들에 대해 말하며, 롤런드 베이라는 한 남자의 시간을 따라가며 우리가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군인 아버지를 따라 리비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롤런드는 영국으로 돌아온 후, 기숙학교에서 만난 피아노 교사 미리엄 코넬과의 복잡하고 모호한 사건을 겪으며 인생의 첫 상처를 떠안는다. 이 경험은 그의 성장 과정 전체에 그림자처럼 남아, 음악과 사랑, 미래를 향한 선택들에 계속해서 흔들림을 남긴다.

성인이 된 롤런드는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떠돌듯 살아가다가, 앨리사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얻으며 처음으로 안정과 책임을 경험한다. 그러나 어느 날, 앨리사가 아무 말 없이 사라지면서 그는 어린 아들과 단둘이 남겨지고, 예기치 않은 상실 속에서도 아버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냉전, 베를린 장벽 붕괴, 체르노빌, 전쟁과 팬데믹까지 세계사의 흐름 속을 지나며 롤런드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했던 삶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결국에는 그 모든 경험이 자신을 이루는 레슨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언 매큐언의 첫 자전적 소설 레슨은 마치 피아노의 저음에서 고음으로 이어지는 연주처럼, 주인공 롤런드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까지의 삶을 보여줬다. 롤런드는 늘 더 나은 길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대학에 갔더라면,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사랑에 다른 방식으로 답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처럼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늘 선택의 연속 속에 서있다. 현재의 선택은 언제나 과거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한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삶을 억지로 연결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지나가는 배처럼, 전쟁, 정치, 재난, 팬데믹이 롤런드의 삶 곁을 스치며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 같다. 우리는 거대한 시대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시대의 물결에 흔들리며, 알면서도 놓치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서 자기만의 삶을 붙잡으려 애쓰는 작은 존재이다.

“인생은 끝없는 레슨이며, 우리는 매 순간 배우며 살아간다.”

#문학동네 @munhakdongne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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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다 읽을 거야 일력 - 빈 책을 채우자 나의 이야기로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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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 / 2026 다 읽을 거야 일력

임진아 작가는 책과 함께 숨 쉬는 사람답게, 매일의 삶에 밑줄을 긋고 싶은 순간들을 문장과 그림으로 포착해 한 해의 모든 날을 채웠다. 그 속에는 사계절의 시간, 책과 사람, 감정과 풍경이 촘촘히 들어 있다.

2026 다 읽을 거야 일력은 한 권의 책이자, 독자가 직접 내용을 채워가는 특별한 이야기다. 작가가 남긴 작은 문장들은 하루의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처럼 다가오고, 오늘의 페이지에는 내가 직접 단어를 담아 완성할 수 있다.

붉은 말의 해에 맞춘 귀여운 상자 패키지로, 엽서와 스티커까지 포함된 사랑스러운 구성품. 미싱 처리된 페이지는 톡하고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 그날의 메모를 적거나 독서 기록을 남기기에 좋다. 일력이 하루하루 얇아지고, 내 기록이 조금씩 쌓여 곧 한 해를 읽어낸 발자국이 되어, 나의 시간을 기록하는 또 다른 책장이 된다.

2026년의 365일마다 서로 다른 표정과 감정을 담고있어 마치 책장을 넘기듯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일력. 짧은 문장도 마음을 머물게 하고, 귀여운 그림들은 은근한 미소를 짓게 한다. 날짜를 확인한다기보다 오늘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오늘 하루는 어떤 이야기로 채워볼지 천천히 생각하게 했다.

#위즈덤하우스 @wisdomhouse_official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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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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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 리듬 난바다

파도처럼 반복되는 사랑과 구원의 리듬

리듬 난바다는 #김멜라 작가가 주간 문학동네 연재를 바탕으로 새롭게 다듬어 출간한 장편소설로,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미움, 그리고 욕망의 움직임이 점차 농도 짙게 번져나감을 보여준다. 최근 여러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은 김멜라의 성취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남쪽에는 붉고 우람한 침식 바위가, 북쪽에는 옥녀산이 솟은 바닷가 마을. 그곳에서 #딸기농장 을 운영하는 젊은 농부 을주. 매일 어야끈을 한 #도베르만 오복이와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긴다.

그런 을주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 바로 옥녀산 삼층집에 사는 비밀스러운 외지인 둘희. 둘희는 재작년 절벽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 속 인물로,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하얗고 둥근 얼굴에 알 수 없는 사연을 품은 듯한 둘희에게 을주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꼇고 을주는 몇 차례 우연히 둘희와 마주치며, 조금씩 마음이 그녀에게로 기울었다.

서로의 존재를 의식한다 생각 했지만, 둘희가 돌연 을주를 완전히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며 혼란 속에서 방황하다가 마침내 결심한다. 둘희가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시점을 옮겨가며 둘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옥녀산 산마루에 자리한 한 사무실, 그곳에서는 #카메라 앞에 앉아 시청자들의 욕설을 그대로 받아내는 기묘한 방송이 진행된다. 익명의 시청자들은 분노와 혐오를 마음껏 쏟아내고, 출연자는 그 모든 욕을 온몸으로 감당한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욕받이 백신으로 #면역력 을 키운다”는 것이 방송이 내세우는 명분. 욕을 견딘 대가로 상생 지원금을 제공하는 곳으로, 노둘희는 이 인터넷 방송 <욕+받이>의 팀장으로 대표 한기연과 일하고 있다. 둘희의 과거 14년 전, 영화 <더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를 통해 한기연이라는 감독에게 깊이 매료되어 연인사이로 발전 되었다.

스캔들과 표절 논란으로 늘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른 인물 한기연. 결혼한 #국회의원 과의 불륜설부터 데뷔작의 표절 의혹까지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둘희는 그 논란 너머에 숨어 있는 진짜 예술을 발견했다.

세 사람의 관계는 바다와 달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미묘한 균형을 만들었다. 그 감정의 결은 물결처럼 계속 반복되며, 파괴와 재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처음엔 잔잔한 물결처럼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 인물들의 감정이 한꺼번에 덮쳐오며, 독서 내내 내가 거대한 파도 속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01p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이므로 기억이라기보다 이야기에 가까워진다.

135p 사람들은 '한 사람의 사정'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재빨리 벗겨내고 당장 입에 넣어 달콤하게 소비할 수 있는 거짓말을 원했어.

146p 난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사랑은 취미 삼아 하는 거죠.

#문학동네 @munhakdongne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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