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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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하인 /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은 독일 출신의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작가로,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청소년기에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직접 경험했다. 통일 이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며 두 세계를 모두 체험한 그는, 소시지와 광기를 통해 날카로운 풍자와 깊은 철학을 선보인다.

채식주의 사회에서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정육점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정육점은 유해시설로 분류되어 미성년자 출입이 금지되었다. 식육은 죄악처럼 취급되고, 육류 소비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미개인 취급을 받는다.

채식주의자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은 뜻밖에도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형사에게 진술하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광기의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렸던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주인공는은 회사 회식 자리에서 동료들의 강요에 못 이겨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매 끼니마다 고기를 즐겨왔던 그에게 채식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유명한 채식 블로거 톰 두부가 공유하는 채식 레시피와 조언들을 따라 보지만, 입안 가득 생기 없는 채소로 채워지는 삶에 그는 몸도 마음도 망가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채팅창 너머로 의문의 인물 육수맛내기69가 다가왔다. 닉네임만으로도 고기에 대한 욕망이 묻어나는 그는 거대한 채식 카르텔의 실체를 폭로한다. 불교계, 제약산업, 무기산업, 포르노산업, 콩·두부 업계가 결탁해 전 세계에 왜곡된 채식주의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 육식지하 조직의 존재와 그들의 비밀스러운 활동들.

육식과 채식, 어느 쪽이든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방식도 흥미롭지만, 소설이 진짜로 묻는 건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왜 그 믿음을 택하며, 그것으로 어떻게 자기 삶의 정당성을 쌓아가는가.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믿고 싶은가. 육식주의자도, 채식주의자도,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누구든 자신이 가진 믿음과 욕망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의 이념적 긴장, 소비 자본주의의 허상, 환경과 윤리에 대한 질문까지 잘 보여준 소설 이었다.

네가 먹는 것, 그 자체로 네가 옳은 건 아니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인간의 그 모든 영광은
풀에 핀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베드로전서」1장 24 절

출판사 '문학동네'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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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의 환대 - 제2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석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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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체험관에서 벌어진 기묘한 사건
제2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빛들의환대

삶의 끝에는 늘 죽음이 찾아오지만, 빛들의 환대의 죽음체험관은 그 죽음을 미리 체험하게 한다. 임사체험을 통해 미처 마주하지 못한 감정들과 각기 다른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소도시 지자체에서 자살률 감소를 위해 야심 차게 개관한 임종 체험관 '죽여주는데 가자더니 여기였어요?' 체험객들이 우르르 밀려오는 꽉 찬 예약 임종 체험관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프리미엄 연간 회원권도 판매하며, 이왕 죽는거 대접받고 체험하려는 이들. 죽으면 다똑같다고? 천만해! 돈만있면 화려하고 섬세하게 죽어 볼수 있지. 사는것처럼.

거센 빗줄기 속, 체험관을 찾아온 방문객의 충격적인 외침 지난 회차 체험객 중 한 명이 이튿날 자살을 시도했다. 폭우를 뚫고 들이닥친 낯선 방문객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

[v]수상한 체험객은 없습니까?

폭우 속 수상한 방문객의 등장은 불길한 예고였을까. 가면 뒤에 감춰진 체험관 구성원 미연, 유영, 가령, 승인 임종 체험관의 직원들 각자 숨겨진 사연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이야기는 점점 숨 막히는 긴장감 속으로 빠져든다. 죽음의 과정을 따라가며 인물들의 삶의 문제를 교차해 보여주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금 살아간다는 의미를 찾아간다.

홀로그램 초대권과 수상한 체험객.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강렬한 소설. 죽음의 얼굴을 한 슬픔과 죄책감, 오해와 회한, 후회, 그리고 희망이라는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출판사 '나무옆의자'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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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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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서재 밀리로드 연재 월간1위, 뜨거운 화제작
마침내안녕 출간 즉시 드라마 제작 확정

총 스무 개의 장으로 나뉜 에피소드 속에서 도연은 법원에서 만난 이들, 일상 속 동료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다양한 사건들을 담아냈다. 이혼, 양육권, 가정폭력 삶이 부서진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가사조사관 도연. 타인의 아픔을 기록하는 일이 일상인 도연은 일도, 관계도, 인생도 무엇이든 적당히 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도연은 한때 임상심리사였다. 간호사였던 도연의 언니는 병원의 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고, 그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도연은 정신분석학 교수 민의 도움으로 심리 치료를 받으며, 작은 정신과 병원에서 임상심리사로 근무하게 된다.

도연은 실장인 지원을 닮고 싶었다. 능력 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멋져 보였기에 그러나 따뜻한 인정과 관심 같았던 지원의 태도는 점점 경계를 넘기 시작했고, 호의는 통제와 지배로 변해갔다. '아픔을 꺼내 보이라고, 나를 믿으라고, 너를 위한다고.' 직장 내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11p 눈물, 콧물, 말···. 인간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요란할까.

95p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다. 어떤 날에는 현실 같지 않고 어떤 날에는 너무 현실 같았다. 현실이라고 느낄 때에도,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도 혼란스러웠다.

도연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늘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과거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도망쳤던 도연. 자신보다 먼저 무너져버린 평범함을 꿈꾸던 언니의 아픔조차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다.

199p 괜찮은 것 말고, 괜찮지 않은 것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징징대고 싶은 한 힘든 것, 견딜 수 없는 주 더는 감당할 수 없는 것, 무엇이든 입 밖으로 나오면 그만큼은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비워진 크기만큼 언니의 선택이 늦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렇기에 가사조사관으로서 타인의 인생을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일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 같았다.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말해 본 적 없는 도연은 괜찮지 않다는 말을 꺼낼 용기도 잃은 채, 오랜 시간 침묵 속에 머물렀다.

주변 인물들의 거침없는 이야기로 도연은 알게 되었다. 참아내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언니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마침내, 안녕.

출판사 '서사원' 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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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눈이 내리다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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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 고래눈이 내리다

5년 만에 돌아온 김보영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자연과 비인간 존재의 목소리를 감각적으로 그려낸 9편의 단편이 수록된 SF 작품집이다. 표제작 고래눈이 내리다는 로제타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찬사를 받은 작품들을 모았다.

17p 그들은 먹을 수 없는 유독물을 매일 수천 톤씩 배설해 대양에 버린다. 심해는 그나마 피해가 적지만 조금만 윗동네로 가도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연이어 창궐하고, 산호처럼 귀한 목숨들이 어처구니없이 사라진다.

고래눈이 내리다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 어둠 속에서도 생명은 살아 있었다. 문명은 멸망했고 인간은 사라졌지만, 심해의 생명은 여전히 서로를 감지하고 지켜보며 기억해간다.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 처음이 찾아왔다.

22p '맹독이든, 병균이든, 슬픔이든, 아픔이든, 여기에서는 모두 같아. 모두가 아름다운 눈송이가 되지. 은혜로운 양식이자 생명의 기쁨이 되지. 이 아래에서는 모두가 다 같아지지.'

심해 우주, 서버, 낯선 공간과 그 속의 이질적인 존재들. 책의 거의 모든 이야기는 기존의 인간 중심주의를 깨려는 시도로 가득하다. 기계와 동물, 서버 속의 존재, 심해의 생명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 존재들은 놀랍게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김보영이 구축한 세계는 우주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어, 제목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깊이 있는 문체는 감정을 진동시켰고, 현실과 비현실 사이 어딘가, 저 깊은 심해 속 매력에 퐁당 빠져들게 했다. 고래눈이 내리다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모양을 가진 소설이었다.

141p 디스크에도 수명이 있다. 단순한 파일도 오래 보관하거나 전송을 계속하다 보면 품질이 열화한다. 생물이라는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178p 함께 있어줄게.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야 나랑 같이 있어서 정신 사납게 죽었단 말은 들었어도 심심하게 죽었단 말은 못 들어봤어.

출판사 '래빗홀'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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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지음 / 허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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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경 /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SF 소설 나인경 작가의 첫 장편소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근미래 2035년, 기억을 저장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ID칩을 이식한 채 살아간다.

초거대 기술기업 유니언워크가 개발한 ID칩은 인간의 뇌와 클라우드를 연결시켜 기억을 손쉽게 관리하는 편리한 미래를 약속했지만, 사용자들의 기억에서 감정을 은밀히 제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 유니언워크 사용자들에게 기묘한 메시지가 도착한다. '먼 미래에서 기다릴게. 너를 기억하는 나를 기억해 줘.' 사용자들은 이 메시지를 읽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강렬하게 떠올리며 혼란에 빠진다.

디도스공격 메모리 데이터 해킹으로 인한 메세지 테러. 유니언워크 공식 입장이었지만, ID칩의 치명적인 결함 혹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기밀, 반유니언워크 모종의 계획과 숨겨진 음모들이 난무하다.

주인공 안과 정한은 유니언워크 블루진 프로젝트로 인해 어린 시절 ID칩 생체 실험을 당했다. 안을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의 의식이 한 명에게 주입되었고, 반면 정한은 기억을 끊임없이 분해하고 파편화하는 실험의 대상자였다.

세월이 흘러 안은 기억을 지워 가며 살아가고, 정한은 기억을 복원하며 살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선택 모두가 사라지지 않는 감정과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 서로를 잊은 채, 각각 방송 작가와 AI챗봇 설계자로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그리움이 늘 웅크리고 있다.

잊었지만 여전히 그리운 것,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것.

소설 속 안과 정한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향한 감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누군가는 그걸 환청이라 부를 수도 있고, 버그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렴풋한 감각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고유하고 아름다운 능력이 아닐까. 우리는 왜 누군가를 사랑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출판사 '허블'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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