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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평점 :
맥주, 라면, 불교, 유목민, 의학의 세계사에 이어 쓰레기 세계사라니! 하반기에 봤던 갖가지 세계사 책 중에 가장 참신해 보였습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소재를 대상으로 역사를 쓴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쓰레기 역사를 알아야 하냐며,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환경과 기후 위기를 체감하며 사는 한국인이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주제로 보입니다.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 의류 쓰레기 등 살면서 만들어 내고 있는 쓰레기를 떠올려보면 모두 한번 쯤 관심 갖고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책을 쓴 로만 쾨스터(Roman köster)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역사 연구자라고 합니다. 이 “쓰레기의 세계사” 책은 2024 독일 논픽션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고 하고, 표지에는 FAZ, SZ, NZZ 같은 독일 언론에서 추천했다는 문구도 쓰여 있어서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쓰레기를 늘 발생시켰다는 작가의 전제로 책이 시작됩니다.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가 나오는 요즘뿐 아니라 산업 혁명이 있기 전 선사, 고대, 중세 시기에도 쓰레기가 인간 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잠깐 생각해보면 옛날 사람들도 배설을 했을 테니 작가의 전제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그런 것 치곤 이 옛날에 있던 쓰레기에 관한 설명을 폭넓게 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기껏 해봤자 산업 혁명 즈음 런던 같은 유럽의 인구 밀집 도시에 배수나 오물 처리 시설이 오늘날 같이 마련되지 않아 악취가 진동을 했다는 것 정도가 있습니다.
“쓰레기의 세계사”에는 근대 이전, 산업 시대, 대량 소비 시대 등 세 가지 시기 구분 하에 인간이 만들어냈던 쓰레기는 뭐가 있었고, 이것들이 당시 인간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때 사람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근대 이전 쓰레기에 관한 1장을 가장 집중해 읽었습니다. 오늘날 쓰레기 문제야 평소에 쉽게 듣고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식 축산이 없던 전근대 시기 유럽 중부에서는 돼지가 방목되어 키워졌다거나, 근대 초기 이후 도시의 발전 이후에는 우리 안 사육으로 형태가 변화하면서 도시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먹이로 주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산업 발전, 도시로의 인구 집중, 도시 인프라 형성, 공장식 축산, 동물을 통한 쓰레기 처리라는 유기적 흐름이 역사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돼지의 자리에 개가 있던 문화권도 있었고, 이에 따라 질병을 매개하는 더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밖에서 개 식용 행위를 두고 야만적 행위로 바라보던 시선에는 물론 인간과 가깝고 돈독한 관계에 있는 개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도 있겠지만, 이 책을 보면서 어쩌면 불결함에 대한 역사적 기억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심각한 비상 상황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개는 때로 두려움을 조장했다. 특히 정육점 근처를 돌아다니는 개는 악명이 높았다. 이러한 개는 돼지보다도 길들이거나 통제하기 힘들었다. 개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개도 돼지와 비슷한 나쁜 버릇이 있었다. 1630년대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피렌체에서는 자꾸만 시체를 파헤치는 개들 때문에 묘지 주변에 울타리를 쳐야 했다.” pp. 76-77
더러운 쓰레기를 중심으로 인간이 선사 시대부터 어찌 살아왔는지 보는 동시에,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으로서 쓰레기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쓴 역사를 보며 앞으로의 문제는 어찌 해결하면 좋을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흐름출판 도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