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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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 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김영필 지음 / 울력 / 2021년 11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1년 12월 26일에 저장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 기행
르 코르뷔지에 지음, 조정훈 옮김 / 다빈치 / 2005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21년 06월 29일에 저장
절판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김율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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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아파트
박철수 외 지음 / 집(도서출판) / 2021년 4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2021년 06월 2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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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1차 2차 세계대전/임진전쟁 등은 별도의 리스트로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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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스의 두 얼굴- 정당한 전쟁.부당한 전쟁
마이클 월저 지음, 권영근.김덕현.이석구 옮김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7년 7월
20,000원 → 20,000원(0%할인) / 마일리지 60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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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년
미셸 푸코 지음, 김상운 옮김 / 난장 / 2015년 1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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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론- 전면완역개정판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 지음, 김만수 옮김 / 갈무리 / 2016년 10월
55,000원 → 49,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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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전쟁의 기원에서 미래의 전쟁까지, 한 권으로 읽는 전쟁의 세계사
제러미 블랙 지음, 유나영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5월
19,500원 → 17,550원(10%할인) / 마일리지 9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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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어떻게 위대한 정복자가 우리에게 종교적 자유를 주었는가
잭 웨더포드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7년 6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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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앨버트 허시먼-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11월
55,000원 → 49,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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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카 평전-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역사가
조너선 해슬럼 지음, 박원용 옮김 / 삼천리 / 2012년 3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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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R. H. 토니- 삶, 사상, 기독교
고세훈 지음 / 아카넷 / 2019년 10월
26,000원 → 24,700원(5%할인) / 마일리지 1,3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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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아론>

[서양의 새로운 문명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어]

우리 일본의 사인(士人)은 국가라는 것을 중히 여기며, 정부란 국가보다 가볍다는 대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황실의 신성존엄에 의지하여 도쿠가와 구(舊)정부를 타도하고 신정부를 세워, 나라 안의 관민이 따로 없이 합심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취하며, 단지 일본의 구습을 벗어버릴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 가운데서도 새로이 하나의 축을 세워, 주의주장으로 정할 것은 그저 '탈아' 두 글자이다.


우리 일본의 국토는 아시아에서도 동쪽에 있지만 그 국민의 정신은 이미 아시아의 고루한 태도를 벗고 서양 문명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웃에 중국이란 나라와 조선이란 나라가 있다. 이 두 나라의 인민은 옛날부터 아시아적인 정교풍속에 의해 길러진 점에서는 우리 일본 국민과 다르지 않지만은, 인종적으로 달라서 그런지, 같은 정교풍속 가운데 있으면서도, 유전 및 교육 방식이 달라서 그런지, 일본 중국 한국 세 나라를 비교해보면, 닮기는 중국과 한국이 서로 닮았으되, 두 나라가 일본과 닮기는 그보다 훨씬 덜하여서, 이 두나라는 나라의 백성들이나 나라 전체로서나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르고, 사람과 사물의 교통이 편리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 문명 사물을 보고 들음이 없지 않건만, 그 보고 들음으로써 마음을 움직이지를 못하고, 그저 고풍스런 구습에 연연해하는 마음은, 수천 년 전과 달라진 바없이,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세계의 활약상 앞에서도, 교육이라 하면 그저 유교와 인의예지만을 칭할 뿐, 하나에서 열까지 겉보기에 그럴 듯한 텅 빈 장식만을 둘렀을 뿐, 진리원칙의 식견이 부재한가 하면, 그들이 자랑으로 아는 도덕조차 땅에 떨어지고, 파렴치가 궁극에 달해, 그마저도 오만한 태도로서 일관하며, 자성(自省)의 염(念)이랄 것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하겠다.


<후쿠자와 유키치 다시 보기>, 38~39쪽


실은 19세기 전반까지 ‘아시아‘라는 말에 그와 같은 통합성을 시사하는 의미는 없었다. 유럽에서 생긴 이 말이 동아시아에 들어올 당시에는 유럽에서 바라본 동방 전역을 가리키는 잔여 개념으로 쓰였고, 한자 문화권 사람들은 그것이 공허한 개념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 P189

명말기인 1607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곤여만국전도>를 간행함으로써 중국문명권 사람들은 ‘아시아‘라고 하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이 세계지도는 당시의 유럽인이 알고 있었던 지구지리를 유럽과 대서양이 아닌, 중국과 태평양을 중심으로 재배치하여 지명을 한자로 써넣은 것이다. - P201

‘아시아‘는 "남은 수마트라와 루손, 북은 스바르발과 북해, 동은 일본과 대명해, 서는 타나이스강/아조프해/서홍해/소서양으로 이어져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인 설명은 일체 없다. ‘아시아‘라는 말은, 기독교 유럽의 외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동방에 있는 광대한 지역이라는, 오히려 자연 지리적인 세계 분절로서 중국문명권에 등장했던 것이다. 이 세계지도에 있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말의 사용법이다. 여기에는 후세와 같은 ‘동양‘(=orient or The East), ‘서양‘(=Occident or The West)이라는 등식은 없다. 지도를 보면, 일본의 앞 바다에 ‘소동양‘, 멕시코 앞 바다에 ‘대동양‘, 포르투갈의 앞 바다에 ‘대서양‘, 지금의 아라비아해에 ‘소서양‘이라는 문자가 기재되어 있다. 즉 리치는 중국어의 용법에 충실해 동에 있는 대양이라든가, 서에 있는 대양이라는 의미로 동양이나 서양을 쓴 것이다. - P202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에서는 ‘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서 파악하기 시작했는데, 그에 앞서 세계 인식의 틀에 큰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세계 각국이나 인구 집단을 명확한 기준에 따라 계층적으로 차별하여 인식하는 지적 습관이 도입된 일이다. 그중에 먼저 생긴 것은 각각의 나라가 ‘독립‘되어 있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이며, 그 다음이 동시대 유럽을 기준으로 한 ‘문명‘화의 정도였다. 양자 모두 거대한 정치 환경의 변화, 즉 전자는 아편전쟁에 의한 대청의 패배, 후자는 메이지유신의 충격하에 일어난 것이었다. - P209

메이지 신정권이 도쿠가와 막부의 ‘개국‘정책을 계승했을 때, 당초의 관심은 오로지 서양 각국과의 관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조선 대청이란 주변 각국과 관계가 생겨났다. 우선 조선과의 사이에서 국내 개혁의 수단으로서 정한론이 일어났고, 국교 갱신의 실패를 계기로 그것은 외교정책상에서도 진지한 검토의 대상이 됐다. 그와 더불어 한편에서는, 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조선의 종주국인 대청과의 국교수립이 시도됐다. 메이지 정권은 서양에 이어, 처음으로 근린과의 외교관계를 갖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적인 질서를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 - P214

일본인이 얼마나 서양의 눈을 의식하며, 좋은 평판을 받기에 급급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때 그들은 서양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높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다른 ‘아시아‘ 각국과의 차이를 이야기한 것이다. - P216

일본인은 세계 정치와 아시아 전역의 여러 나라 지역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갖기 시작했지만, 메이지 10년쯤이 되면, 아시아 내부의 상호연관에 대한 인식에 부가하여, 서양의 지배에 대항하는 ‘아시아‘의 제휴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 P221

일본 내부에서 생긴 ‘아시아‘의 정치적 상호의존성이란 인식은, 류큐 처분을 둘러싼 청일 충돌 위기를 계기로 중일관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진흥이란 주장으로 고양됐고, 1880년에는 흥아회라는 운동단체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는 정부와 저널리즘이라는 두 차원에서 중일 간에 강한 상호작용이 생겼고, 1880년대 초기에는 러시아를 공통의 가상적으로 하여, 조선의 개혁을 대청이 지도한다고 하는 정책이 한중일 삼국간에 공유되었다. 이데올로기 차원과 외교정책의 두 차원에서 동아시아에 최초로 정합적인 지역적 틀이 설정된 것이다. - P237

여론의 다수 의견은 연합하여 구미와 겨루기 위해서는 중국과 조선도 일본처럼 ‘개화‘하지 않으면 유효치 않다 하여, ‘아시아‘를 ‘개화‘로 유도하는 것이 일본의 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개화‘의 가망성이 있다면 아시아 연대는 가치가 있으니, 현지의 지식인들을 적극 원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람에 따라서는 혹은 현지에 깊이 관여한 경우에는 현지인에 의한 개혁의 장래성이 희박해 보이면, 일본인이 현지인을 대신하여 개혁의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개입하기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거꾸로 현지의 개혁이 절망적이면, ‘아시아‘라는 지역적인 틀을 버리고, 메이지 초기와 같이 일본 단독으로 개화의 길을 돌진해 나아가면 된다고 하는 논리도 세워진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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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만 해도 300페이지에 가까운, 1094항이라는 방대한 헤이그 판결은 ‘위안부‘ 문제의 집대성, 국제법의 새로운 고전, 페미니즘 사상의 결정판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평가를 받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이 판결의 특색은, 우선 첫째로 ‘민중법정‘의 사상적 실천적 의의를 명기한 것이다. "민중법정 같은 건, 어차피 강제력은 없지 않나,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에 "이것은 하나의 판단을 나타내는 것이며, 형을 집행시키거나 국가에게 보상하게 하는 강제력이 없다고 해서 이 판단이 무효인 것은 아니다. 민중의 힘으로 일본 정부에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민중법정의 사상을 확실히 나타냈다. - P245

지금까지 남성 중심이었던 국제법에 여성의 관점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젠더 정의‘ 사상이 판결문에는 명확하게 들어갔다. 재판관 중에서도 특히 크리스틴 친킨은 국제법을 젠더 관점으로 전면적으로 새롭게 개선하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이 판결에 확실하게 녹아들어 갔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국제 법정에서는, 전시 성폭력이 피해자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극단적인 경우는 적에게 강간당한 딸을 가족의 불명예라고 해서 아버지가 죽이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전시 성폭력은 피해자 여성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 P247

민중법정의 사상, 젠더 정의에 이어서 최종 판결의 세 번째 특색은, 이 ‘법정‘이 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글로벌한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노예제의 책임을 일본 정부에만 부과한 것은 아니다. 우익 등은 "왜 일본만 책망하는가?"라고 했는데, 헤이그 판결은 일본 정부에 주된 책임은 있지만, 구 연합국의 책임까지 확실하게 밝혔다. ‘위안부‘ 제도의 존재를 미국이든 연합국이든 알고 있었다. 압수한 일본군의 방대한 자료, 포로가 된 일본 병사와 일본군이 도주한 후에 남은 ‘위안부‘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그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쿄재판에서 다루지 않았다. - P248

판결의 네 번째 특색은, 이 ‘법정‘이 도쿄 재판의 연장이라고 명언한 것이다. 우선 도쿄 재판에서는 최고 책임자인 천황을 소추하지 않았다. 이것이 전후 책임 문제에서 얼마만큼 마이너스의 영향을 주었는가. 그 때문에 천황의 명령으로 움직인 군인, 병사들의 전쟁 책임의 소재도 결국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때 늦은 정의‘라는 말이 있듯, 도쿄 재판의 결함을 분명히 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P249

헤이그 판결의 다섯 번째 특색은 미래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전시성폭력의 불처벌을 없애가자.‘는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그것을 더욱 전진시키는 데 공헌했다. - P249

그것은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낸 것으로 시작된다. 또 가해국 여성이 그 목소리에 부응하여, 피해국만이 아니라 제3국 여성의 지지까지 얻어 정말 글로벌한 여성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국제법을 국가 중심에서 시민의 손으로, 남성 중심에서 여성으로, 현재 중심에서 과거와 미래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헤이그판결이 역사를 바꾼 큰 발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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