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백
후지모토 타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를 돈 주고 산 건  제외하고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 코레에다 히로카즈가 실사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50분 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원작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최소 두 번은 본 셈인데, 이 작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작품의 큰 줄기는, 만화가를 꿈꾸는 초등학생 후지노(藤野)와 쿄모토(京本)의 우정과 성장, 같은 만화가로서 상대의 재능에 대해 품는 질투와 동경을 다루는, 일본 청춘성장물의 전형적인 틀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나 마틴 스코세이지의 처럼 예술가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 경우 대개 그렇듯이, 이 만화는 단순한 성장물을 넘어서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 자신이 만화를 그리는 태도와 감정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담아낸다.


두 주인공인 후지노와 쿄모토는 사실상 작가의 분신이자 만화에 대한 본인의 지론을 인격화한 것이다. 후지노와 쿄모토의 이름에서 각각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따면, 작가의 이름인 '후지모토'가 된다. 후지노는 후지노는 그림 실력은 부족하지만 유머 감각과 만화의 내용을 잘 구상한다. 반대로 쿄모토는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구도나 표현력에서 우수한 실력을 보이지만, 이 캐릭터가 마지막까지 콘티를 짜거나 스토리를 구상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 둘은 같이 만화를 그리는데, 메인스토리와 콘티는 후지노가 만들고, 쿄모토는 어시스턴트로서 배경작화를 그리는 식으로 둘의 협업이 이루어진다. 만화는 내용과 그림이라는 두 요소가 합쳐졌을 때 완성된다는 것이 후지모토가 생각하는 만화인 것이다.


룩 백.look back

'뒤돌아보다', '회상하다' 등의 뜻이 있는 이 단어는 이 작품의 주제, 인물 간 관계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제목이다. 이 단어를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면, '뒤를 보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 말처럼 이 작품은 인물의 뒷모습을 가장 인상적으로 포착한다. 한때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던 후지노는 진정한 재능을 갖춘 쿄모토를 보고 처음으로 그림 연습에 매진한다. 작가는 이를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인물의 '뒷모습back'을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처음으로 질투심과 열등감을 안겨다 준 쿄모토는 사실 자신의 만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자신의 팬이었다. 즉, 쿄모토는 후지노의 그림을 보고서 후지노를 따라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처럼 두 인물의 관계는, 처음부터 한쪽이 리드하고 다른 한쪽은 그 뒤를 따르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후지노는 쿄모토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이자, 등교를 거부하고 집에만 있던 쿄모토를 세상으로 이끌어준 존재였다.반대로 쿄모토는 늘 후지노의 뒷모습을 보는 존재였다. 그러나 언제나 후지노만이 영향을 주는 쪽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후지노가 실의에 빠져 그림을 포기하고자 할 때, 그녀가 그림을 계속 그리게 할 동력이 되어준 것이 쿄모토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만화를 그만두려 한 후지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동경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쿄모토 덕분에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또한, 작품 후반부에서 어떠한 일을 계기로 만화를 그리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 그녀는 다시금 자신을 뒷받침해주던 쿄모토의 존재 덕분에 만화를 그릴 힘을 얻는다. 


'뒤를 본다'는 것은 능동적인 한쪽이 수동적인 한쪽을 주도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뒤에서 자신을 받쳐주는 든든한 아군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뒤를 돌아보아(look back) 자신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된 후지노는 다시금 조용히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독자는(혹은 관객은) 다시 그 '뒷모습'을 본다. 


질투와 존경, 후회와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담겨 있는 이 작품은, '뒤를 보는 존재'와 '뒤를 돌아보는 존재'라는 관계를 통해 만화를 그리는 것에 대한, 인간관계에 대한 후지모토의 진심어린 생각을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