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서구에서는 비서구 전통의 낯선 신들, 다른 민족의 신들을 그리스도교의 악마, 괴물로 만들곤 했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여행하다가 기괴한 형체를 맞닥뜨린 서구인들의 이야기는 적어도 13세기 말에서 14세기, 마르코 폴로와 포르데노네의 오도리코와 존 맨더빌까지 거슬러 간다. 이들은 일종의 판타지를 저술했고, 15세기 초에 나온 <세계의 불가사의>Livre des merveilles를 비롯해 삽화가 있는 여러 책에 그들의 글이 실렸다. 이 책들은 시각적 어휘의 상당 부분을 계시록으로부터 가져왔다. 예를 들어 마르코 폴로가 중국 카라잔 지방에서 보았다는 거대하고 게걸스러운 용은 커다란 날개를 가졌고 꼬리 끝에는 뱀 머리가 달렸다고 하는데, 이는 계시록 12장의 커다란 날개를 가진 용과 계시록 9장의 뱀 꼬리 달린 사자 얼굴 말에서 착안해 꿰어맞춘 것으로 보인다.

(...)

자신에게 친숙한 종말론적 심상을 낯선 종교의 심상과 관행에 투사하는 행위는 식민지 담론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호미 K. 바바가 지적하듯 이러한 투사는 어떤 문화적 타자를 "'타자'인 동시에 전적으로 가시적이고 인식 가능한 사회적 현실"로 만든다. 동일성과 차이, 끌림과 혐오라는 양면의 유희가 수반되는 이 역학을 통해 우리는 친숙한 악마의 심상을 낯선 종교 문화에 투사하고 다른 사람들이 예배하는 신을 괴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독특하고 단순화될 수 없는 차이를 단순화시켜 우리의 의미 체계 안에 집어넣는다. 유럽 그리스도교인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마주한 다른 종교를 계시록의 괴물 신을 가지고 해석하는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친숙한 타자성'을 지닌 심상을 만들어냈고, 동양 종교에 씌운 저 심상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계시록과 만나다>, pp. 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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