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좀비물일까? 좀비물을 촬영하다가 진짜 좀비가 나와서 현장은 엉망이 되고 생존자들끼리마저 서로 죽고 죽이는 데스게임이 펼쳐진다는 플롯 자체는 이상할 게 없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허접한 연기와 연출이다. 분명 익숙한 좀비물을 보는데도 이후 전개를 예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37분만에 엔딩크레딧과 '컷!' 소리 때문에 당혹감은 배가 된다.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영화는 무엇일까?


의문은 약 40분의 당혹스러운 무언가가 끝나면서 풀린다. 무려 영화의 1/3 이상을 지나서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삼류 감독 히구라시에게 방송국에서 좀비물 제작 요청이 들어오고, 이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타이트한 스케쥴, 배우의 갑질 등 온갖 난관을 뚫고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 초반 시퀀스는 바로 그 좀비물 영상의 제작기였던 것이다. 이 듣도보도 못한 영화가 선사하는 신기한 영화적 체험을 최대한 온전히 향유하려면 이 정도 줄거리 정보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초반 시퀀스에서 의아했던 요소들이 후반부에서 모두 풀리면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때부터는 감독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면서 이미 본 똑같은 상황인데도 처음본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게 된다. 영화는커녕 예능을 보고도 크게 웃은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거미집>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거미집>이 김열이라는 한 예술가의 창작욕에 집중하는 영화라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한 편의 극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흘려야 하는 땀과 눈물, 애환(그리고 웃음)이 담겨 있다. 참 멀고도 긴 촬영을 끝내고 극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의 짓는 홀가분한 얼굴에서 웬만한 감성영화 못지않은 감동이 벅차올랐다. 이 영화에는 대스타도 없고 유명 감독도 등장하지 않는다. 감독은 집에서는 아내와 딸에게 무시당하는 소시민적 인물에, 감독으로서도 변변찮다. 배우들도 재연배우거나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 뿐이다.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30분짜리 단편이지만, 대부분의 인물이 처음 해보는 장르에 처음 해보는 모험이었다. 당연히 뜻대로 안 되고 돌발상황이 속출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위기상황을 히구라시를 비롯한 소시민, 아마추어가 하나하나 해결하여 결국 한 편의 작품을 만드는 그 과정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세계평화를 지키는 특수요원이나 슈퍼히어로보다 30분짜리 단편을 완성하려는 그 노력에 더 손에 땀을 쥐며 보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카메라를 멈추지마'라는 영화 제목에서는 아마추어의 열정과 꿈이 느껴진다. 열악한 환경에서 카메라를 멈추지 않겠다는 일념만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이 영화 막바지의 정서적 파장을 깊게 해준다. 한마디로, 긴장감과 웃음과 감동이 억지스럽지 않게 한 작품 안에 모두 담겨 있으며, 좀비물이라는 단물 다 빠진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이리도 참신하게 극을 이끌어간 능력에 혀를 내두른다. 저예산 B급 영화 특유의 감성 말고는 난 이 영화에서 별로였던 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어설픔은 이 영화의 단점이 될 수 없다. 그 어설픔이야말로 영화의 매력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어설프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영화. 그게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면 모든 게, 특히 의도적으로 설정된 아마추어들의 '어설픔'마저도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웃으면서 끝나는 좀비물이라는 것이 가장 좋았다.(개인적으로 좀비물은 그닥 즐기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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