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상가를 정치사상가로 부르기 위해서는, 현실 사태에 대한 그의 원인 규명과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어야 한다. 묵자는 전국시대의 혼란상을 각자가 자신만을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강렬한 배타성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두 가지 문제의식은 묵자의 중심사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서로를 배척하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은 ‘1인1의’하기 때문이다. 즉, “모두 제 의만을 옳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의를 잘못이라고 한다.”(皆是其義, 而非人之義, <묵자> <상동하>) 공동체 내에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지닌 개인들이 조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옳음만을 주장할 경우, 이들은 서로 배타적이게 되고 사회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묵자는 이러한 1인1의와 그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의의 통일’을 주장한다. 이때 의를 통일하는 주체는 국가와 정부여야 한다. “1인1의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형정을 수립하고 정장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정장의 우두머리가 바로 천자다.” 여기서 형정이란 오늘날의 말로 국가기구이고, 정장은 관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국가-군주-관료집단이 하나의 의를 수립함으로써 다른 의를 제거하고 통일하는 것이 혼란한 국면을 위로부터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묵자는 본 것이다. 이러한 묵자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상동(尙同)’이라고 한다.
형법과 법령을 수단으로 의는 성취된다. 그리고 이 법률은 군주에 의해 제정된다. “의는 어리석고 천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天志中> 천자야말로 귀하고 지혜로운 존재이기에 법률 제정에 가장 적합하다. 그러므로 아래 계급은 천자의 의를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군주와 관료조직에 의해 법률을 확립해야 한다는 데에서 묵자의 상동의 핵심은 통치질서의 확립임을 알 수 있다. 통일된 의는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 “부귀로 앞에서 인도하고, 분명한 형벌로 뒤를 이끈다.”(<상동하>)
그런데 묵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의 통일’이라는 위로부터의 통합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 조성된 원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뿌리는 ‘자애’에 있다.” 자애의 실제 내용은 ‘자리(自利)’이다. 자리의 문제점은 그것이 사람을 차별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묵자는 ‘별’과 ‘자애’ ‘자리’가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자애’ ‘자리’는 사람을 대하는 데, 처세하는 데, 일을 하는 데 있어 반드시 ‘교별’ 즉 서로 차별하게 만든다.” 나의 이익과 나의 집단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면서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차별한다. 그리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묵자가 살던 시대와 같은 혼란함을 일으켰다. 이런 자애와 자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그것이 겸상애와 교상리이다. 겸상애는 “다른 사람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 몸보기를 제 몸 보듯이 하는” 것이다. 겸상애는 자와 타 사이의 차이와 차별을 폐기한다. 이것이 중요한다. ‘겸’은 평등의 원리를 표명한다. 물론 이때의 평등은 정치적·경제적 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하지만, 겸은 ‘별’ ‘자리’의 원리와 대조된다. 교상리는 겸상애의 현실적 반영이다.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생기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교상리의 중요한 정신은 ‘상하의 조화’이다. 위 계급과 아래 계급이 조화를 이룰 때 이익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등을 지향하는 겸애와 상동은 모순된다. 그렇지만 묵자는 이 양자를 통일해낸다. “겸애는 평등을 지향하고, 상등은 전제를 지향한다. 보기에는 양자가 완전히 상반된다. 그러나 사실상 묵자는 이 둘을 기묘하게 통일하여 나타낸다. 그는 상동의 방법으로 겸애를 끌어내는 데, 이때 겸애는 행정 권력의 종속물로 바뀐다. 겸애는 상동에 의지해 실현되는데, 이때 상동은 사회조작의 주체가 되므로 전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백성으로 하여금 상동하게 함에 있어서 백성을 사랑하여 힘쓰지 않게 하면 어느 곳에서도 부릴 수 없다. 그래서 <상동하>에서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그들을 부리고, 지극히 믿게 하면서 지키도록 한다”고 쓰여 있다. 국가가 겸애와 교상리를 의로 삼아 적극적으로 이에 개입하여 보급하면, 서로 대조되는 겸애와 상동이 통일된다. 겸애는 백성을 부리는 수단이 되고, 엄격한 형벌을 통해 그것을 지키게 한다. 묵자의 정치적 실천 프로그램은 이렇듯 강제성을 띤다.
묵자의 정치사상에서 상동과 겸애 외에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상현설, 절용설, 비공설 등이 있다.
- 상현설
능력 있는 인재의 고용은 다른 제자백가들도 주장한 것이지만, 묵자는 이를 가장 급진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부귀’와 ‘친척’을 용인하는 귀족정치를 폐기하고 능력주의적 관료정치를 세우고자 하였다. 이는 귀족들이 정권을 장악하던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 절용설
절용(節用)은 묵자 전체 사상 체계의 기본 명제 중 하나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을 넘어 소비와 생산 등 경제의 기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묵자의 절(節)은 1) 일정한 수준의 소비가 있어서 생활의 기본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 그리고 2) 소비를 재생산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 등의 의미이다.
- 비공설
공(攻)은 묵자가 말하는 의와 이에 합치하지 않는 경제·정치·도덕 여러 방면의 모든 행동을 지칭한다. ‘비공(非攻)’이란 ‘공’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묵자는 공을 기준으로 전쟁을 설명한다. 묵자는 모든 전쟁이 아니라 의와 이에 대치되는 전쟁만을 반대한다. 그는 당시의 겸병 전쟁을, 사유재산권의 침해, 백성의 손해, 막대한 군비 부담 등의 이유로 반대하지만, 이익이 있고 의에 합치하는 ‘주(誅)’의 전쟁은 긍정한다. 그런데 과연 정당한 전쟁이란 있을까? 비공설을 읽고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