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을 며칠전에 보았는데, 여운이 상당히 길게 남았던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정보를 찾아보다가 놀라운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이 영화도 원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 그것이다.

 







21세기북스에서 역간하기도 한 이 책은 국내 번역본상으로 800쪽이 넘는, 말 그대로 대작이다.

그간 소설 같은 문학작품만 영화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링컨의 생애와 정치행적을 다룬 대중역사서도 이렇게 훌륭하게 영화화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 다시 생각해보니,

한국 영화 중에서도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이 김충식 작가의 동명의 논픽션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비단 역사소설이 아니더라도, 잘 쓰인 역사서도 충분히 영화로 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기류 등으로 범위는 제한적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싶은 책이 배명식 선생의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이봉창의 생애를 다룬 이봉창 평전이다. 저자는 "독립운동 영웅의 기록이 아닌 식민지 청년 노동자의 기록으로서의 이봉창의 삶" "민족 차별을 근간으로 하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이봉창 같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청년의 삶을 황폐화하는 과정" 등에 입각하여 이봉창의 삶을 서술했다.

 

이봉창은 1901년생으로, 신흥 자본가 아버지를 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어려워진 이봉창은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봉창은 그 차별에 체념하면서도 그 차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별적 체제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혜택이 주어지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세조사위원회 활동이 그런 예이다.

 

일본에서는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이봉창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때부터 그는 기노시타 쇼조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더욱더 일본인이 되려 함으로써 차별을 없애려 하였다. 조선과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조선인 본명은 절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신일본인"으로서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가 일본인이 되려 하면 할수록, 그가 느낀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은 조선인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기노시타 쇼조'가 아니라 '이봉창'으로서 살기로 결심한다. 이봉창은 31살에 상하이에서 김구를 만났고 도쿄에서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영화 <링컨>, 수정헌법 13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때로는 비열한 수도 마다않는 현실 정치인으로서 링컨을 그려내어 정치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면, <식민지 청년 이봉창>도 체제에서 소외된 식민지 백성의 내면을 통해 정치의 또 다른 한 측면을 드러낸다. 강유원의 서평을 옮겨보겠다.

 









"우리는 무엇이 이봉창을 분노케 하였고 자긍심을 돌아보게 하였는지를 알았다. 그것은 반드시 식민지 백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체제에서 소외되어 체제에서 떨려 나갈까 두려워 하면서 불안 속에서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상해로 가기 전의 이봉창'처럼 체제에 순응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거짓 이름으로 살아간다면 체제에서 받아들여 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들에게 격정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행동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정치'임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챌 수 있다. 수많은 기노시타 쇼조들에게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책읽기의 끝과 시작, 333~334)

 

영화로 진짜 제작된다면, 흥행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인상깊게 볼 것 같다. (물론 잘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근데 꽤 스케일이 크겠다. 배경이 조선, 도쿄, 오사카, 상하이를 오가니

내 멋대로 캐스팅을 상상해봤는데,

이봉창 역에 배우 류준열 씨가 갑자기 떠오르더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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