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생활과 문화에 위화감을 느낀 소세키는 자신의 문학관을 배양한 동양과 서양은 문학에 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두 서양이 표준이라면 동양의 문학은 부정되고 오로지 서양인의 흉내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 (220~221쪽, 해제)


"나는 비로소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하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것 외에는 나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타인본위로 뿌리 없는 개구리밥처럼 그 근처를 아무렇게나 방황하고 있었으니 모두 허사였다는 사실을 겨우 알았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타인본위라는 것은 자신의 술을 타인에게 마시게 하여 품평을 듣고는 이치에 맞건 안 맞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남 흉내 내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57쪽, 나의 개인주의)

자신의 생애를 메이지라는 시대 상황에서 분리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소세키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압도적인 열강의 압력에 항거하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즉 그는 메이지 일본의 특징인 ‘국가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개인주의 도덕의 확립을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 P217

자기본위를 설명하고 개인주의 입장을 공언한 소세키가 자유를 수반한 의무와 타인의 개성과 자유의 존중을 강조한 것은 개인주의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고려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청중인 학습원의 학생들 입장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 개인주의는 악이라고 비난받았지만 권력자의 횡포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국가주의가 찬미되었었다. - P232

<나의 개인주의>에서는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지만 이것은 자기 권력을 사용하는 자는 그에 수반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대국의 폭력을 경계하고 상호 상대국의 주권과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독일이나 일본의 무법적인 형태를 비판하는 의미이기도 했던 것이다. - P234

<점두록>에서는 전쟁의 비참함과 무의미함과 군국주의를 논하며 독일의 군국주의를 낳은 트라이치케의 사상을 해부, 정치와 사상, 문학에 대해 조명했다. 이 연재 에세이는 소세키가 최후에 남기고 싶었던 평화의 메시지였으며 - P234

언제나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군국주의는 내셔널리즘의 자연적 귀결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무서운 희생과 파멸, 문명의 황폐를 야기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계속 추구하던 소세키는 인류에게 파멸을 초래한 군국주의의 행방을 주시, 그것을 헤쳐나가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 P238

지금까지 소세키론의 상당수는 이 소세키의 사회성과 전투성을 간과하고 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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