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b판고전 11
발터 벤야민 지음, 심철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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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출판 b에서 출간한 심철민 역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1939년에 출판된 제3판을 저본으로 삼되, 1판과 2판과의 내용 변화 추이를 반영하여 번역하였다. 이를 위해 부록 ‘판별 내용 대조’에는 1판·2판과 비교하여 3판에 추가되거나 변경된 부분, 그리고 3판에서 삭제된 부분, 마지막으로 불어본까지 포함한 네 판본 간의 본문 및 원주 대조가 실려있다. 다른 출판사에서 간행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최성만 옮김, 길, 2007)에는 2판과 3판만이 수록되어 있고(목차만 확인한 것이다), 전기가오리 역간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신우승 옮김, 전기가오리, 2016)도 2판을 번역한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주요 판본의 내용을 비교해서 읽고 싶은 독자분들은 이 번역본이 적절하겠다.

총 15개의 절로 구성된 이 짧은 텍스트는 ‘머리말’과 ‘추기’를 제외하고 다섯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물론 이 구분은 내가 임의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그닥 설득력은 없다.

2.

먼저 1~5절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가장 정독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1절에서 벤야민은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에서 예술작품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드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우라의 붕괴’이다. 아우라란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작품이 갖는 ‘지금-여기’라는 특성, 즉 예술작품은 그것이 존재해 있는 곳에 유일무이하게 현존해 있다는 특성이다.” 그리고 이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적 유일무이성”이 예술작품의 “진본성”을 이룬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복제가능성은 예술작품을 대중 앞으로 당겨 놓으면서 진본성, 즉 예술작품이 갖는 ‘지금-여기’의 특성을 무색하게 한다. 물리적 제약을 초월하여 예술은 복제를 통하여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말해 유일무이한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진본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더 근원적으로 예술 “최초의 본원적 사용가치”인 제의적 가치와 멀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우라는 그 제의적 가치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고대부터 이미지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로서 이용되어왔다. 맞는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표적으로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의 입상’ 같은 작품은 프로파간다를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그 석상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듯 청년기의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그의 ‘맨발’도 자신을 신격화시키기 위한 장치로써 이용되었다. 또한 가톨릭의 이콘은 종교적 목적을 위한 예술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은 “세계사에서 최초로 제의에의 기생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 벤야민은 5절에서 이를 ‘제의적 가치’에서 ‘전시적 가치’로 옮겨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전 내부의 신상과 이곳저곳 옮겨지는 흉상, 프레스코화/모자이크화와 패널화, 그리고 미사곡과 교향곡. 각각의 사례에서 후자의 전시가능성이 전자보다 더 크다. 이는 3절에서 설명한 “모든 것의 복제를 손에 넣음으로써 주어진 것의 유일무이성을 극복하려고 하는” 현대 대중의 경향과 맞물리면서 아우라의 붕괴를 촉진시켰다. 바야흐로 예술 향유의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아우라의 붕괴는 “평등성에의 감각”을 진척시키거니와, 이는 당시 대중운동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진본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사라지면서 예술은 제의적 기반으로부터 분리된 대신 “정치에 근거를” 두게 된다.

3.

두 번째 부분인 6절은 제의적 가치보다 전시적 가치가 더 중요해진 최초의 예술 분야인 ‘사진’과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다룬다. 초기 사진은 ‘얼굴 사진’을 통해서 아직 제의적 가치, 즉 아우라가 남아 있었지만, “앗제에 이르러 사진은 역사과정의 증거물이 되기 시작한다.” 즉, 사진에서 사람이 사라지게 되면서 드디어 예술의 전시적 가치는 예술적 가치를 추월하였다. 위키백과 ‘으젠 앗제’에 따르면, 앗젠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사라져가는 파리의 옛 모습을 기록하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벤야민에게 이러한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뀐 사진의 성격, 곧 사진은 관찰자로 하여금 “자유로운 관조”가 아니라 “특정한 의미에서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영화에서 보다 분명하게 제시된다.

세 번째 부분인 7절은 6절과 8절 사이에 교두보 역할을 하는 장으로, 사진의 예술적 가치보다도 사진의 발명으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변한 예술 자체의 성격이 더 중요하다며 영화의 의의를 여전히 초자연적인 것 속에서 구하는 반동적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8절에서부터 드디어 기술적 복제 가능 시대 예술의 전형인 영화를 분석한다.

4.

네 번째 부분인 8~14절은 기술적 복제 시대 예술작품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의 특징과 영화로 인한 변화들을 열거한다. 영화는 카메라와 조명 등의 기계장치를 매개하여 대중에게 선보여진다는 점에서 연극 무대하고 다르다. 기계장치를 매개한다는 사실이 영화의 특징을 규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 이로써 영화배우의 연기(9절)뿐만 아니라 배우와 관객과의 관계(10절)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아우라는 어떤 예술작품의 ‘지금-여기’의 특성이다. 연극무대에서는 배우의 아우라를 관객이 느낄 수 있지만, “영화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이 갖는 특이한 점은, 관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계장치가 놓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배우를 둘러싼 아우라는 탈락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누구든지 영화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10절). 비근한 예를 들자면, 다큐멘터리 영화나 르포 영화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영화들은 굳이 배우가 아니더라도 스크린에 출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회가 되면 누구나 출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영화에서는 대중과 배우 사이의 차이는 상실된 것이다.

11~13절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가져온 예술작품의 기술 복제 가능 시대 일대의 변화들을 순차적으로 다룬다. 그중에서도 11~12절은 화가와 회화와의 비교를 통해 영화가 가지는 특징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화가는 작업할 때 대상과의 자연적인 거리를 관찰하는 데 반해, 촬영기사는 대상의 구조 속에까지 깊이 파고든다.” (11절) 또한 영화에서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계”가 변한다. 항상 소수의 사람에 의한 감상을 요구했던 회화와는 달리 영화는 대중에 의한 “집단적 수용”을 요구한다. (12절) 영화는 카메라 렌즈와 같은 기계장치를 통하여 사물이나 운동을 느리게 보거나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으며,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까지 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필연성들에 대한 통찰을 증대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예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유희공간을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13절) 14절은 “대중이 영화 속에서 구하고 있는 효과들을 회화라는 수단을 통해 만들어내려고 시도”한 다다이즘에 대해 설명한다. 다다이즘은 복제의 방식을 회화에 접목한 것이다. 마지막 부분인 15절은 “예술에 참여하는 대중의 대폭적인 증대”가 예술에의 참여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다.

5.

벤야민은 추기에서 ‘파시즘’에 의한 ‘정치의 미화’를 경고한다. 그가 이 논문을 쓰고 있던 1935년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파시즘 세력이 집권하여 온 유럽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였다. 파시즘에서 보이는 정치적 표현의 특징은, 공공 연설이나 퍼레이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대중 동원력과 선동력이다. 히틀러는 연설을 통하여 대중 앞으로 자신을 가까이한다. 이것은 벤야민이 고찰한 영화의 특징과 유사하다. 그러나 영화 자본이 ‘스타숭배’를 만들어 다시 제의적 가치를 존속시켰듯이, 파시즘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지도자(영도자) 숭배를 통하여 다시금 예술의 제의적 요소와 아우라적 요소를 부활시키고 있었다(강력한 일인 지도 체제라는 면에서 루즈벨트도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예술의 근거가 다시 제의적 가치로 옮겨가는 것은 기술 복제 시대가 가져온 한 특징, 곧 ‘대중의 등장’과 ‘예술 향유의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파시즘적 정치에도 대중은 존재하지만,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온존시킨 채 표현의 기회만을 그들에게 주려고 한다.” 소유관계의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은 채 대중을 지배하려는 그들이 택한 방법은 “매스컴 기구를 장악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파시즘의 정치를 ‘정치의 미화’라고 부른다.

“정치의 미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하나의 정점에 도달한다. 이 정점이란 전쟁이다. 전쟁은, 그리고 오직 전쟁만이 종래의 소유관계를 유지한 채로 최대 규모의 대중운동에 하나의 목표를 부여할 수 있게끔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한 파시스트들이 종래의 소유관계를 유지하면서 “최대 규모의 대중운동에 하나의 목표”, 즉 전쟁으로 향하게 한다. ‘정치의 미화’의 궁극적 결과는 전쟁이라는 벤야민의 예언은 이후의 역사 전개를 아는 우리의 경각심을 울린다.

벤야민은 이 논문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짓는다. “이 파시즘에 맞서, 공산주의는 예술의 정치화로써 대답한다.” ‘예술의 정치화’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파시즘적 ‘정치의 미화’에 대립되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때 ‘예술의 정치화’란 불평등한 소유관계를 그대로 놔두고 영도자 숭배로 이어지는 ‘정치의 미화’가 아닌 소유관계의 평등과 대중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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