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겐

마사 & 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미우라 시온의 작품 <배를 엮다>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활자가 넘쳐나고 섬세함의 극치를 달리는 거대한 사전의 바다에서 푹 빠져서, 그리고 사전을 만들어 내는 인물들의 그 열렬한 모습들에 반해서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지. 그래서 이번에도 작가의 이름만 믿고 주저없이 선택한 <마사&겐>. 천천히 읽어나갈 수록 역시나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죽마고우, 이제는 일흔셋의 나이가 되어버린 마사와 겐 할아버지. 생활방식도 다르고 찾아봐도 잘 맞는 구석도 없지만, 여전히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는 단짝이다. 은행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마사와 달리 쓰마미 세공 직인일을 여전히 이어하고 있는 겐에게는 제자인 텟페와 그의 여자친구 마미씨가 있다. 미용사인 마미씨 때문에 늘 얼마남지 않은 머리가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물들곤 하는 겐지로의 머리를 마사는 못 마땅해 하면서도 그들의 북적거림을 젊음을 내심 부러워 하기도 한다.

가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마사와 겐 할아버지의 일상의 나날들. 하지만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두 사람의 하루하루를 볼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며 과거를 추억하기도 한다. 친구의 사랑을 위해 개에게 선뜻 선을 물려줄수 있는 우정이, 전쟁을 겪고 제일 먼저 친구가 살아있음을 알고 기뻐할 수 있는 경험이 어디 흔할까. 사소한 걸로 티격태격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안부를 묻고 서로를 찾고, 가끔은 작은 일들에 질투와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걱정하며 달려가 주는 두 사람의 말로 다 하기도 부족한 우정들이 참 보기 좋았다.

자상하고 온화한 말로 애정을 내보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쑥스럽고 부끄러워 마음과 달리 말을 투박하게 내 뱉는 사람들이 있다. 마사와 겐 할아버지가 바로 후자 쪽! 말을 툴툴 내 뱉긴 해도 서로의 곁에 서로가 있어 고마운, 어릴적부터 함께해 온 친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먼가 두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져, 저 나이가 되어서도 내 곁에 겐이나 마사같은 좋은 친구가 여전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쌓아온 세월만큼 말하지 않아도 큰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있으면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어느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길위에 빛나던 청춘을 함께했고 이제는 인생의 황혼녘에 추억을 곱씹어 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래도 즐겁게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수로위에서 통통배를 함께 타고 있는 마사와 겐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던, 이렇게 나이먹어도 좋겠다 싶었던 <마사&겐>.